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깊은 기업금융…한번 손잡으면 '100년 지기'

머니투데이 오상헌 기자 2011.09.29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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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짝꿍, 100년 은행 100년 기업의 따뜻한 동행]<1> 하나은행- 상

편집자주 대한민국 경제 발전을 주도해 온 기업의 뒤엔 은행이 있다. 기업가 정신과 은행의 실물지원이 결합한 성취가 '경제발전'이었다. 은행과 기업은 동반자다. 상생 협력과 공생의 모델이다. 실제 기업과 은행의 끈끈한 신뢰를 보여주는 사례는 적잖다. 수십 년 씩 장기간 거래를 지속해 온 기업과 은행의 관계는 '이해타산'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정과 의리가 묻어 있다. 금융과 실물의 '아름다운 동행'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머니투데이는 은행과 기업의 동반자 관계를 조명하고 역사와 현재, 미래를 전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지방 지점과 소기업의 만남부터 은행과 대기업의 거래, 금융과 실물의 소통까지 아우를 예정이다.

지난 2003년 3월. 재계와 은행업계를 동반 위기에 몰아넣은 초대형 사건이 터졌다.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의 분식회계 사태다. SK그룹은 창립 사상 최대 위기를 맞았다. 주요 은행들로 구성된 채권단도 대규모 손실 위험에 처했다. 특히 주채권은행인 하나은행의 타격이 컸다. 대손충당금만 총자산의 1%에 해당하는 8291억원을 쌓아야 했다.

채권은행들 사이에선 SK를 포기하자는 말도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하나은행장이었던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SK그룹은 정유와 통신 등 기간산업을 거느린 회사다.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을 통해 살리는 게 국익에도 도움이 된다". 김 회장이 직접 채권단 설득 작업에 나섰다.



하나은행부터 주채권은행의 정보독점 지위를 과감히 내려놨다. 현금채권매입(CBO. Cash-Buy Out)이라는 구조조정 선진기법도 처음으로 도입했다. 기업구조조정촉진법 적용 대상이 아닌 29개 외국 채권금융기관도 마침내 설득해 냈다. SK네트웍스는 워크아웃에 돌입한 지 3년 반 뒤인 2007년 성공적으로 졸업장을 따냈다. 경영개선약정(MOU) 시한보다 무려 8개월 앞당긴 모범적인 기업 구조조정이었다. 그룹 해체 위기까지 몰렸던 SK그룹은 현재 국내 4위 대기업그룹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

금융권에선 SK의 정상화 과정을 대기업과 은행의 '상생' 노력이 빛을 발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는다. 금융권 관계자는 "하나은행과 SK그룹은 재계와 금융권에서 지금까지도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는 커플(짝)로 유명하다"고 말했다. 하나은행과 SK가 처음 '짝꿍'의 연을 맺은 건 1992년이다. 이후 올해까지 20년째 '동반자'의 길을 걷고 있다. 두 기업은 통신과 카드의 융합 트렌드에 맞춰 하나SK카드를 공동 출범시키기도 했다.
뿌리깊은 기업금융…한번 손잡으면 '100년 지기'


비바람을 맞고 있던 대기업에 하나은행이 우산이 돼 준 사례는 더 있다. 기업 줄도산 공포가 지배하던 외환위기 때였다. 세아그룹도 절체절명의 어려움에 처했다. 계열사인 세아특수강의 유동성 부족이 그룹 전체의 위기로 번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나은행은 당시 투기등급이던 세아특수강에 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성장 가능성에 '베팅'한 전격적인 결정이었다. 자금지원과 함께 하나은행의 금융 컨설팅을 받은 세아특수강이 회생의 길을 걷게 된 건 물론이다.



이후 하나은행은 2003년 세아그룹의 기아특수강 인수 당시 하나대투증권과 함께 주관사로 참여했다. 인수대금도 3000억원 가량 지원하는 등 관계를 이어갔다. 2006년 세아그룹의 주채권은행으로 선정돼 결실을 맺었다. 지금도 굳건한 협력 관계는 유지되고 있다.

하나은행이 기업금융 분야에서 모범적인 선례를 많이 남길 수 있었던 건 뿌리 깊은 기업금융 노하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고객전담제도(AM제도. Account Management System)를 국내에서 처음 도입한 게 바로 하나은행의 전신인 한국투자금융이다. 이 제도는 일선 영업 창구의 여신담당자가 기업체를 직접 관리하고 여·수신·심사 등 기업금융 업무도 한 창구에서 종합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과거엔 은행 예금과 대출, 심사 업무가 독립부서 단위로 각기 쪼개져 있었다. 그러다 보니 기업 입장에선 자금 조달과 운영에 번거롭고 불편한 점이 많았다. 하나금융 기업금융부문장인 임창섭 부회장은 "도입 초기 회사 안팎에서 냉소적인 반응도 많았지만 조직 체계를 과감하게 고객 편의 위주로 개혁했던 것"이라며 "AM제도가 성공적으로 정착하자 한국투자금융이 '앞서가는 기업금융'의 상징으로 시장에서 인정받았다"고 회상했다.


지금은 기업금융의 대표적 제도가 된 RM(Relationship Manager)의 '저작권자'도 하나은행이다. 하나은행과 합병한 보람은행이 금융권 최초로 도입한 제도가 바로 RM이다. RM은 전담직원이 거래기업과 관련한 모든 금융서비스를 도맡는 제도다. 보람은행은 1995년 대기업과 중기업 각각 17개팀과 12개팀 등 29개의 RM팀을 꾸렸다. 은행과 기업의 '동반성장'과 '상생협력'을 모토로 한 조직개편이었다. IMF 외환위기 이후 거래 대기업의 리스크관리 중요성이 높아지자 30대 대기업 계열군에 계열별 담당체제를 도입하기도 했다.

당시 하나은행 RM제도의 모토는 '섀도우 CFO'(그림자 CFO)였다. 기업들 사이에선 '하나은행 RM들과 상담을 하면 의사결정이 빠르고 경쟁업체의 상황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어 좋다'는 호평이 쏟아졌다. 2002년 이후 다른 경쟁 시중은행들도 RM 제도를 앞다퉈 도입했다.

하나은행의 기업금융은 2008년 3월 국내 금융회사 최초로 지주사(하나금융)가 도입한 매트릭스(Matrix) 조직 체계로 다시 한번 전기를 맞았다. 전통적인 대출 지원에서 벗어나 기업이 필요로 하는 다양한 금융서비스를 종합 제공하는 기업투자은행(CIB. Corporate Investment Banking) 체계를 구축한 것이다.

매트릭스 도입 초기엔 어려움도 많았다. 법적 독립체인 계열사의 기업금융을 한 데 모아놓다 보니 역할 분담, 연계영업에 따른 성과보상 문제 등이 걸렸다. 임 부회장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지금은 CIB 모델이 완전히 성공적으로 정착했다고 본다"며 "하나은행 CIB의 목표는 은행이 기업의 그림자 CFO 역할을 하는 것을 넘어 솔루션 프로바이더(Solution Provider)로서 기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2010년 3월 하나다올신탁 인수 후에는 하나은행, 하나대투증권, 해외 파트, 투자은행(IB) 업무에다 부동산까지 더해져 기업금융 서비스를 원스톱(One-stop)으로 제공하는 게 가능해졌다. 금융권 관계자는 "현재 매트릭스 체제 일부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다른 금융지주들도 하나금융의 CIB 체제를 벤치마킹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하나은행은 올해 기업금융 부문 경영 슬로건을 'Creative Solution Partner'로 정했다. 기업이 가려워하는 곳을 은행이 먼저 찾아 긁어주는 '창조적 파트너'가 되겠다는 의미다. 올 하반기엔 별도의 경영컨설팅팀을 구성해 거래기업 최고경영자(CEO)와 2세들을 대상으로 가업승계 세무컨설팅 등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임 부회장은 "은행이 단순히 기업의 자금조달 창구 역할을 하는 시대는 지났다"며 "기업들의 니즈 자체가 토털 솔루션 쪽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CIB 모델을 토대로 '솔루션 프로바이더' 역할을 지속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지금은 중소기업에 불과하지만 삼성과 LG, SK 같은 굴지의 대기업으로 성장할 '100년 지기' 강소기업에 대한 금융지원도 하나은행 기업금융 정책의 주요 축이다. 하나은행 여신 담당 관계자는 "은행의 지원을 필요로 하는 중소기업에 차별화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며 "중소기업과 관련된 금융구조 설계, 회사채 인수, 전환사채(CB),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 영업 등을 강화해 중소기업에도 대기업 못지않은 금융솔루션을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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