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길잃은 최강 스펙…청년창업에 길은 있다

머니투데이 유병률 기자, 기성훈 기자, 이현수 기자 2011.06.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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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10주년 기획] 88만원 세대를 88억원 세대로

스펙과 자기소개서에 찌든 20대지만 대한민국 역사상 이만한 세대도 없다. 아프니까 청춘이지만 희망이 있으니까 또한 청춘이다. 지난 10일 오후 서울 부암동 상명대 학생들이 환하게 웃으며 교정을 내려오고 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스펙과 자기소개서에 찌든 20대지만 대한민국 역사상 이만한 세대도 없다. 아프니까 청춘이지만 희망이 있으니까 또한 청춘이다. 지난 10일 오후 서울 부암동 상명대 학생들이 환하게 웃으며 교정을 내려오고 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1회> 20대를 이대로 내버려둘 것인가

오는 8월 대학을 졸업하는 김명선씨(24)는 취업원서를 쓰는 것도 지쳤다. 벌써 50번째다. 삼성에서 두달 인턴도 해봤다. 그러나 취업에 도움된 건 없었다. 학벌이 밀려서도 아니다. 그가 다니는 대학은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서울의 중상위권. 그래도 어딘가 하자가 있겠거니 싶었지만 얘기를 들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토익점수가 925점. 직장인 승진 커트라인보다 최소 125점은 더 높았다. 6개월 동안 다문화가정 자녀를 가르치며 봉사 스펙도 채웠다. 소위 '6대 스펙'(토익, 자격증, 어학연수, 봉사, 학점, 인턴) 어느 항목을 따져봐도 꿀릴 게 없었다. 스펙 좋다고 일 잘하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품질보증서 정도 의미는 있는 법. 그러나 품질의 문제가 아니었다. 개개인의 능력은 뛰어나지만 구성원 전체로는 가장 불행한 세대,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 20대의 현실이었다.

◇이만한 세대도 없다
대학 3학년인 김근일씨(25)는 아침마다 태블릿PC 알람소리를 듣고 일어난다. 등교 때는 애플리케이션(앱)으로 뉴스를 스크린하고, 트위터에서 눈에 띄는 소식을 접하면 팔로워들에게 리트윗한다. 수업 중에 모르는 게 나오면 인터넷으로 바로 확인하고, 비는 시간이 생기면 스카이프와 웹캠으로 어학연수 때 만난 외국인 친구들과 영상대화를 나눈다.



20대는 마우스를 쥐고 태어난 세대라고 할 만큼 디지털 친화적이다. 디지털기기를 장만해도 숙련까지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이전세대와 다르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대중화된 시기에 태어나고 자란 덕분이다. 김규동 숙명여대 글로벌서비스학부 교수는 "20대는 디지털이 생활의 일부가 된 대한민국 최초의 세대"라고 말했다. 스마트폰 가입자는 전체 가입자 가운데 35.1%(254만명)로 가장 많다. 개인 블로그 운영률은 75.7%로 30대(43.4%)를 훨씬 앞선다.

제일기획이 지난해 우리 국민의 디지털기기 밀착 정도를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에서 '디지털 생활인'이라 부를 만한 사람들은 20대(49.5%)가 절반을 차지했다. 이들은 영어에 관해서도 공포를 떨쳐버린 첫 세대라 할 만하다. 어학연수생 등은 매년 30만명에 육박하고 토플 성적(세계 46위)은 일본(58위) 중국(52위) 대만(54위) 등 아시아 경쟁국보다 앞선다. 문제는 이들의 능력을 사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갈길잃은 최강 스펙…청년창업에 길은 있다
마우스를 쥐고 태어난 新디지털족
20대는 스마트혁명 시대의 주인공
'6대스펙' 다 갖춰도 원서만 50번째
'대기업 바라기'보다 벤처창업 도전을


◇일자리가 아니라 좋은 일거리가 대안이다
이공래 한국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청년들이 창의적인 역량을 발휘해 새로운 업을 만들어야 자신은 물론 동료들을 고용하면서 청년실업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원에 따르면 벤처기업은 연구·개발 투자가 1% 증가하면 0.028%의 고용증대를 가져오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대기업의 기술혁신 활동은 고용증대와 상관관계가 없었다. 나아가 전문가들은 "청년벤처가 활성화돼야만 한국의 경제패러다임도 비로소 혁신적으로 바뀔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혁신은 고목(대기업)이 아니라 새싹(벤처)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이갑수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한국이 국민소득 2만달러를 넘어 선진국에 진입하려면 근면성실한 국가에서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국가로 변화해야 한다"며 "그 변화의 축이 바로 20대이고 벤처기업"이라고 말했다.

갈길잃은 최강 스펙…청년창업에 길은 있다
이는 스마트혁명의 시대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이민화 KAIST 초빙교수는 "스마트혁명은 15세기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한 것만큼이나 대사건"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터넷은 인류가 주체였지만 스마트혁명은 인류 자체를 바꾼다. 스마트폰이 인간의 아바타가 되고, 모든 사람이 슈퍼맨이 되며, 또 이들이 서로 연결까지 된다"며 "이런 혁명의 시대에 혁신을 주도할 수 있는 주체가 바로 창업하는 청년들"이라고 말했다.


◇청년창업 인프라를 만들자 
그러나 지금 20대에게는 공기업과 대기업 취업이 꿈이 되고 도전이 돼버린 게 현실이다. 기업가정신과 혁신이 들어설 자리는 미약하다. 지난해 한국고용정보원 조사에 따르면 4년제 대졸 청년층 가운데 창업을 희망하는 사람들은 1만2000여명, 2.7%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수, 학생 등 대학의 벤처기업 창업건수는 미국이 2007년 4543건, 중국이 5039건에 달했지만 한국은 2007년 1738건, 지난해에도 1845건에 불과했다.

 대학 재학시절 인터넷비즈니스 창업동아리 회장을 맡았던 오수현씨(25)는 "한번 창업에 실패하면 인생이 실패하는 구조에서 섣불리 창업에 나설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교내 벤처창업 경진대회, 전국 창업동아리 워크숍 등에서 입상까지했지만 결국 지난해 한 홍보대행사에 취업했다.

싸이월드 창업자인 이동형 런파이프 대표는 "한번 실패하면 인생 자체가 무너지는 연대보증의 악습을 없애고 실패한 이들의 등을 다독거려줄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며 "실패가 아름다워져야 청년들은 다시 도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양현봉 산업연구원 연구위원도 "벤처 창업에 인재가 몰리지 않는 것은 창업자 혼자 모든 일을 도맡아 해야 하기 때문"이라며 "정부와 금융기관, 벤처캐피탈, 창업선배 등이 함께 리스크를 나우고 창업을 지원하는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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