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과 대기업 취업은 20대들에게 이젠 꿈과 도전이다. 더 진취적인 게 아니라 더 안정적인 게 청년들의 도전이 돼버렸다. 더 슬픈 현실은 이들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더이상 일자리가 늘어날 수 없다는 것. 대한민국은 이들을 이대로 내버려둘 것인가. 지난 9일 20대 여성 구직자가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한 취업박람회 게시판을 들여다보고 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매주 2차례, 거의 2년을 이러고 살았죠." 지난해 서울의 한 사립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정모씨(26)는 40여곳에 취업원서를 냈지만 다 떨어졌다. 미국의 20대가 기업을 창업하고 세계 정보기술(IT)시장을 움직이는 동안 한국의 20대는 정작 전장에는 나가보지도 못한 채 이렇게 줄기차게 연습만 하고 있었다. 전문지식을 익히는 것도 아니다. 수년째 자기소개서(자소서)를 수정하고 스펙의 빈 칸만 채우면서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취재를 끝낸 기자에게 정씨가 조심스레 말을 붙였다. "기자님, 제 자소서 어떤지 한 번만 봐주실래요."
남재량 한국노동연구원 노동정책분석실장도 "신규대졸자에 대한 대기업의 노동수요는 이미 한계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연구원에 따르면 2005년 2만3000명이던 300인 이상 대기업의 신규대졸 취업자수는 올해 1만7000명으로 30%나 줄었다. 앞으로 더 줄지만 않아도 천만다행이라는 얘기다.
자소서·스펙 아무리 쌓아도 대기업취직 별따기
대한민국 살고 20대 살려면 일자리 아닌 일거리
그래서 많은 전문가는 "지금까지 대한민국 전체가 88만원 세대를 만든 공범이었다"고 지적했다. 일자리가 없는데도 20대를 끝없이 취업으로만 밀어넣었으니 말이다. 20대가 실업자의 길, 실패자의 길을 향해 돌진하는 것을 뻔히 지켜보고만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는 사이 청년실업자는 35만명에 달하게 됐다. 20대 비정규직도 102만여명으로 급증했다. 수십장, 어쩌면 100장, 200장도 넘게 수년씩 원서를 써보다 결국 비정규직이라도 가야 하는 게 지금까지 20대의 경로였다.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우회하는 징검다리가 될 수 없음은 자명한 사실. 20대 비정규직(신규 학교졸업자 기준)은 평균월급마저 2007년 115만원에서 지난해 95만원으로 감소했다. 정규직의 90% 수준에서 70% 수준으로 줄었다. 비정규직은 실패자로 가는 징검다리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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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벤처기업협회장을 지낸 이민화 KAIST 초빙교수는 "20대가 살고, 그래서 대한민국도 살려면 이들이 사회에 진출할 수 있는 새로운 출구전략이 제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그 출구는 20대가 기업가정신을 가지고 창업과 혁신에 나서는 것"이라며 "1990년대 말 인터넷혁명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거대한 흐름인 스마트혁명 시대에 한국을 세계경제의 선도자(First Mover)로 구현할 수 있는 유일한 세대가 바로 20대"라고 말했다. 일자리가 아니라 창업을 통해 좋은 일거리를 많이 창출해야 88만원 세대도, 대한민국도 희망의 출구를 찾을 수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