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위기 1931년 재연..독일 메르켈 총리의 딜레마

머니투데이 권성희 기자 2011.09.27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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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존 정책당국이 위기 해결을 위한 대책을 내놓을 것이란 기대감에 글로벌 증시가 다시 안정을 찾고 있는 모습이지만 결국 유로존의 운명은 독일의 손에 달려 있다.

이와 관련, 마켓워치의 칼럼니스트인 데이비드 마쉬는 '유로 위기, 메르켈 총리는 1931년을 다시 보고 있다'는 제목의 글에서 유로존 위기 극복과 관련,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가 메르켈 총리의 부담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마쉬는 우선 80년 전인 1931년 영국이 금본위제를 포기한 것이 지금의 상황을 연상시킨다고 밝혔다. 영국이 금본위제를 포기한 다음날인 1931년 9월21일 파이낸셜 타임스(FT)는 1면 기사에서 "지금 취해진 이 조치는 오로지 외국인들이 파운드화를 대거 인출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이러한 과도한 두려움이 새로운 상황을 만들고 있다"고 전했다.

또 "일시적인 조치일 뿐으로.....위기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며 "내적으로 영국의 상황은 정상적인 과정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영국이 금본위제를 포기하고 파운드화의 금 교환을 중단한 것은 당시 절실히 필요했던 영국 내수 경기를 부양하는 효과를 냈지만 유럽 대륙의 독일과 프랑스처럼 금본위제를 고수하는 국가에 대해서는 상당한 압박이 됐다.

마쉬는 당시 연쇄적인 금본위제 포기 가능성을 지금의 "위기 감염 리스크"로 부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독일은 금본위제에 대한 신념이 확고했지만 프랑스는 그렇지 못했고 결국 1936년 레옹 블룸의 인민전선 연립 정부 때 금본위제를 포기했다.

마쉬는 다시 필름을 현재로 돌리면 오늘날 유럽 각국의 딜레마가 당시와 매우 흡사하다고 밝혔다.


1999년 유럽통화연맹(EMU)이 출범하기 직전 헬무트 콜 독일 총리는 단일 통화가 전쟁이냐 평화냐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마쉬는 독일의 영혼을 분열시키는 2가지 힘, 불안정과 안정, 폴란드와 프랑스, 미국과 러시아,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등 양단간의 갈등이라는 맥락에서 유로화를 해석했다는 점에서 콜 총리가 옳았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콜 총리조차도 유럽의 성과 중에서 가장 자랑스럽지만 동시에 가장 취약한 EMU가 보수적인 기독민주당의 먼 후계자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정치적 생명을 좌우하는 문제가 될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의 갈등으로 분열된 통화시스템에서 메르켈은 17개 회원국이 가입한 유로화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유럽 정치 지도자라고 마쉬는 지적했다.

흥미로운 문제는 메르켈 총리의 한 때 경제적 조언자였고 지금은 독일 중앙은행을 이끌고 있는 옌스 바이드만 총재가 메르켈 총리의 사실상 적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바이드만 총재는 최근 공개적으로 유로화와 관련, 분데스방크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나는 회원국의 경제 및 금융시스템을 좀더 강건한 틀 속에 맞춰 내부 혼란으로부터 스스로 보호하는 재정연합을 이루는 것이다. 바이드만 총재는 하지만 이같은 방안은 현실성이 없다고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다른 하나는 EMU가 경제적으로 수렴되는데 실패하면 금융시장의 징계를 받을 수밖에 없는 좀더 느슨한 그룹으로 남아 있는 방안이다. 이 경우 어떤 한 국가가 경제력이 뛰어난 국가와 보조를 맞추지 못할 경우 냉혹한 결과를 맞게 된다.

결국 바이드만 총재의 논리는 경제력을 갖추지 못한 국가는 디폴트되거나 유로존을 떠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강경한 입장은 그리스 경제를 더욱 어려움에 빠뜨릴 뿐이다.

메르켈 총리가 당면하고 있는 어려움은 연정 파트너인 자유민주당이 거의 고사 상태인 상황에서 분데스방크는 이처럼 강경한 태도로 유럽중앙은행(ECB)의 국채 매입조차 규정에 어긋난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반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메르켈 총리는 29일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의 기능 확대안이 의회 표결에 붙여지면서 시험대에 오른다. 자유민주당이 거의 붕괴된 상황에서 메르켈 총리가 소속된 기독민주당은 EFSF 확대에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메르켈 총리는 야당인 사회민주당과 녹색당의 지지를 의지해야 할 형편이다. 그리고 이는 2013년 선거에서 사회민주당-녹색당 연정의 승리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1931년에 독일 분데스방크의 전신인 라이히스방크는 영국의 금본위제 포기는 다른 나라로 전염될 우려가 있다며 강력 반발했다. 이 경고는 정확했다. 반면 바이드만 총재는 좀더 탄력적인 태도를 보이며 회원국의 EMU 탈퇴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스가 EMU를 떠나는 것이 경제적으로는 덜 불안정한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다. 반면 메르켈 총리는 EMU가 현재 상태로 머무르기를 원한다고 밝힌 만큼 회원국 이탈은 메르켈 총리에서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마쉬는 독일 총리 중에 분데스방크와 불협화음을 빚지 않고 정치 경력을 마감한 전례가 없었다며 메르켈 총리 역시 분데스방크와 갈등 속에 2013년 선거를 계기로 정치 인생을 마무리할 수 있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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