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아마르 카다피는 1969년 쿠데타로 집권한 후 현존하는 집권자 중 가장 오랫동안 권좌를 지켜온 인물이다. 범아랍주의 통합을 꿈꾼 이상주의라는 평판으로부터 그저 서방에 맞선 '미치광이 독재자'라는 비난까지 그에 대한 평판은 극과 극을 달리한다.
69년 당시 아랍세계를 풍미하던 범아랍주의 사상에 물든 27세 청년 카다피 대위는 11명의 청년장교들과 함께 무혈 쿠테타를 성공시키며 친 서방 성향의 왕정을 폐지하고 리비아아랍공화국을 수립했다. 혁명평의회를 구성해 스스로 의장에 오른 그는 영국군과 미군 등 외세를 몰아내고 석유산업 국유화 및 외국인 재산몰수 등의 조치를 단행한다. 이후 그는 이집트의 나세르, 시리아의 아사드, 이라크의 후세인 등과 아랍통합 운동의 선봉에 섰다.
1979년부터는 서방과의 단절로 아랍권의 맹주가 되려는 야심을 드러낸다. 이집트, 튀니지 등 아랍 국가들을 선동해 서방에 대항하는 동맹세력 구축도 시도한다. 그러나 1985년 12월 로마와 빈에서 발생한 폭탄 테러사건의 배후로 지목되고 이듬해 3월에는 미국과 영국 연합군으로부터 2차례에 걸쳐 대규모 보복 공습을 받는다. 1986년 독일 서베를린 미군 출입 나이트클럽 폭탄 테러를 지시한 뒤에는 미군의 보복 공격으로 입양한 딸이 사망하기도 했다.
그는 대량살상무기 폐기 선언 이후에도 국제사회에서 끊임없는 돌출행동으로 분쟁을 일으켜왔다. 국내적으로도 만연한 부패와 40여 년 간의 독재정치에 대한 분노가 올해 초 중동 및 북아프리카 지역의 반정부 분위기와 맞물리며 내전을 촉발시켰고, 6개월 간의 내전 끝에 반군이 트리폴리를 함락하며 결국 그의 철권통치도 종말을 향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