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상품거래소, '밥그릇싸움'에 반쪽되나

머니투데이 김성호 기자 2011.10.24 07:20
글자크기
"이럴 거면 차라리 금 거래소를 만들지…"

지난 17일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실물상품거래소 도입'을 위한 공청회에 참석했던 업계 한 관계자는 공청회가 끝난 후 이렇게 불만을 토했다.

실물상품거래소 도입을 주도하고 있는 지식경제부는 이날 상품거래소의 근간이 되는 '일반상품거래법'을 입법예고 했다.
법은 '일반상품'의 정의를 '광산물·에너지에 속하는 물품이나 이를 원료로 해 제조하거나 가공한 물품'으로 명시했다. 거래소는 금부터 거래를 시작한 후 다른 상품으로 대상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일반상품거래법의 입법 근거가 되는 자본시장법은 일반상품의 정의를 광산물·에너지 뿐만 아니라 '농산물, 축산물, 수산물, 임산물'까지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지경부가 마련한 일반상품거래법이 그대로 적용되면 자본시장법과 '상품'의 개념부터가 달라지게 되고, 상품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상품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게 된다.



지경부는 '일반 상품' 범위에 농·축산물을 배제한 이유에 대해 "가격의 표준화 및 상품의 규격화가 쉽지 않은데다, 보관상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실물상품거래소는 말 그대로, 실물이 바로 오고가야 하는 것인데, 농·축산물은 그러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그러나 지경부의 해명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는 시장 관계자들은 많지 않은 듯 하다. 가격의 표준화, 상품의 규격화가 어렵기는 에너지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원유의 경우 표준화, 규격화가 쉽지만은 않다. 원유선물이 오랫동안 상장되지 못한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반면, 농·축산물 중에서도 상품화할 수 있는 것이 충분히 있다. 쌀만 하더라도 표준화, 규격화는 물론 보관문제도 생각만큼 어렵지 않아 충분히 상품화할 수 있다.

지경부가 상품의 제한을 둔 것은 애당초 '밥그릇'을 나눠야 할지 모르는 싹을 자르겠다는 것 아니냐는게 업계의 의구심이다.
광물, 에너지는 지경부 소관이지만 농·축산물은 농림수산부 관할이다.
일반상품 대상을 확대 적용할 경우, 관리체계가 지경부와 농림수산부로 양분화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실물상품거래소가 활성화되면 정부 부처간 힘겨루기가 발생할 수 있는 소지가 있는 것이다.


지경부가 아직 법안조차 통과되지 않은 상품거래소를 두고 '밥그릇'을 생각했을 것이라는 의심을 갖는건 지나친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오랫동안 준비해 온 상품거래소가 출발부터 반쪽짜리로 시작하지 않을까 벌써부터 걱정되는건 사실이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