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아파트는 제품이 거의 비슷하고 타입도 많지 않아 정보 취득과정에서 시간과 비용이 크게 들지 않는다. 예컨대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는 경기도 김포 사우택지개발지구 규모와 맞먹는 총 4424가구나 되지만 평형은 101㎡, 112㎡ 등 2가지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아파트는 분양 때부터 겉부터 속까지 똑같은 상품이다. 중국만 해도 분양할 때 골조에 출입문, 창문 등 ‘기본 품목’만 주택업체들이 제공하고 나머지는 분양계약자가 직접 꾸민다. 그래서 아파트 마다 내부 마감재 모양새나 품질이 천양지차다. 하지만 한국은 건설사에서 제공하는 마감재를 뜯어내고 개인적으로 장식하지 않는 한 붙박이장, 벽지, 바닥재, 조명 심지어 수도꼭지 색깔까지 동일하다. 비슷한 아파트를 대량생산하다보니 신반포 1차, 압구정현대 10차 등 건설공구를 그대로 불러 아파트를 구분하는 일도 생겨났다.
한국의 아파트는 제품 자체가 거의 표준화되어 있고 정보들이 거의 공개돼 있다. 그래서 권리관계나 집 수리정도 등 간단한 사실만 중개업자에게 물어보고 계약의사를 전할 수 있다. 부동산을 살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주택의 입지나 방·거실의 배치 등에 대한 임장활동이 요식행위로 그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아파트를 사는 행위는 마치 TV 홈쇼핑에서 화장품이나 냉장고를 사는 것과 비슷하다.
세입자가 살고 있는 아파트를 매입하려고 하는데 세입자가 집 내부를 보여주길 꺼릴 경우 옆집을 보고 계약을 하는 웃지 못할 일들이 한국에서는 일어난다. 사려는 집이나 옆집이나 똑 같은 상품이기에 가능하다. 개별성이 강한 단독주택 위주의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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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부동산이 규격화․표준화돼 주식처럼 유동성이 높은 금융상품을 닮아 가면 가격의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 이럴 경우 집을 살 때 거주를 위한 사용가치보다는 나중에 집을 화폐로 바꾸기 위한 교환가치가 더 중요한 판단기준이 된다.
언제라도 되팔 수 있는 상품이어서 단기차익을 노린 투기세력이 개입, 시장이 교란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강남 재건축 아파트의 가격이 급등과 급락을 오가는 것도 다른 부동산보다 금융상품화가 더 많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부동산의 금융상품화는 필연적으로 가격의 변동성 확대로 이어진다. 부동산의 금융상품화는 부동산시장의 안정이라는 측면에서는 반드시 바람직한 모습이 아닐 수 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