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벨]‘론스타’만 웃을까 ‘하나금융’도 웃을까

더벨 김영수 기자 2011.08.12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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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l Story]외환은행 매각, 계약연장·가격할인 2차 SPA 성사

편집자주 이 기사는 자본시장 전문 미디어 머니투데이 더벨이 만든 자본시장 전문 매거진 thebell insight(제5호): 1st half of 2011, Korea capital market league table 에 실린 기사입니다.

더벨|이 기사는 07월26일(10:12) 자본시장 미디어 '머니투데이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승부사' 김승유가 사실상의 ‘마지막 승부’를 벌이고 있다. 목표는 론스타의 외환은행인데, 전선은 국민감정, 법원판결, 정부정책 등으로 넓게 펼쳐져 있다. M&A 계약기간을 연장하며 론스타에게 주식담보대출까지 제공한 ‘금융 10단’ 앞에는 통제하기 힘든 3가지 변수가 도사리고 있다.



2010년 11월 25일.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과 존 그레이켄 론스타 회장이 외환은행 주식매매약정서(SPA)에 서명했다. 2006년 외환은행 인수 실패, LG카드 인수 무산 이후 5년 만이었다. 금융위기 직후의 유동성 위기, 태산LCD 사태까지 감안하면 김 회장에게 외환은행 SPA는 감개무량할 수밖에 없었다. 금융위원회의 대주주 적격성 승인절차만 남아 있었다. 외환은행 인수는 기정사실 같았다.

그런데 예상 밖의 일이 터졌다. 지난 3월 대법원이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린 것이다. 청천벽력이었다. 하나금융도 국민은행이나 HSBC와 같은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쏟아졌다.



위기의 순간, M&A의 귀재로 불리는 김 회장의 승부사 기질이 발휘됐다. 김 회장은 계약기간을 6개월 연장하면서, 론스타의 고배당 논란을 의식해 배당액 만큼 인수가격을 낮추는 협상안을 제시해 관철시켰다. 반대 급부로 론스타에게는 1조5000억원의 주식담보대출을 제공했다.

은행법 개정으로 지분증권 20% 이상의 담보대출이 가능해졌다는 허점(?)을 철저하게 파고든 산물이었다. 결과적으로 하나금융은 계약연장과 가격할인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고, 론스타는 배당금과 1조5000억원의 대출까지 챙겼다.

작년 말 SPA 체결 후 6개월이 지나도록 진전이 없던 상황에서, 이정표를 찍은 셈이다. 김 회장의 치밀함과 집념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협상이었다는 게 금융권의 평가다.


◇ 김승유 회장의 외환은행 인수 '뚝심'

하나금융의 성장 과정에서 M&A는 빼놓을 수 없는 화두다. 하나은행은 충청은행, 보람은행, 서울은행 등 3개 은행을 차례대로 인수하면서, 시중은행 빅4 대열에 올랐다.

여기에 외환은행을 인수하게 되면, KB금융지주나 신한금융지주에 뒤지지 않는 위상을 갖게 된다. 외환은행의 글로벌 네트워크에, 기업금융과 소매금융의 시너지까지 더해져 명품 금융회사로 발돋움하기에 충분하다. 김 회장이 '생존의 문제'라는 표현까지 사용하면서, 외환은행 인수를 고집하는 이유다.

김 회장은 외환은행 인수를 위해 그간 신뢰를 쌓아왔던 국내외 금융인맥을 총동원했다. 32개 재무적 투자자(FI)를 끌어왔고, 동원 가능한 모든 재원을 동원해 인수여력을 과시했다.

외환은행은 하나금융의 생존 문제 뿐만 아니라, 김 회장 이후 하나금융의 미래라는 지배구조 차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나금융은 국내 금융지주사 가운데 유일하게 매트릭스 체제를 도입, 운영하고 있다. 매트릭스 체제는 최고경영자(CEO)에게 조직운영의 전권이 부여되는 구조로, 빠른 의사결정과 효율적인 조직 운영이 가능하다. 김 회장의 리더십을 '제왕적 리더십'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외환은행 인수가 완료되면, 김 회장이 구축한 매트릭스 체제가 안정화되는 동시에 하나금융-하나은행-외환은행-하나대투증권-하나HSBC생명보험-하나SK카드로 이어지는 금융그룹의 틀이 갖춰지는 것으로 평가된다. 김 회장 입장에서는 후계구도를 위한 준비가 마무리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김 회장 개인적으로 외환은행 딜은 금융인생 40년을 마감하는 마지막 M&A가 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외환은행 인수 협상에 '금융 10단의 승부사'라는 화려한 업적을 남기고, 명예롭게 은퇴하고픈 열망이 숨어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김 회장이 외환은행 딜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라고 하겠다.

◇ 주식담보대출, 묘수냐 악수냐

이 때문에 김 회장이 재계약 협상을 앞두고 찾아낸 주식담보대출에 대한 평가도 엇갈린다.

론스타가 보유하고 있는 외환은행 지분(51.02%) 전체를 담보로 잡고 1조5000억원 규모의 거액 대출을 해준 것을 두고 묘수라는 해석도 있고, 일부에서는 장고 끝 악수라는 견해도 제기된다.

하나금융 입장에서 외환은행 지분 전체를 담보로 확보한 만큼, 외환은행 인수에 대한 독점적 권한을 확보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론스타 역시 1조5000억원의 대출금으로 엑시트를 원하는 투자자에게 배당을 할 수 있게 됐고, 여전히 외환은행 대주주로서 배당금도 챙길 수 있는 여지를 만들었다.

이미 외환은행에 투자한 자금을 모두 회수한 론스타는 어떻게든 한국시장을 떠나는 전략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과도 맞아 떨어졌다. 정치 논리에 발목이 잡혀 번번히 외환은행을 매각하지 못했던 론스타에게 김 회장은 정당한 탈출구를 만들어준 셈이다.

하지만 이 거래가 하나금융과 론스타 모두에게 좋은 것일까. 론스타에게는 최상의 선택이 될 수 있지만, 하나금융에게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견해도 나온다.

외환은행 인수 승인 여부에 대한 결론이 장기화될 경우, 하나금융은 미래의 불확실성에 사로잡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사라진다.

외환은행 인수를 위해 조달한 1조5000억원을 론스타에 주식담보대출로 제공한 만큼, 다른 딜에 참가하기 어려워진다는 것. 전략적인 판단에 의해 외환은행 인수를 강행하고 있는 김 회장 입장에서 다른 대안을 모색할 기회를 잃어버렸다고 할 수 있다.

◇ 통제 불가능한 4가지 변수

외환은행 인수에 배수진을 친 만큼 실패했을 경우의 부정적인 파급효과는 상상 이상으로 클 것으로 예상된다. 때문에 하나금융은 외환은행을 인수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세우고 실행에 옮길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다면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는 가능할까? 현재로선 몇 가지 경우의 수를 따져봐야 한다.



첫째, (유회원 전 대표의 유죄판결을 전제로)론스타는 양벌규정에 대한 위헌제청심판을 청구할 계획이다.

☞ 양벌규정 => 법인에 고용된 임직원이 위법 행위를 했을 때 행위자 뿐 아니라 법인까지 동시에 처벌하도록 한 규정을 말한다. 론스타는 유회원씨가 주가조작 혐의로 유죄를 받더라도 법인인 론스타는 유죄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만약 헌재가 이를 받아들인다면,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는 더욱 미궁 속에 빠질 수 있다.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헌재가 신속한 결정을 내린다고 하더라도, 최소 1년 이상 걸릴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양벌규정 위헌제청 결과, '위헌' 결정이 날 경우 외환은행 매각은 급물살을 탈 수 있다. 반대로 '합헌' 결정이 나면 론스타도 '유죄'가 되므로, 대주주 자격을 박탈당하게 된다. 감독당국이 론스타의 대주주 적격성에 문제가 있다고 결론 내리면, 론스타는 10% 이상의 지분을 매각해야 한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합헌' 결정은 곧 론스타가 한국에서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공식화하는 것이다. 론스타 입장에서는 국제적 명성(Reputation)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분이다. 이를 고려해 또 다시 항소한다면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 가능성은 미궁 속에 빠지게 된다.

둘째, 하나금융이 제어할 수 없는 정치적 변수다. 과거 국민은행과 HSBC가 외환은행을 인수하지 못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정치 논리였다. 론스타 펀드 자체의 외환은행 인수에 대한 자격논란이다.

물론 금융위원회에서 론스타는 '산업자본'이 아닌 '금융자본'이라는 결론을 내린 상태다. 하지만 산업자본에 대한 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면서 끊임없는 정치적 이슈 메이커가 되고 있다.

금융위가 이 같은 논란을 피하기 위해 론스타의 대주주 적격성과 매각 승인을 미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셋째, 하나금융의 전략적인 우회다. 법원의 판단이 늦어지고 정치적 변수가 작용해 매각이 지지부진해질 경우 하나금융은 다른 길을 선택할 수도 있다. 물론 론스타 역시 다른 대안을 모색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마부작침(磨斧作針)'. 아무리 어려운 일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는 의미로, 김 회장의 금융인생과 더불어 외환은행 인수 추진에 비유할 수 있는 말이다.

김 회장은 외환은행 인수 추진과정에서 난관에 부딪칠 때 마다특유의 기지를 발휘해 예상 외의 카드를 꺼내는 면모를 보여줬다.

그런데 만약 11월 30일까지 외환은행 인수 계약이 성사되지 않아, 2차 SPA의 효력기한이 상실되면 어떻게 될까. 김 회장의 노회한 스타일을 감안하면, 또 다른 비장의 카드를 꺼내 들 가능성이 높다.

다만 고배당을 용인한 가격할인, 계약기간 연장을 위한 1조5000억원의 주식담보대출 등이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 외환은행 인수까지 남아있는 변수는 많은데, 하나금융과 김 회장은 모든 카드를 제시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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