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중국인의 변화…날로 높아지는 콧대

머니투데이 베이징=홍찬선 특파원 2011.07.13 11:35
글자크기

[머니위크]월드뉴스/ 홍찬선 특파원의 차이나 리포트<1>

편집자주 중국은 비행기로 2시간이 채 안 걸린다. 왕래하는 사람도 1년에 600만명이 넘고, 교역량도 2000억달러를 넘었다. 한국과 중국은 5000년 역사도 함께 하고 있다. 그러나 1948년부터 92년까지 44년동안 국교가 단절되면서 가깝고도 먼 나라가 됐다. 아직도 생각과 체제에서 좁혀야 할 것들이 많다. '차이나 리포트'는 홍찬선 머니투데이 베이징 특파원이 먼 중국을 가깝게, 가까운 중국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중국의 다양한 얼굴'을 2주에 한번씩 소개한다.

중국과 중국인의 변화…날로 높아지는 콧대


"4년 만에 찾은 베이징(北京)은 너무 달랐습니다. 공항에 영접 나온 사람은 물론 저녁 때 식당으로 안내하는 사람조차 없었습니다."

베이징대학 주최로 열린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 6월 말, 베이징을 찾은 한 지인은 "중국이 겁나게 변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4년 전 사회과학원 초청으로 베이징에 왔을 때는 전담 아르바이트 대학생이 모든 것을 돕도록 했다. 공항으로 마중 나온 것은 물론 세미나 중간의 휴식시간 때의 통역, 일과가 끝난 뒤의 식당 안내, 심지어 베이징 관광 때 가이드 역할까지 해주었다. 중국은 전문가를 어떻게 대우해야 하는지를 아는 나라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는 것이다.

프린스턴대 교수, 딸 데리고 베이징에…왜?



하지만 이번에는 180도 바뀌었다. 베이징에 도착 예정이던 날 오후, 낙뢰를 동반한 폭우 때문에 비행기가 베이징 서두우공항에 착륙하지 못하고 칭따오(靑島)공항으로 회항했다. 폭우와 낙뢰가 그친 뒤 베이징 서두우공항에 내린 것은 도착 예정시간보다 10시간이나 늦은 새벽 2시. 이미 택시는 끊겼고 공항버스만이 늦게 도착하는 손님들을 위해 운행되는 상황이었다.

중국어가 서툰 지인은 이런 상황을 알지 못하고 무작정 택시 승강장에 갔지만 택시도 없었고 기다리는 손님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손짓 발짓으로 알아낸 것은 공항버스를 타야 한다는 것. 어렵사리 버스에 오르니 '4년 전에 왔을 땐 내 이름이 적힌 피켓을 들고 기다리는 학생이 있었는데…'라는 생각이 저절로 떠올랐다.

그가 베이징과 중국이 변했다는 것을 느끼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최근 콜롬비아 대학에서 프린스턴대학으로 옮긴 한 미국인 교수가 호텔비와 항공료 등 일체의 비용을 자비로 들이고 베이징대학 세미나에 참석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 교수는 특히 중학생인 딸과 함께 베이징에 왔다고 했다.


교수 자신은 베이징의 경제와 금융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발전할 것인지를 알고 싶었고, 딸에게는 미래의 리더로 부상할 중국의 모습을 보여주고 중국어를 배우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설명이었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은 미국이나 독일 등에서 유명한 학자를 초빙하는 데 힘썼다. 한국이 아직까지 항공료와 숙박료는 물론 거액의 강연료까지 챙겨주며 외국 학자를 모셔오는 것처럼, 중국도 일체의 비용과 편의(전담 아르바이트생)를 제공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웬만큼 유명하지 않고서는 초청도 하지 않는다. "세미나나 토론회를 연다고만 하면 외국 교수들이 알아서 서로 오려고 하는데 비용과 편의를 왜 제공하느냐, 미국도 그렇지 않느냐"는 게 요즘 중국인들의 인식이다.

중국어 배움의 열기로 더 뜨거운 베이징

중국이 변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은 대학 교수들만이 아니다. 요즘 베이징 대학가에선 외국인이 넘쳐 난다. 여름 방학을 맞아 중국어를 배우기 위해 중국에 온 사람들이다. 대학생이 많기는 하지만, 어학연수를 온 회사원이나 은퇴한 뒤 중국어를 배우기 위해 온 나이 지긋한 사람도 적지 않다.

한위러(漢語熱)는 세계2대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이 문화에서도 대국으로 떠오를 수 있다는 점을 예고한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중국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100만명을 넘었고, 캐나다에서는 중국어가 2대 언어로 올라섰으며, 미국에서도 중국어를 배우는 사람이 해마다 수십만명씩 늘고 있다. 매월 치러지는 신(新)HSK(중국어능력시험)의 응시생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언어는 의사소통의 수단이지만 문화를 전파하는 기능도 매우 강력하다. 언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역사와 사상과 생활도 자연스럽게 익힌다. 처음엔 흉측스럽게 여겨져 철거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했던 프랑스의 에펠탑도 여러번 봐서 눈에 익자 예쁘고 멋있게 보이는 것처럼(에펠탑 효과 및 단순노출 효과) 중국어를 통해 접해지는 중국의 사상과 역사와 생활, 즉 문화는 봄비처럼 세계 젊은이들에게 스며들고 있다.



지구상 가장 길고 빠른 고속전철에 우쭐하는 중국인

'1달러짜리 셔츠 1억장을 팔아 보잉 제트여객기 1대를 산다.'

한때 '세계의 공장'이라는 별명을 가진 중국의 저가 공산품을 비아냥거릴 때 쓰는 말이었다. 기술수준이 낮은 상태에서 값싼 노동력으로 조립가공을 통해 저가 경공업 제품을 수출해 비싼 첨단기술 제품을 수입하는 현실을 비꼬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말도 더 이상 쓸 수 없게 됐다. 고속전철, 원자로, 광섬유, 우주선, 태양광발전 등에서 발군의 실력을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6월30일 개통된 '징후고속전철'은 베이징-상하이 간 1318km를 4시간48분에 주파하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길고 빠른 고속전철로 통한다. 비록 일본에서 도입한 기술로 특허를 출원했다고 해서 분쟁이 일어나고는 있지만, 중국의 고속전철 상용화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특히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고속전철 입찰에서 중국의 낙찰 가능성이 크다고 하니 중국인의 콧대가 높아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대형여객기 C919를 개발한 중궈샹페이(中國商飛)는 지난 6월21일, 파리에서 열린 항공기박람회(파리에어쇼)에서 프랑스의 CFM국제항공과 여객기 엔진 부품을 제조해 공급하기로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중국이 민간 여객기 부품을 수출키로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C919는 2014년에 첫 비행을 시작해 2016년에 여객기로도 투입될 예정이다.

칭화(淸華)대에서 개발한 고열가스냉각(pebble bed) 방식의 원자로는 현재까지 개발된 원자로 중 가장 앞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시에 있는 둥후(東湖)신기술개발구에는 세계적 경쟁력에서도 뒤지지 않는 중국 최대 광섬유 생산기지가 있다. 장쑤(江蘇)성 우시(無錫)시에 있는 선테크(우시상더(無錫尙德))는 태양광발전 분야에서 세계적으로도 가장 앞서가는 회사로 손색이 없다.

중국 하면 떠오르는 것은 지금까지 '저가 공산품'이었다. 하지만 중국은 올해부터 시작된 12차 5개년경제발전계획(12.5規劃) 기간 중에 중국 경제의 발전모델과 모습을 바꾸겠다는 쭈안싱(轉型)을 최우선 정책과제로 제시했다. 양보다 질을 강조하는 중국, G2로 부상한 중국과 중국인의 변화는 비행기로 2시간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한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