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졸도 8000만원 이상 박사급 연봉받는 회사

머니투데이 김포(경기)=정진우 기자 2011.11.27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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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고용, 새로운 한국]<상> '기능인, 실력으로 큰다' 박흥석 금성하이텍 사장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초침과 분침, 그리고 시침. 열세 살짜리 소년은 모든 게 신기했다. 이것들이 어떤 원리로 움직이는지 궁금했다. 큰맘을 먹었다. 집안에 있는 시계를 하나 둘 열어보기로 한 것이다.

소년은 시계란 시계는 모두 분해하고 재조립해봤다. 부모님께 꾸중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기계에 대한 관찰력이 생겼다. 손재주 또한 늘었다. 기계의 매력에 푹 빠진 이 소년은 40년 후 기계 전문가가 됐고, 정부가 인정한 '기능 한국인' 반열에 올랐다. 박흥석(54세) 금성하이텍 사장 얘기다.



박 사장은 고졸 학력이 전부다. 집안 사정으로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대신 직업훈련원에서 기술을 배웠다. 기계 분야에 적성이 맞는다는 걸 일찍 깨우친 덕분에 진로를 쉽게 결정할 수 있었다. 1년간 훈련원에서 기술을 익히고 사회에 진출했다. 현대양행(현 ㈜만도)과 동양기계(현 S&T중공업㈜)를 거치면서 자동차 부품에서 방산물자까지 다양한 기계를 접했고, 전문적인 기술과 경험을 습득했다.

↑ 박흥석 금성하이텍 사장ⓒ정진우 기자↑ 박흥석 금성하이텍 사장ⓒ정진우 기자


박 사장은 1984년 현재 회사의 전신인 금성정밀공업을 서울 구로공단(현 구로디지털단지)에 설립했다. 직원 4명을 데리고 자동화 생산설비를 만들어 금성사(현 LG)와 풍산금속 등 대기업에 납품하기 시작했다. 사업 첫해 매출은 2000만 원. 스물여덟의 젊은 사장은 "실력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박 사장은 기계를 만들면서 자동화 설비에 반드시 필요한 '에어클리닝(Air Cleaning)'에 관심을 갖게 됐다. '에어클리닝'이란 압축공기 중에 들어간 불순물을 제거하는 기술이다. 섬유와 화학, 반도체, 자동차, 원자력발전 등 다양한 분야의 제조 현장에서 적용된다. 당시엔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에서 수입했던 분야다. 박 사장은 우리나라에 없는 이 분야를 개척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박 사장은 "반도체나 원자력발전 분야에서 불순물이 들어간 공기가 치명적이기 때문에 에어클리닝 분야가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외국에서 수입할 수밖에 없는 시절 이었다"며 "이 분야 세계 최고인 미국의 뉴마텍과 기술 제휴를 통해 1995년에 국내 최초 압축공기용 에어드라이어를 개발했고, 삼성전자 (79,200원 ▼500 -0.63%)를 비롯해 한국수력원자력 등 대기업들이 우리 주요 고객이 됐다"고 말했다.

회사는 그때부터 승승장구했다. 규모도 커졌다. 박 사장은 경기도 김포 월곶면에 8000㎡(2400여 평) 규모의 부지를 매입, 연구시설과 생산설비를 갖췄다. 주문은 쏟아졌고, 직원들은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휴일도 반납했다. 회사는 꾸준히 성장했다. 지난해엔 2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26년 만에 회사를 1000배나 키운 것이다.


직원도 120명까지 늘었다. 눈에 띄는 건 전 직원의 60% 이상이 박 사장처럼 고졸이었는데, 실력만 있으면 석·박사급 직원과 비슷한 연봉을 받고 있다는 것. 오로지 실력으로 평가받는 회사 분위기 덕분에 이직률은 매우 낮다.

박 사장은 "고졸이라도 석·박사급과 비슷한 8000만 원 이상의 연봉을 받는 직원들이 많다. 실력 외에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도록 철저히 대우해주고 있다"며 "좋은 일터를 만들기 위해서 차별적인 요소는 모두 없애고 있다. 열심히 잘 하면 누구나 인정받을 수 있는 조직 문화를 만들고 있다"고 강조했다.

↑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에 위치한 금성하이텍 본사 전경.ⓒ정진우 기자↑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에 위치한 금성하이텍 본사 전경.ⓒ정진우 기자
박 사장은 본사 인근 김포 신도시에 4만6000㎡(1만4000평) 규모의 부지에 신규 공장을 짓고 있다. 회사가 계속 성장하고 있어서다. 앞으로 지금의 2배 이상의 직원을 채용할 계획이다.

고용노동부는 박 사장과 같이 '열린 고용'을 하고, '좋은 일터'를 만드는 기업인을 격려하고 있다. 특히 지난 2006년 8월부터 매월 한 차례씩 '이달의 기능 한국인'을 선정, 기술·기능인들의 자긍심을 높여주고 있다. 박 사장은 올해 5월 '기능한국인'으로 선정됐다.

이채필 고용부 장관은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청와대에서 마련한 기술·기능인들과의 오찬 자리에 박 사장을 추천했다. 박 사장은 이날 이 대통령으로부터 "잘 하고 있다"는 칭찬과 함께 "후배 기능인들의 존경을 받고, 나라에 기여하는 기능인이 돼 주길 바란다"는 격려를 받았다.

"어려서부터 본인 적성에 맞는 걸 찾아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대우받는 사회, 한 분야에서 꾸준히 노력하는 기능인을 장인으로 대접해주는 나라, 젊은 세대들이 편견 없이 비전을 갖고 기능인에 도전하는 그런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박 사장이 꿈꾸는 대한민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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