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는 더이상 밖에서 나쁜 일에 쓰지말고 안에서 좋은 일에 쓰도록 하라"
"경제에 신뢰가 없다. 구제해야할 대상은 우리다"
"은행기관이 진짜 군대보다 더 위험하다고 믿는다"
"월가가 우리의 정부를 차지했다"
월가점령(Occupy Wall Street) 시위의 본거지인 주코티공원(시위대는 전 명칭 리버티 플라자로 부른다)에 널려있는 주장들이다. 포장박스를 뜯어 그 위에서 적어놨는데 시위구호라기 보다는 학술성 통찰같다. "맞는 말이네"라는 맞장구가 쳐진다.
'월가에 과세를 하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무슨 소득세율을 몇%로 올려라는 얘기는 없었다. "1953년 5~6월 미국 실업률이 2.5%"였다는 팻말을 들고 행인과 고실업에 대해 성토하는 이도 있었다. 4페이지 짜리 시위 홍보신문 '점령된(occupied) 월스트리트저널' 1호는 "굳이 요구사항이 있다면 점령자체"이다.
월가점령 시위에 발빠르게 편승해 누군가 정체불명의 '점령당(occupy party)'라는 사이트를 만들자 '우리와 전혀 상관없음' 이라고 해명까지 했다. 공화당이 공개적으로 이 운동을 비난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공화당을 응징하자'라는 주장이 나오지도 않았다. 크게 보면 계급투쟁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특정 계층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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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 이번 시위는 리더를 인정하지 않는다. 시위치고는 아주 특이한 점이다. 자원봉사자들이 모여 업무를 나눠 맡으며 일정을 관리하고 있을 뿐이다. 결정은 모두가 모인 총회에서 이뤄진다. '점령된 WSJ' 1호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총회는 수평적이며 만장일치에 바탕을 둔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뿌리는 무정부주의에 있다"고 소개했다. 이같은 無리더성은 '경제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한 민초들의 행진이라는 명분을 더 크게 키워주는 요소다.
또 비폭력에 충실한 점도 호응을 끄는 요인이다. 가두시위가 격화돼 경찰과 몸싸움이 벌어지고 다수가 체포되는 상황이 있었지만 경찰의 가이드라인을 잘 준수하는 편이다. 하긴 미국에서 경찰에게 폭력을 행사했다간 바로 총알 세례를 받게 되니 그럴수 밖에 없다는 생각도 든다. 많은 사람이 노숙을 같이하고 있지만 질서는 잘 유지되고 있었다. 음주 등으로 엇나간 사례도 보고된 바 없다.
경제 불평등이 불만의 근원이라는 점에서 컨텐츠는 '좌파'적이다. 그렇다고 좌파 풀뿌리 운동의 시발이나 '감세'에 초점을 둔 보수적 시민운동인 티파티 대항마로 보는 것도 섣부르다. 좌파운동으로 규정하기엔 용인되는 다양성 폭이 너무 넓다.
눈 많은 뉴욕 주코티 공원 시멘트바닥에서 월동을 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원래가 월스트리트가 한 블록 정도 가까운 곳에 있어 잡았던 곳이다. 현실적으로 비싼 맨해튼에서 실내 대체공간 마련은 쉽지 않다. 그러나 겨울 휴지기를 갖는다 해도 순수성을 잃지 않는 한 부활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