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디폴트 위기에도 美국채 오르는 역설의 이유

머니투데이 권성희 기자 2011.07.18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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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기축국인 미국이 디폴트에 빠지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 국채의 역설'이 눈길을 끌고 있다.

통상 채무 원리금을 갚지 못하는 디폴트 가능성이 높아지면 해당 국가의 국채 가치는 폭락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미국 국채값은 디폴트 우려가 고조되는 가운데 오히려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 국채가 통상적인 안전자산으로 여겨지긴 하지만 이번에는 미국 자체의 디폴트 우려라는 점에서 미국 국채 랠리는 합리적인 논리로는 이해하기 힘들다.

게다가 3대 신용평가사 중 무디스와 S&P 두 곳이 연달아 미국 국가신용 등급의 강등이 임박했을 수 있다고 경고까지 한 상태다.



미국의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지난 15일 0.05%포인트 하락한 2.91%를 나타냈다. 일주일 전인 지난 8일 3.03%에 비해서는 0.12%포인트 떨어졌다.(국채 수익률은 가격이 오를 때 떨어진다.)

지난 일주일은 미국 채무위기 우려가 고조되던 시기였다. 백악관에서 일주일 사이에 5차례 연속으로 채무 한도를 높이기 위한 협상이 이뤄졌지만 아무런 진전도 없었다. 채무 한도 증액을 위한 정치권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자 무디스는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을 본격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고 S&P는 이달 중에라도 미국의 신용등급을 낮출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은 오는 8월2일까지 채무 한도를 높이지 못하면 국채를 더 이상 발행할 수 없게 돼 채무 이자조차 갚을 수 없게 된다. 이 때문에 미국 정치권은 채무 한도 증액에 합의해 관련 법안을 시한전 상하 양원에서 통과시켜야 한다.


◆"설마 미국이 디폴트되겠어?"

정치권의 팽팽한 대치 상태로 미국 디폴트 우려가 고조되는 가운데 미국 국채에 투자자들의 돈이 몰리는 이유는 뭘까.



첫째, 설마 세계 제1의 경제대국인 미국이 디폴트에 빠지겠냐는 믿음이다.

미국의 채무위기는 그리스의 디폴트 위기와는 전혀 다르다. 그리스는 시장에서 아예 자금 조달이 불가능하다. 아무도 그리스 국채를 사려 하지 않는다. 반면 미국은 시장에서 얼마든지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문제는 채무 한도에 막혀 추가로 국채를 발행할 여지가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정치권에서 채무 한도를 올리자고 합의만 하면 디폴트를 피할 수 있다.

게다가 미국의 디폴트는 리먼 브러더스 파산 사태를 넘어서는 엄청난 사건이다. 제프리즈&Co. 채권그룹 내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워드 맥카시는 "미국의 디폴트는 어마어마한 재난"이라며 "미국의 디폴트는 우리가 알고 있던 금융시장의 종말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투자자들은 미국 정치권이 미국이 디폴트되도록 좌시하지는 않을 것으로 여전히 믿고 있다.



이는 지난 13일 이뤄진 320억달러 규모의 3년물 미국 국채 입찰 때도 여실히 증명됐다. 3년물 국채 금리는 0.67%로 결정돼 지난해 11월 이후 최저 수준이었다. 응찰률도 3.22배로 직전 4번의 국채 입찰 때 평균인 3.25배와 비슷해 여전히 견조했다.

◆"디폴트돼도 금방 대책이 나오겠지"

둘째, 투자자들 사이에는 미국이 8월2일까지 채무 한도를 늘리지 못해 디폴트된다 해도 일시적인 사건에 그칠 것이란 믿음이 있다. 이는 최근 만기 1년 미만의 단기 미국 국채의 인기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만기 1년 미만인 단기 국채는 이자가 지급되지 않는 대신 액면가 대비 할인된 가격으로 발행된다. 지금 95달러에 사고 3개월 뒤 만기 때 액면가 100달러를 받는 식이다.

투자자들은 만기가 8월 이후인 미국의 단기 국채를 선호하는데 미국 정부가 8월2일까지 채무 한도를 높이지 못해 기존 채무에 대해 이자를 지급하지 못한다 해도 단기 국채는 이자를 못 받을 위험이 없기 때문이다.

아울러 실제 미국이 디폴트되면 미국 정치권이 각성해 채무 한도를 늘릴 것이기 때문에 만기가 8월 이후라면 만기 때 정상적으로 국채 액면가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미국 디폴트가 일시적이라 해도 일단 디폴트되면 대규모 미국 국채 매도가 일어나며 가격이 폭락할 수 있다. 미국이 디폴트되지 않은채 신용등급만 강등돼도 미국 국채값은 급락의 소용돌이에 빠질 수 있다.

하지만 월스트리트 저널(WSJ)는 이 경우라도 전세계 금융 담당자들이 협의해 미국 국채 투매나 미국 국채 보유에 대한 담보 요구 증액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할 것으로 믿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국채를 가장 많이 보유한 투자자가 중국과 일본을 비롯한 세계 주요 중앙은행이란 점에서 미국 국채값 폭락은 세계 각국이 그저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는 사태라는게 투자자들의 판단이다.



◆"유럽이나 일본은 안전해?"

마지막으로 미국과 유럽이 모두 채무위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미국 국채를 대체할만한 뚜렷한 안전자산이 없다는 점도 미국 국채를 떠받치는 힘이다.

WSJ는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미국 국채를 대체할만한 규모의 안전자산이 없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장기 국채 발행 물량만 9조7000억달러에 달한다. 미국 국채 외에 안전자산으로 떠오르고 있는 금과 독일 국채, 스위스 프랑 표시 자산, 일본 엔화 표시 자산 등을 모두 합해도 미국 국채의 유동성을 대체할 수는 없다.



더 근본적으로는 유로화 통화 동맹인 유로존이 채무위기 확산으로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고 일본은 미국보다 더 높은 부채비율에 장기 저성장으로 시름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국채를 대체할 안전자산도 마땅치 않다.

일각에서는 중국과 브라질 등 신흥국 통화 표시 자산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지만 WSJ의 칼럼니스트 제이슨 즈웨이그는 신흥국 국채값이 이미 큰 폭으로 올랐다는 점을 감안하면 버블과 가격 급락의 리스크가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즈웨이그는 최고의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는 금조차 이미 많이 올라 하락 위험이 있으며 이자나 배당금이 전혀 없어 상승 차익 외에는 기대할 것이 없다며 사상 초저 금리 수준의 미국 국채보다 딱히 더 안전하거나 매력적인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다만 미국의 디폴트나 신용등급 강등 위험에 대비해 비달러 표시 자산의 비중을 높이는 등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할 필요는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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