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반도주하는 기업 vs 존경받는 기업

머니투데이 베이징=홍찬선 특파원 2011.09.26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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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선 칼럼]중국 진출한 한국 기업이 사는 길

야반도주하는 기업 vs 존경받는 기업


중국 칭따오(靑島)에는 두 종류의 한국 기업이 있다. 하나는 기업주가 야반도주하는 기업이고, 다른 하나는 주민들에게 존경받는 기업이다. 전자는 공장과 재산은 물론 자신의 인격까지 버려 손가락질 받는 반면, 후자는 이윤도 많이 내면서 임직원 및 지역사회와 함께 발전하는 공생(共生)을 이루고 있다.

둘이 엇갈린 원인은 아주 간단하다. 3~5년의 미래에 경영 환경이 어떻게 변할지를 예상하고, 그것에 대응했느냐에 따라 존망(存亡)의 희비쌍곡선이 갈린다.



중국에서의 경영환경 변화는 명확하다. 중국 정부는 ‘조화로운 사회(和諧社會) 건설’에 기업이 앞장서주기를 요구하고 있다. 그동안 기업에게 혜택을 주어 돈을 벌게 해 주었으니 이제는 기업이 정부 부담을 함께 나누라는 뜻이다. 방법은 크게 3가지다. 노동자 임금을 인상하고, 각종 사회보장 관련 부담을 기업에게 떠안기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스스로 실천하라는 주문이 그것이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와 올해 노동자 임금을 20%나 인상했다. 2015년까지 매년 15%를 올려 지금보다 두 배로 올리겠다고 밝히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이유로 2008년과 2009년에 동결됐던 임금은 빠르게 정상화시키겠다는 뜻이다.



오는 10월15일부터는 의료보험과 양로보험 등 5대 보험가입이 의무화된다. 한국의 국민연금 격인 양로보험료는 급여의 최대 28%나 된다. 이중 20%를 회사가 부담하고 개인은 8%를 내도록 하고 있다.

지진이나 홍수 피해가 났을 때 구호금을 내거나, 연말연시에 불우이웃을 돕는 성금을 출연하며,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는 등의 CSR에 대한 요구도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임금인상과 사회보험, CSR 등으로 지지기반인 ‘농민꽁(農民工, 농촌을 떠나 도시에서 노동자가 된 사람)’의 동요를 막기 위해 ‘기업 부담’을 강요하고 있는 셈이다.

칭따오에는 2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기업이 1만개가 넘었다고 한다. 현재는 6000여개로 30% 이상 줄었다. 중국 정부의 3가지 허들(Hurdle)을 뛰어넘지 못하는 기업이 증가하고 있는 탓이다. 남아 있는 기업에게 허들을 뛰어넘을 수 있는 대안이 많지 않다.


코트라(KOTRA) 칭따오KBC에 따르면 칭따오에 진출한 6000여개 기업 중, 제조업체는 1500개로 추정된다. 이 중 상당수는 중국의 저임금을 이용하기 위한 임가공 기업이다. 임금이 인상되면서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임가공 제조업 유지 △베트남이나 인도 등 임금이 싼 지역으로 이전 △중국 중서부 내륙으로 이전 △중국 내수시장을 겨냥한 업종 전환 등이다.

고어텍스를 생산하는 영원무역 (39,100원 ▲800 +2.09%)이나 나이키를 납품하는 창신처럼 종업원이 1만여명이 되는 곳은 현재의 비즈니스를 유지할 수 있는 경쟁력이 있다. 하지만 종업원이 300~500명에 불과한 소규모 임가공업체는 공장이전이나 내수전환 같은 대안을 취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게 현지의 분석이다.

10월1일은 스이졔(十一節), 궈칭졔(國慶節)로 불리는 중국의 건국기념일이다. 1주일 연휴가 이어지는 동안 고향에 갔던 노동자들이 직장에 복귀하는 비율은 85%에 불과하다. 한국 기업에게는 구인난이라는 또 하나의 허들이 가세하는 셈이다.

안타깝게도 한국기업이 칭따오에서 겪는 어려움은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등 중국 어디를 가든 똑같다. 몇 년전까지만 해도 투자하겠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받았지만, 요즘은 IT 바이오 친환경 등 첨단산업이 아니면 투자를 거절하는 게 중국이다.

이런 환경변화에 3~5년 앞서 대응하는 기업은 존경받는 기업으로 계속 발전한다. 변화를 느끼지도 바뀌지도 않는 기업은 야간도주의 불명예를 쓸 수밖에 없다. ‘중국이 변했다’며 울분을 터뜨려야 대답 없는 메아리일 뿐이다. 선택은 오로지 하나, 이윤도 내며 존경도 받는 기업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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