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만의 저축銀 구조조정, 76일의 전쟁

머니투데이 박재범 기자, 박종진 기자 2011.09.19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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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례없는 '일괄 경영진단→영업정지'…지난 여름, 그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나

"스스로에게 70점 준다"

저축은행 구조조정의 최전선에서 뛰었던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이렇게 자평했다. 사상 초유의 대대적 경영진단과 영업정지 처분 과정 속에서 아쉬움도 남지만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다. 김석동 금융위원장도 '(여론이) 70~80점 정도를 주면 만족하느냐'고 묻자 "뭘 그렇게 짜게 주느냐"고 표현했다.

◇"40년만 구조조정, 전쟁터 나가는 심정으로"=85개 저축은행 일괄 경영진단 카드는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초강수였다. 금감원 고위관계자는 "1972년 상호신용금고(저축은행 전신)가 생긴지 40년만의 역사적 구조조정이다. 자칫 이번에 때를 놓치면 저축은행 업계 정상화는 물 건너간다는 절박함이 있었다"고 했다.



우려도 컸지만 시장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한꺼번에 들여다봐야 한다는 주장이 이겼다. 하지만 당장 동원할 수 있는 인력부터 걱정이었다. 금융감독원과 예금보험공사, 회계법인 인력 338명을 끌어 모았다. 금융 분야 전문가들이기는 했지만 저축은행 검사 경험이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사실상 전시(戰時)였다. 당시 경영진단 투입 인력들에 대한 교육을 담당했던 한 관계자는 "한국전쟁 때 학도병들을 1주일 훈련시켜 전장에 내보내는 심정처럼 절실했다"고 말했다.



지난 7월4일, 마침내 하반기 저축은행 구조조정 방침이 발표되고 당국은 경영진단에 돌입했다. 우려와 달리 경영진단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3주 만에 1차 진단결과가 나왔다. 50개 저축은행이 합격 판정을 받았다.

◇곳곳에서 들리는 곡소리= 35개 저축은행은 다시 정말 진단에 들어갔다. 당국은 짧게는 3주, 길게는 4주까지 구석구석 뒤졌다. 대형 저축은행의 경우 무려 연인원 400~500명이 투입되기도 했다.

당국의 칼날은 날카로웠다. 방만한 경영행태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자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나왔다. 생각지 못한 부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한 검사 담당자는 "전체를 한 번에 진단한 적이 없다보니 한 사업장에 알려지지 않았던 여신이 몰린 사례가 속속 발견됐다"며 "자료가 모이면서 정리되니 부실이 산더미처럼 쌓이더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차명계좌를 이용해 동일인 여신한도를 어겨가며 대출해준 불법행위들도 적발됐다.

담보로 잡은 비업무용 부동산의 가치산정을 놓고도 저축은행과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각종 부실채권에 대한 충당금 적립 정도에 따라 저축은행들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은 춤을 췄다.

◇생이별, 사표…노이로제 = 생사의 갈림길에 선 저축은행 못지않게 생사를 넘나든 게 검사역들이다. 이들의 겪은 한여름의 고충은 말로 표현하기도 힘들 정도다. 휴가는커녕 하루 휴식도 포기했다. 지방 소재 저축은행에 파견된 진단반원들은 가족과 생이별을 한 채 모텔 신세를 졌다. 시일이 넉넉지 않아 야근이 일쑤였다.

7월말 서울에 무려 300mm 물 폭탄이 쏟아질 때도 검사는 멈추지 않았다. 서울 강남의 한 저축은행에 파견 나가 있던 담당자는 "강남역 일대가 물에 잠기고 옷이 다 젖어도 빠듯한 일정 탓에 모두 출근해 경영진단을 계속했다"고 떠올렸다.

저축은행 관련 부서로 발령받은 후 하루도 제대로 못 쉰 직원이 한둘이 아니다. 어떤 간부는 호주머니 안에 항상 사직서를 넣어 다닐 정도로 비장한 각오로 임했다. 육체적 피로보다 이들을 괴롭힌 거 정신적 피로였다. '혹시 놓치는 게 있지 않을까'하는 스트레스였다.

사법당국이 검사 과정까지 수사의 칼날을 들이대자 두려움은 더 커졌다. 금감원 관계자는 "불법성 여부를 떠나 과거 행해졌던 검사 행위에 대해 검찰이 책임을 물으면서 분위기가 많이 경직됐다"며 "원칙대로 검사를 하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 받은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한다"고 말했다.

검사 이후엔 저축은행 대주주와 밀고 당기기를 하느라 머리가 아팠다. 당초 버텼던 대주주들은 적기시정조치 등 행정 조치를 들이대자 머리를 숙였다. 하지만 증자 규모, 자사 매각 규모 등을 두고 힘겨루기가 계속 됐고 배수진을 친 당국의 요구가 더 관철됐다.

물론 이게 끝이 아니다. 금감원 고위관계자는 "이번 일괄진단을 밑거름 삼아 내년부터는 '정예부대'만을 집중 투입해 철저한 검사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증자를 약속한 저축은행들도 눈속임하지 못하도록 증자 자금출처를 끝까지 추적 하겠다"고 말했다.
↑ 19일 오전 서울 명동의 토마토2 저축은행에 고객들이 몰려 큰 혼잡을 빚고 있다. 이날 토마토2 저축은행에는 전날 영업정지를 당한 모회사 토마토 저축은행과 같은 회사인지를 헷갈린 고객들이 대거 지점을 방문했다. ⓒ박종진 기자↑ 19일 오전 서울 명동의 토마토2 저축은행에 고객들이 몰려 큰 혼잡을 빚고 있다. 이날 토마토2 저축은행에는 전날 영업정지를 당한 모회사 토마토 저축은행과 같은 회사인지를 헷갈린 고객들이 대거 지점을 방문했다. ⓒ박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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