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으로 다진 16년, 손에서 해답을 찾다

머니투데이 황해원 월간 외식경영 2011.10.02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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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가할매> 권금성 육부장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누가 맨 처음 뱉은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지난 시간을 찬찬히 곱씹어봤을 때 그 식상한 이야기는 그에게도 상통했다.

인생에서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부분들이 변해가고, 전혀 생각지 못했던 시간 안에 자신이 속해있다. 그래서 인생에는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만이 있을 뿐이지 정답은 없다.



고기도 마찬가지다. 똑같은 고기를 가져다가 같은 기술로 작업해도 저마다 품고 있는 사연과 인생에 따라 그 모양새가 각각 다르게 나타난다. 그러고 보면 식상한 사실은 언제나 진리가 된다.

◇ 어머니는 공무원을 하라고 하셨다
열정으로 다진 16년, 손에서 해답을 찾다


손에 펜을 잡았으면 잡았지, 차가운 고기 칼을 손에 쥐고 십여 년의 시간을 그리 보낼 줄은 내 꿈에도 몰랐다. 아직까지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이다.



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것도 사실 그 분야의 공무원을 하기 위해서였다. 게다가 컴퓨터도 제법 잘 다뤄서, 졸업할 때쯤엔 담당 교수와 컴퓨터 사업을 시작하려고도 했다. 그러나 뜻대로 잘 안 돼 그 공백 기간을 메우기 위해 시작한 일이 바로 외식업이다.

96년도 낙산가든에서 설거지 일부터 했다. 주방장의 일을 도우며 낮에는 식재료를 다듬고 아침저녁으로는 청소 업무를 도맡아 했다. 고기를 손질하게 된 것은 2년 뒤. 작업된 고기가 주방으로 올라오면 주방에서 접시에 담아 손님상에 내는데 이때 고기를 몇 번 만지던 것이 계기가 되어 육부실에서 고기작업 과정을 본격적으로 배우게 된 것이다.

육부 일은 의외로 재미있었다. 부위별 손질과정이 다 다르고, 작업 시 온도와 숙성 정도에 따라 칼이 들어가는 각도와 손에 들어가는 힘이 천차만별이라는 점을 알면서 하나하나 알아가는 재미는 더했다.


평생 손을 사용하는 일을 하리란 생각은 못 했는데, 워낙 꼼꼼하고 철두철미한 성격이라 디테일을 요구하는 커팅 업무는 의외로 손에 잘 익었다.

가장 매력적인 부위는 갈비였다. 2001년 버드나무집에서 육부 일을 하던 지인으로부터 양념갈비를 배운 적이 있는데 짝 갈비를 가져다가 통째로 발골하고 기름기를 제거하며 포를 뜨고 양념을 만드는 방법까지 세세하게 익혔다.

우선 간장을 배제하고 소금과 설탕, 깨소금, 파, 마늘 등으로 만든 양념을 갈비 위에 뿌려서 내는 수원갈비의 담백한 맛이 좋았다. 육우나 저 등급 부위도 양념을 가미하면 맛의 차이가 확연히 달라지는 것을 알면서 양념육이 가진 가능성을 점치기도 했다.

지금의 미가할매로 자리를 옮긴 것은 2008년도다. 일반 고깃집과는 다르게 코스 메뉴를 두고 있는 곳이었다. 낙산가든에서 배웠던 갖가지 음식들과 그간 쌓아온 육부기술을 동시에 발휘할 수 있는 기회였다.

◇ 고기를 만지는 일은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이다
사실 육부 일은 위험하다. 작업을 시작함과 동시에 끝이 날 때까지는 한 순간도 손에서 칼을 뗄 수 없기 때문이다. 손이 엉망이 되는 것은 예삿일, 다칠 때도 많고 심지어 손의 일부를 잃는 사람도 여럿 봤다. 그만큼 항상 조심해야 하고 성급하게 굴면 안 된다.

그러나 제 시간 안에 작업을 완성해 고객 상에 내야 하므로 무작정 늑장 부릴 수도 없는 일이다. 그래도 후배들에겐 처음 육부 일을 배울 때 작업 속도는 잊어버리라고 말한다. 정확하고 디테일하게 작업하는 과정을 알고 나면 시간이 지날수록 속도는 알아서 붙게 돼 있다. 그 전까지는 아무리 스스로 답답해도 절대 서두르면 안 된다.

그렇게 시간이 한참 지나고 기술력이 완연하게 드러날 때가 되면 모든 작업이 습관처럼 손에 척척 붙는다. 반면 체력이 떨어지면서 집중력이 흐려질 때가 많다.

기술력 못지않게 고기를 상품화하는 일 또한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면서 완성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절실해진다.

16년, 모든 것에 익숙하고 눈 감아도 알 만큼 단련돼 있어야 하는 시간인데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것 같을 때가 많다. 그만큼 고기를 손질하는 노하우만큼은 누가 대신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철저하게 혼자 만들고 혼자 싸워나가는 과정이다. 외롭지만, 숙명이다.

◇ 인생에도 마블링이 있다
남들처럼 외식업에 큰 뜻을 품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떤 일이든 꾸준하게, 이탈하는 법 없이 차근차근 한 우물만 파는 성격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그래서 그는 그 스스로를 단 한 번도 최고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으며 남들 흔히 말하는 ‘육부장으로서 정점을 찍는 순간’이 언제인지도 잘 모른다.

평생 공무원 일을 하고 살 줄 알았는데, 뜻하지 않게 우연히 시작한 외식업 일에 오랜 시간 발 담고 있는 걸 보면 인생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섞이지 않는 다양한 성질이 한데 모여 작품이 되는 마블링 기법처럼 우리 인생도 예상치 못 한 다른 일들의 연속이고 그것이 한데 섞여 완성된다.

분명한 것은, 자신의 삶이 생각하는 대로만 흐르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그래도 그는 16년 간 책임감과 자부심에 힘을 실어 성실하게 잘 달려왔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 안에서 생긴 수많은 에피소드들은 작업한 고기에서 그대로 묻어난다는 것이다.

“후배들이 작업해 놓은 고기를 보면 더 선명하게 그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분명 같은 기술로 다듬었지만 환경과 각자의 방식, 노하우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자신이 작업한 고기에 인생이 농축돼 있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됩니다. 그때야 말로 그런 생각이 들죠.‘아, 이제는 육부 일에 제대로 발목 잡혔구나’하고 말입니다. 그것은 곧 자신의 삶에 대한 애착입니다.”

열정으로 다진 16년, 드디어 그는 손에서 해답을 찾았다.

[ 도움말 ; 푸드미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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