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교란 부추기는 ‘성냥갑 아파트’

박원갑 부동산1번지 연구소장 2011.10.02 10:25
글자크기

[머니위크]청계광장

‘아파트 공화국’ 한국에서 아파트시장은 좀 독특하다. 한국의 아파트는 대형 할인점 선반에 진열돼 있는 라면이나 통조림 못지않게 규격화, 표준화되어 있다. 아마도 한국의 라면 종류는 아파트 평형(타입) 갯수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한국의 아파트는 제품이 거의 비슷하고 타입도 많지 않아 정보 취득과정에서 시간과 비용이 크게 들지 않는다. 예컨대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는 경기도 김포 사우택지개발지구 규모와 맞먹는 총 4424가구나 되지만 평형은 101㎡, 112㎡ 등 2가지에 불과하다.



안방에서 인터넷에서 클릭 몇 번으로 사려는 아파트 정보를 취득할 수 있다. 은마 아파트에 대한 내부 평면, 대지 지분, 동과 향 등 기본 정보가 인터넷에 거의 공개돼 있기 때문에 굳이 현장을 찾지 않아도 된다. 은마 아파트 단지 내 25동 903호 112㎡와 근처의 27동 803호 112㎡에는 무슨 차이가 있는가. 사실상 동질의 상품이다.

우리나라 아파트는 분양 때부터 겉부터 속까지 똑같은 상품이다. 중국만 해도 분양할 때 골조에 출입문, 창문 등 ‘기본 품목’만 주택업체들이 제공하고 나머지는 분양계약자가 직접 꾸민다. 그래서 아파트 마다 내부 마감재 모양새나 품질이 천양지차다. 하지만 한국은 건설사에서 제공하는 마감재를 뜯어내고 개인적으로 장식하지 않는 한 붙박이장, 벽지, 바닥재, 조명 심지어 수도꼭지 색깔까지 동일하다. 비슷한 아파트를 대량생산하다보니 신반포 1차, 압구정현대 10차 등 건설공구를 그대로 불러 아파트를 구분하는 일도 생겨났다.



분양가격도 복잡하지 않아 지상 1~2층은 기준층(로열층)보다 10% 정도 싸고 나머지는 거의 같이 매긴다. 집을 사거나 팔 때 이 기준을 참고해서 가격을 부르면 되기 때문에 가격 산정에 특별한 전문성을 요하지 않는다. 표준화된 상품은 구매자에게 복잡한 평가의 부담을 덜어준다. 즉 그 자산의 특성들이 모두 리스크와 수익에 반영돼 있기 때문에 복잡한 개별자산의 특성을 고려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한국의 아파트는 제품 자체가 거의 표준화되어 있고 정보들이 거의 공개돼 있다. 그래서 권리관계나 집 수리정도 등 간단한 사실만 중개업자에게 물어보고 계약의사를 전할 수 있다. 부동산을 살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주택의 입지나 방·거실의 배치 등에 대한 임장활동이 요식행위로 그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아파트를 사는 행위는 마치 TV 홈쇼핑에서 화장품이나 냉장고를 사는 것과 비슷하다.

세입자가 살고 있는 아파트를 매입하려고 하는데 세입자가 집 내부를 보여주길 꺼릴 경우 옆집을 보고 계약을 하는 웃지 못할 일들이 한국에서는 일어난다. 사려는 집이나 옆집이나 똑 같은 상품이기에 가능하다. 개별성이 강한 단독주택 위주의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결국 부동산이 규격화․표준화돼 주식처럼 유동성이 높은 금융상품을 닮아 가면 가격의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 이럴 경우 집을 살 때 거주를 위한 사용가치보다는 나중에 집을 화폐로 바꾸기 위한 교환가치가 더 중요한 판단기준이 된다.

언제라도 되팔 수 있는 상품이어서 단기차익을 노린 투기세력이 개입, 시장이 교란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강남 재건축 아파트의 가격이 급등과 급락을 오가는 것도 다른 부동산보다 금융상품화가 더 많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부동산의 금융상품화는 필연적으로 가격의 변동성 확대로 이어진다. 부동산의 금융상품화는 부동산시장의 안정이라는 측면에서는 반드시 바람직한 모습이 아닐 수 도 있는 것이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