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문제는 더 이상의 아래한글 개발은 중지한다는 불공정거래 조건이었다. 400만의 아래한글 사용자 입장에서는 MS사의 워드프로세서를 구입하고 사용법을 새로 배워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벤처기업협회가 이 비용을 추산한 바 한컴사의 매각이 1조원이 넘는 국부손실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MS사는 아래한글 때문에 일본에서 20만원이 넘는 워드를 한국에서는 거의 무료에 공급하고 있었다. 아래한글이 없어질 경우 신규 구입비용과 재교육 비용을 합하면 1조원은 쉽게 넘어설 거라는 계산이 나왔던 것. 이에 따라 그해 6월 18일 벤처기업협회는 아래한글 살리기 운동에 돌입하게 된다.
7월1일 ‘1조원의 가치, 한국 소프트 벤처의 기반‘이라는 성명을 발표하고 이찬진 한컴 설립자와 합의 조건인 ’100억원 투자 국민주 운동‘에 돌입하게 된다. 많은 언론들이 힘을 보태주어 아래한글 살리기 분위기는 고조되었고 우리는 성공을 자신하였다. 모금을 조건으로 이찬진 사장은 CTO로 역할을 변경했고 신임사장을 공모한다는 합의서도 발표했다. 7월 27일 30여 명의 지원자가운데 당시 지오이넷 사장이던 전하진 사장을 신임사장을 선정했다.
![1998년 7월 벤처기업협회와 한글학회 등이 주도해 만든 '한글 지키기 운동본부'는 한컴 신임사장으로 전하진 지오이넷 사장을 선임했다. 이찬진 전 사장은 CTO(최고기술경영자)로 역할이 변경됐다. 사진은 당시 신임사장 발표 모습. (이민화교수 제공)](https://thumb.mt.co.kr/06/2011/08/2011081013492434082_2.jpg/dims/optimize/)
실망스러웠지만 현실은 냉엄했다. 당시 한컴의 주가는 액면가인 5000원에 못 미치는 4000원 수준이라 정상적으로 신규 주식에 투자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 결과를 그대로 발표하면 자금회수를 유예했던 금융기관들이 달려들어 한컴은 MS에 넘어가게 된다. 어쩔 수 없이 무리수를 던지게 됐다. 새벽에 메디슨 이사회를 소집하여 이사들을 설득해서 50억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한 것. 이것이 바로 메디슨이 유일하게 비의료 기업의 주식을 보유하게 된 이유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한컴 지키기에 성공하게 됐고, 한컴은 8.15 판을 내놓아 1만원에 정품의 1년 사용권을 제공하게 된다. 요즘은 일반화된 ‘빌려 쓰는 소프트웨어(SaaS)’의 시초였던 것이다. 시장의 80%를 장악하며 400만 명 사용자가 있는 글이 연간 1만원의 사용료만 받아도 400억원이 아닌가. 1998년 상반기 30억원에 불과했던 한컴의 매출은 1999년 상반기에는 179억원으로 6배 급증하였다. 코스닥에서의 시장가치도 40억원에서 2000억으로 증가하였다. 액면가에도 못 미치는 주식에 투자했던 무식한(?) 투자가들은 20배 이상의 생각지도 못했던 수익을 올리게 된다. 1년이 지난 1999년 9월 뉴욕타임스는 “한국인들이 국가의 기술자산으로 여기는 한컴의 자본이 50배 증가했다. MS에 맞서 이렇게 싸우는 것은 전 세계를 통틀어 처음”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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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한글 살리기 운동의 가장 소중한 성과는 불법복제 단속과 정부 및 공공기관의 정품 구매 정책이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한국 소프트산업의 활로는 정품사용에 있다는 벤처협회의 건의를 받아들여 강력한 단속과 정품구매를 지시했다. 이때부터 한컴, 안철수연구소 등 소프트 기업들의 매출이 급증하고 코스닥 열풍이 힘을 얻게 된다. 글 살리기 운동은 벤처의 금모으기 운동이었던 것이다.
KAIST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