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어서 못들어간다는 12억 전세, 왜?

머니위크 김부원 기자 2011.08.26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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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 커버]미친 전셋값/르포-송파동 분양가와 맞먹는 반포 전셋값

올해 부동산시장을 떠도는 유행어 '미친 전셋값'. 아파트 분양가나 매매가에 버금갈 만큼 비싼 전셋값이 내 집 마련이 꿈인 서민들의 마음을 씁쓸하게 하다보니 이런 험한 표현까지 등장했다. 그리고 최근 무섭게 가격이 치솟는 전세시장의 중심에 있는 아파트로 반포 래미안퍼스티지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4~5년 전 공사 차량이 즐비했던 서울 반포 고속터미널 인근 주공아파트 재건축현장. 당시 이곳은 말 그대로 먼지만 자욱했던 아파트 공사현장에 불과했지만, 곧 대규모 새 아파트단지가 들어서 환골탈태할 것이란 기대감에 차 있었다.



재건축을 둘러싼 진통을 겪은 덕분에 2009년 래미안퍼스티지가 마침내 들어섰고, 어느새 이 아파트는 반포를 넘어 강남권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게 됐다. 그리고 최근 입주 두 돌을 맞은 래미안퍼스티지의 전셋값은 고공행진을 하더니 인근 아파트의 분양가 수준까지 치솟는 기현상까지 생겼다.


류승희 기자



여기에 2008년 말 준공된 반포자이와 오는 9월 입주 예정인 반포힐스테이트는 마치 래미안퍼스티지와 삼각편대를 이뤄 강남권 부동산시장을 주름잡는 분위기이다. 얼마 전 찾은 반포 부동산시장에서 요즘 일고 있는 전세대란의 색다른 단면을 볼 수 있었다.

◆'위풍당당' 입주 2년차 반포 아파트

"82m²(25평) 전셋값이 낮은 경우 5억5000만원이지만, 로얄층의 경우 5억8000만원까지는 생각해야 합니다." 반포 Y공인중개소 대표가 전한 래미안퍼스티지의 최근 임대시세다. 두세 달 전에 비해 3000만~5000만원가량 오른 가격이다.

이 아파트의 112m²(34평)은 8억원, 145m²(44평)와 172m²(52평)의 경우 각각 11억원과 12억원 이상에 전세 매물이 나오고 있는데 층에 따라 5000만~1억원 정도 비싼 것은 감안해야 한다. 단순히 수치상으로도 전셋값이 비싸다는 것을 느낄 수 있지만, 2년 전 입주 당시 전셋값에 비해 무려 60~65%가량 오른 가격이란 사실은 더욱 충격적이다.


래미안퍼스티지의 전셋값을 3.3m²(1평)당 따져보면 대략 2200만원 수준. 이는 송파구 송파동 반도아파트를 재건축한 래미안송파파인탑의 3.3m²당 분양가 2280만원에 맞먹는 수준이다. 분양가보다 비싼 전셋값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전셋값이 비싸지만 이 지역에 전세 불황은 없다. 오히려 전세 매물이 부족할 정도라는 게 부동산업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반포 일대에 즐비하게 들어선 공인중개업소들은 하나 같이 래미안퍼스티지와 반포자이 등의 물량을 전면에 내세워 홍보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그렇지만 막상 공인중개업소에서 이 아파트들의 전세물량을 찾기가 쉬운 것은 아니다. K부동산 관계자는 "각 중개업소가 평형별로 한 개 정도의 전세 물량을 확보하고 있지만, 그나마도 거래가 금세 되는 편이다"고 전했다.

입주 2년차에 접어들면서 전세 수요가 몰리자 집주인들은 전셋값을 올리고 있지만, 기존 세입자와 재계약이 이뤄지거나 비싼 전셋값에도 불구하고 아파트와 지역의 인기에 힘입어 새로운 계약자가 나타난다는 게 중개업자들의 설명이다.

◆세입자이지만 세입자가 아니다

래미안퍼스티지와 반포자이 그리고 반포힐스테이트의 등장에 힘입어 반포는 강남 아파트시장의 새로운 핵으로 자리잡았다. 한 부동산업 관계자는 "한때 도곡동 타워팰리스 등이 강남을 대표하는 아파트였지만 조금씩 중심축이 반포로 이동하고 있다"며 "주상복합아파트의 매력이 떨어지고 있는데다 교통, 학군, 집값 상승 여력 면에서 반포에 수요가 몰리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사실 아파트를 살 수 있는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반포 아파트에서 전세로 살려는 대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 래미안퍼스티지 인근의 J부동산 관계자는 "말이 전세 아파트이지 이곳 전세 거주자는 흔히 생각하는 세입자가 아니다"며 "세입자라해도 아파트에서 누릴 수 있는 편의와 혜택 등이 똑같이 돌아간다"고 말했다.

이어 "사실 이곳 세입자들이 집주인들보다 자산이 더 많다고 봐도 된다"며 "또 대부분 전세자금대출 없이 현금으로 계약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란 점도 감안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이 지역 전세 아파트가 인기를 끄는 이유로 학군의 영향을 빼놓을 수 없다. 계성, 잠원 등 사립초등학교를 비롯해 세화 및 세화여자 고등학교가 인근에 있어 학군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셈이다.

그렇지만 아파트의 이름값을 포기하고 규모만 조금 양보한다면 래미안퍼스티지나 반포자이 전셋값으로 반포 일대에서 아파트를 직접 살 수도 있다. 반포 한신 56m²(17평)의 경우 현재 매매가가 5억6000만~5억7000만원 선이므로, 래미안퍼스티지 82m² 전세에서 눈을 돌려볼 필요도 있다.

반포 N공인중개업소 대표는 "외관이 번듯한 아파트보다 내 집 마련과 경제적인 면을 중요시 여기는 사람들, 특히 신혼부부들에게 권하는 편"이라고 전했다.



매매가 대비 전셋값 비율이 90%인 아파트?

9000원을 내면 빌려 쓸 수 있지만, 여기에 1000원만 더 보탠다면 내 물건이 된다? 부동산 시장에서도 이런 경우가 있다. 바로 전셋값이 매매가의 90%에 달하는 아파트들이다.

부동산써브에 따르면 서울에서 매매가 대비 전셋값 비율이 가장 높은 아파트는 서대문구 북아현동의 경남2차 79m²(24평형)이다. 이 아파트는 평균 매매가가 2억1000만원이지만 전셋값은 1억9000만원으로, 전셋값 비율이 무려 90.48%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서초구 서초동의 삼성래미안유니빌 99m²(30평형)는 매매가가 2억8000만원이며, 전셋값은 2억5000만원으로 전세값 비율이 89.29%에 달했다. 이밖에 도봉구 창동 미소애 65m²(19평형), 서초동 서초이오빌 79m²와 83m²(25평형) 등이 매매가 대비 전셋값 비율이 87% 이상인 아파트들이다.

경기지역에서는 수원 및 화성 지역의 전셋값 비율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수원시 금곡동 신미주 79m²는 매매가 대비 전셋값 비율이 90.91%이다. 화성시 송산동 효일목화 89m²(27평형), 수원시 권선동 신명 26m², 권선동 동산 109m²(33평형)와 116m²(35평형) 등은 전셋값 비율이 86% 이상이다.

함영진 부동산써브 실장은 "물론 아파트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전셋값 비율이 높은 아파트는 대체로 단지 및 평형이 작은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그 지역의 집값 움직임을 주도하는 아파트로 보기도 힘들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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