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석규 대표(64)는 2009년 은퇴자들의 사회공헌활동 단체인 희망도레미를 설립했다. 그는 "해왔던 일,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로 사회에 다시 뛰어들 수 있게 돼 행복하다"고 말했다. /사진=이동훈 기자 photoguy@](https://thumb.mt.co.kr/06/2011/08/2011082516322755586_1.jpg/dims/optimize/)
조흥은행 부행장이었던 한 대표는 회사가 신한은행과 합병되던 2003년 사임했다. 5년 동안은 그야말로 '신나게' 놀았다. 이집트와 터키, 요르단 등 가고 싶었던 곳을 여행했다. 등산을 다니고 시골의 농장 일도 도왔다. 못했던 영어공부도 하고, 공인중개사 자격증도 땄다. 그러나 목표했던 일을 마치고나면 이내 허무함이 밀려들었다. "은퇴 이후를 계획해 볼 새도 없이 막연히 회사를 나왔지요. 교육을 받은 적도 없었습니다. 현역에 있을 때 쌓아왔던 경험이 아까웠습니다." 그러던 차에 희망제작소의 박원순씨가 진행하는 '행복설계 아카데미'를 알게 됐다. 당시 박씨가 라디오에서 했던 말을 듣고, 홈페이지에 들어가 신청하게 된 것. 아카데미는 은퇴한 이들이 모여 인생 2막을 어떻게 열 것인지 고민하고, 자신의 전문성을 살려 다시 나아갈 방향을 잡는 시니어 교육 프로그램이었다.
현역시절의 경험이 도움이 될 거라던 그의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은행 지점에 발령을 받아 가보면, 사람들이 기존에 하던 일에만 매몰돼 문제점을 잘 찾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꽃집이나 식당 등 자영업을 하는 이들도 겪어보니 마찬가지였어요." 사업의 종류에 상관없이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새로운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게 문제였다. 자료를 모으고 공부한 뒤 컨설팅을 해주면 자영업자들은 "이런 부분을 몰랐고, 저런 부분을 잊고 있었다"며 고마워했다. 상담비를 받아야하지만, 워낙 소상공인이기에 무료로 해준 경우도 많았다. 한석규 대표는 "현역 때 알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느끼고 실감하는 것도 큰 소득"이라고 말했다. 저소득층 무담보 소액대출의 시초였던 그라민은행이 회수율 99%를 증명해보인 것처럼, 소득과 신용수준은 별개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돈이 많은 것보다, 돈을 잘 값는 게 신용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희망도레미는 올해 또 다른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기초수급대상자들을 위한 재무 컨설팅으로까지 영역을 확대한 것. 사회적기업인 에듀머니와 협약해 9월 서비스 시작을 앞두고 있다. 보다 전문적인 컨설팅을 하기 위해 12명의 회원이 3개월 동안의 현장 실습까지 마친 상태다. 한 대표는 "서민 금융이 점점 더 많이 나오고 있다. 더 많은 기관들과 협약을 체결해 진정한 사후관리를 하고 싶다 "라고 말했다. 전화로 독촉하는 경직된 회수가 아니라, 현장에 가서 말을 듣고 조언하는 역할이 필요하다는 얘기였다. 한 대표는 "제가 그 분야에 지식이 있는 만큼 어려운 이들의 신용회복 절차를 알려주고 돕겠다"고 했다. 실적과 수익성, 돈의 논리대로 일했던 은행원은 은퇴 후에야 어렵고 괴로운 이들을 만났고, 이들을 위해 일하며 보람을 느끼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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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도레미의 모토인 SANE, 'service(사회봉사), active(참여), non profit(비영리), enjoy(즐거움)'도 그런 뜻으로 만들어졌다. 단체의 유지하고 키우기 위해 계속 일거리를 받고 새 업무를 개척해야 하는 부담은 있지만, 저소득층이 상담을 통해 대출을 받고 사업을 좋은 방향으로 일궈나가는 것을 보는 일은 희망도레미 회원들의 기쁨이다. 은퇴한 이들이 모여 다시 일을 시작한다는 것 자체도 즐거운 일이다. 한 대표는 "마이크로크레딧 사업과 관련해 영업을 도와주면서 갚아 나아가도록 하는 문화에 희망도레미가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은퇴 전 지식과 경험 살려 제2의 인생 열기]
희망제작소 사회공헌활동지원센터가 여는 '행복설계 아카데미'
행복설계 아카데미는 국내 최초의 전문직 퇴직자 사회공헌학교다. 아카데미는 은퇴 전에 쌓은 지식과 경험을 살려 다시 사회 활동하는 길을 알려주기 위해 희망제작소 사회공헌활동지원센터에 2007년 개설됐다. 은행에서 퇴직한 한석규 대표도 이 아카데미를 통해 빈곤층의 자활을 돕기위한 무담보 소액대출 사업(마이크로크레딧) 분야에 뛰어들게 됐다.
아카데미는 40~60대를 대상으로 매년 3월, 9월에 개설된다. 40여 명의 퇴직자들이 주 40시간 교육을 받고 1박 2일의 워크숍을 다녀오는 과정이다. 이를 통해 고위공무원을 지내던 이는 대안학교 선생님으로, 고등학교 교사는 비영리단체 전문리포터로, 광고회사에서 제작 일을 했던 이는 국제 NGO마케팅으로 변신했다.
좀 더 전문적인 과정도 준비돼 있다. 시니어소셜미디어양성과정에 등록하면 웹2.0 환경을 기반으로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포스팅하고 공유할 수 있다. 재무회계에 기본 역량을 갖추고 있는 이는 비영리단체 재무 전문가로도 활동할 수 있다. 지역에 거주하는 퇴직자는 아카데미가 해당지역 비영리단체와 협력한 지역과정을 밟을 수도 있다.
센터는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은퇴 설계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퇴직 예정자에게 필요한 은퇴 후 인생 설계를 도와주는 교육이다. 이 과정에 등록해 노년을 차곡차곡 준비하면 아무런 대책없이 은퇴해 고민하게 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30대부터 50대까지의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며 매년 4월과 10월 두 차례 개설된다. 평일 저녁이나 토요일을 이용해 참여할 수 있다.
사회공헌활동지원센터 해피시니어 홈페이지 (http://happy.makehope.org/)에서 '행복한시니어' 메뉴로 들어가면 아카데미에서 진행한 여러가지 프로그램들을 찾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