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말 충신의 절개 정신 이어 받을 젊은 창업자들 많았으면”

머니투데이 남창룡 월간 외식경영 2011.10.19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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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골 2세대 (주)진원축산 정용락 이사

역사 속에 파묻힌 고려말 충신 72인의 행적에 대해 우리는 모르고 지냈다. 이들은 이씨 조선 건국에 협력하지 않고 끝내 절개를 지키며 야인이 된 인물들이다.

이들이 숨어지내다 시피 한 곳은 고려의 수도 북측 개성 두문동의 한 마을 뒤편 산자락이었다고 한다. 일반 백성들과도 어울리지 못한 이들은 살기 위해 산속에서 여러 짐승들을 잡아먹을 수 밖에 없었다.



“고려말 충신의 절개 정신 이어 받을 젊은 창업자들 많았으면”


그러기를 여러 해. 이들은 점차 크고 작은 짐승들을 잡아 처리하는데 도가 튼다. 가죽을 벗기고 각종 부위의 뼈와 살을 분할하는 솜씨가 뛰어났다. 어느 시기부터인지 전국의 장터에는 고려의 혼을 지킨 충신들이 잡은 고기 덩어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들의 기술을 이어온 게 오늘날 발골(정형)사의 감춰진 역사라고 개성을 수차례 방문하며 관련 자료를 수집해온 (주)초정한우 최동해 대표이사는 주장했다. 두문불출(杜門不出)이라는 고사성어도 이 때 유래되었다고 한다. 조만간 책으로 낼 계획이다.



지금에야 식육처리기능사 자격증까지 생겨 대우를 받고 있지만 과거에는 결혼할 때까지 숨겨야 했던 직업이었다.

이러한 꿋꿋한 실화를 모른 채 수많은 세월을 정형에만 몸담아 오면서 우리의 육식문화를 한층 높여온 숨은 장인들이 많다. 그 중 발골 2세대인 서울 마장동 (주)진원축산의 정용락 이사를 이른 새벽에 만났다.

정 이사는 30여년 동안 이 일만을 고집스럽게 해왔으며, 그의 숨결을 느끼고 간 후배들이 수십명에 이른다.


소가 도축장에 들어가면 먼저 머리, 발 순으로 제거하고 껍질을 벗겨낸 다음 내장을 긁어낸다. 경매를 마친 소는 새벽 2~3시에 꼬리와 함께 사분도체 상태로 입고되는데 2시간 정도 지나 발골한다. 발골을 늦게 시작하면 오후 배송에 차질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휘엉청 뜬 달이 머리끝을 감추기도 전에 정 이사는 매일 마장동 우시장을 찾는다. 그리 넓지 않은 가게지만 주고객이 도매상들이기 때문에 대분할을 주로 한다. 부분육은 발골하지 않는 것.

◇ 제대 후 서울 마장동 우시장에 첫발 내디뎌
발골(정형)사를 예전에는 ‘깎음질’ ‘새김질’이라고 불렀다는 정 이사는 고교를 졸업하자마자 서울 연희동 작은 아버지 집의 정육점에서 일하게 된다. 군대 가기 전까지 돼지와 소에 대한 발골을 배웠다. 군대에서도 행사 때 돼지를 발골하기도 했다. 제대하고 마장동에 진입하게 된다.

예전과 달리 발골사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면서 마장동 우시장에도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시장 환경도 개선되면서 깨끗해 진 것이다. 과거에는 불법 행위도 있었지만 지금은 없어져 유통시장도 투명해졌다. 칙칙한 거리가 아닌 밝은 곳으로 거듭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축산업으로 분류된 발골은 꼬리를 위쪽으로 걸어놓고 한다. 앞다리는 정각부분을 자른 후 등심을 발골 하는데 이것을 먼저 해야 그 다음 과정이 편하다. 발골 일은 참으로 힘들다. 젊을 때는 힘든지 모르고 했지만 나이가 드니 조금씩 느껴지는 것 같다. 요즘은 같이 하는 몇 명의 젊은 직원들이 있어 한결 든든하다.

발골 시간은 돼지는 보통 10분, 소는 1시간 정도 걸린다. 정 이사는 투플러스(++) 등급의 소만 취급한다. 대게 10개 부위로 대분할 되는데 소분할(39개 부위)을 극소 분할하면 147가지 정도 나온다. 고기에 칼집이 나게 되면 그 부위가 빨리 상하게 되고 조리중에 벌어질 수 있으므로 칼집을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 이성계도 못꺽은 고려말 충신들의 절개 단칼에 재현
젊은 사람들은 이 일을 안하려고 한다는 정 이사는 “일이 천하다기 보다는 힘든 일이기 때문”이라며 “발골을 할 때는 손끝에 온 힘을 줘야 제대로 된 작품이 나온다”고 자세를 곧추세운다. 그러면서 집체 만하게 매달린 고깃덩어리를 위에서 아래로 한번에 훑어 내리는 모습은 고려말 충신들의 절개를 이성계도 꺽지 못했음을 재현하는 것과 같았다.

이어 “강약을 주면서 해야 뼈에 살이 많이 붙지 않게 발골 할 수 있다”며 “어느 부위를 손을 대도 칼 끝이 나가는 정도에 따라 몇 등급인지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모든 작업을 손 끝으로 느끼면서 하기 때문에 어디 부위에 살이 붙느냐에 따라 가격 차이가 많이 나므로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치기도 하겠지만 정 이사는 소가 논 갈 때 쓰는 쟁기 모양의 설도살과 한반도 지도 모양의 설깃살이 나올 때면 피곤함이 싹 가신다고 한다.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1년 정도 배우면 적은 자본으로도 창업 할 경우 실패하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뼈에 붙은 부분은 많지 않고, 연골부분은 신경을 잘 피해 잘라 잡뼈로 처리한다. 소의 부위마다 막과 뼈 등에 다 결이 있기 때문에 분리할 수 있게 되어있다. 해체 되면 대분할 부위별로 포장하여 반출된다.

정 이사가 젊은 때만 해도 발골사는 천한 직업이라 여겨 대접받지 못했다. 결혼도 힘들었다. 처음에는 월급만 받고 그만두자는 생각으로 일했다. 내일 그만둬야지 미루다가 오늘에까지 이르게 된 것. 기계가 못하는 일을 사람이 해야 하기 때문에 보람 있는 직업이지만 모든 과정을 수작업으로 하는 노동이기에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라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 암소는 단단하고 찰지면서도 씹는 맛이 독특
암소는 대게 단단하고 찰진 느낌이고 씹는 맛이 있지만 거세우는 연하고 물컹물컹한 느낌이 난다고 한다. 다산우는 일단 억세다. 뼈에 연골이 달라붙어 분리하기도 힘들다. 오래 자란 소다 보니 뼈와 뼈 사이 연골이 녹아 붙어진 것이다.

3산 정도는 맛있지만 5산 이상이 되면 맛이 없어진다. 미경산의 경우 음식점에서 조리하는 노하우가 각자 다르므로 맛이 집집마다 다르다. 물론 과학적인 근거는 없다고 한발 뒤로 물러선다.
“고려말 충신의 절개 정신 이어 받을 젊은 창업자들 많았으면”
늙은 소를 ‘나이배기’라 하는데 뼈를 보면 소의 나이를 알 수 있을 정도로 경지에 올랐다. 어릴수록 뼈와 살 부위에 있는 막이 살아있고 나이가 많은 것 일수록 약해진다. 칼로 일일이 다 긁어내야 하므로 손이 많이 간다.

“현재 발골사 1세대는 거의 은퇴했고, 저는 2세대라고 볼 수 있어요. 함께 일하는 젊은이들은 3세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자격증 없이 발골 일을 할 수는 있지만 4세대부터는 자격증이 꼭 필요할 것입니다.”

일단 손으로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고 한다. 변한 것이라면 기계로 진공포장을 해 깨끗하게 관리된다는 점. 발골 1세대 때는 지푸라기에 얹어서 팔고 신문지로 돌돌 말아서 판매했다. 발골 일도 변했다. 15년 전만해도 대분할이 주를 이뤘는데 요즘은 소분할의 수요가 많아졌다.

[ 도움말 ; 월간 외식경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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