토요타의 흔들리는 일본 사랑..돈이 원수

머니투데이 권성희 기자 2011.11.29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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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토요타자동차의 애국주의가 시험대에 올랐다. 혼다자동차와 닛산자동차 등 일본 경쟁업체들이 잇달아 엔고를 견디지 못하고 생산시설을 해외로 이전하는 가운데 토요타는 일본 제조업의 공동화를 우려하며 갈등하고 있는 것.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29일 '토요타의 애국주의와 수익성은 함께 섞이지 못할 것'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토요타가 애국주의적 자국 생산과 수익성 사이에서 심각한 고민에 처해 있다고 전했다.



창업자의 손자인 도요타 아키오 토요타 사장은 수출 물량의 절반 가량인 연간 300만대는 최소 일본에서 생산하겠다는 토요타의 오랜 약속을 지킬 것이며 일본내 일자리를 보호하는 것이 일본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고 강조해왔다.

하지만 엔화 가치가 버티기 어려울 정도로 올라가고 미국 내 판매도 부진한 양상을 보이면서 이같은 도요타 사장의 애국주의는 흔들리고 있다. 도요타 사장은 WSJ와 단독 인터뷰에서 엔화가 현재와 같이 높은 수준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소형차 생산은 해외로 이전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도요타 사장은 "현재 엔화 환율로 소형차를 (일본에서 만들어) 수출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라며 "생산시설의 해외 이전, 여러 공급업체 활용, 지역 부품 조달 확대 등 여러 가지 조치를 취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재 토요타는 전세계에서 판매하는 자동차의 약 절반 가량을 일본 내에서 생산하고 있다. 혼다와 닛산은 일본 내 생산 비중이 3분의 1로 토요타보다 낮다.

토요타의 한 핵심 부품업체 관계자는 토요타가 일본 미야기 공장에서 생산하는 자동차 일부를 멕시코 바자 캘리포니아로 이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 같은 생산 이전에 최소한 2년 가량이 걸릴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토요타가 실제로 생산시설의 해외 이전을 진지하게 결정할지는 의문이다. 도요타 사장의 절친한 친구인 니이미 아츠시 토요타 제조 담당 부사장은 일본을 버리는 것은 "올가미 안으로 머리를 들이미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니이미 부사장은 물론 다른 대다수 임원들도 생산을 일본에서 해외로 돌리는 것을 반대하면서 일본 내 생산 과정을 더욱 간소화, 효율화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해외 생산을 반대하는 임원들은 '모노즈쿠리'라 알려진 일본의 제조업 장인정신을 절대적인 경쟁력으로 여기며 수요만 회복되면 일본 내에 놀고 있는 생산설비가 정상 수준으로 가동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니이미 부사장은 "초고속, 대량생산은 이제 우리에게 맞지 않는다"며 "이제는 생산 시설을 좀더 단순하고 간소화하고 좀더 축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생산시설의 간소화, 효율화가 토요타의 문제를 풀어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토요타는 올들어 엔고로 수출 이익이 급감하며 일본 내 시장에서 50억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2008년에 GM에서 빼앗아왔던 세계 최대 자동차회사라는 타이틀도 빼앗길 것이 확실시된다.

역설적인 것은 현재 토요타가 한 때 GM을 위험에 빠뜨렸던 과잉 생산설비로 고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일본 내 생산 설비는 엔고와 수요 부진으로 과잉 상태다.

이러다 보니 생산의 해외 이전을 둘러싼 사내 논란이 외부로 표출되기도 한다. 오자와 사토시 토요타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난 5월 기자간담회에서 토요타가 일본 내 생산에 너무 많이 의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이같은 엔고 상황에서 계속 이익을 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후에 토요타는 오자와 CFO가 일본 정부에 대해 엔화 가치를 안정시킬 필요가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이러한 발언을 했다고 해명했다.

전문가들은 토요타가 고정밀 생산과 비용 절감, 부품업체들과 신기술 공동 개발 등으로 위기를 극복하려 하지만 이러한 조치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보고 있다.

IHS 오토모티브의 수석 애널리스트인 애런 브래그먼은 "토요타는 어느 때보다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 직면해 있다"며 "토요타는 방어적이며 지금 추격을 당하는 중"이라고 지적했다.

JP모간의 애널리스트인 다카하시 코헤이는 "토요타가 중장기적으로 이익을 개선시키려면 해외 부품 조달 확대, 국내 공장의 해외 이전, 국내 모델 숫자 축소, 이익구조에 대한 진정한 개혁 등을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토요타가 연간 최소 300만대는 일본 내에서 생산하겠다고 약속한 것은 1995년이었다. 당시 오쿠다 히로시 토요타 사장은 일본 내 생산물량을 이보다 줄이면 토요타의 생산시설 해외 이전이 촉발될 것이라고 말했다.

도요타 사장은 2009년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오쿠다 사장의 옛 약속을 그대로 전승했고 경쟁업체들이 해외에 나갈 때도 일본 내 생산을 고수해왔다.

도요타 사장은 올초 신년 메시지에서 "생산 설비를 이전한다는 것은 모노즈쿠리의 기초를 버린다는 뜻"이라며 "이는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익을 낼 수 없다면 우리도 생산을 어딘가 다른 곳으로 이전시킬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WSJ는 도요타 사장을 비롯한 토요타 경영진이 결국 일본을 떠나야 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몰릴 수 있다고 봤다. 다만 경영진 내에서 아직 확고한 결심은 서지 않았다고 WSJ는 전했다. 니이미 부사장은 "우리는 일본의 제조업 공동화와 그 여파를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걱정스럽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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