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 비리, 처벌 강화해야 발본색원"

머니투데이 김만배 기자, 배혜림 기자 2011.05.3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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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 고수를 찾아서]곽상도법률사무소 변호사

↑곽상도 변호사 ⓒ홍봉진 기자↑곽상도 변호사 ⓒ홍봉진 기자


2002년 안양 대양상호신용금고 비리 사건을 수사한 수원지검 특수부는 대주주와 브로커, 현직 국회의원 등 20여명을 일망타진했다. 이들의 불법대출뿐 아니라 금감원의 부실검사와 정·관계 로비까지 속속들이 파헤쳤다.

당시 대양금고에서 부정한 금품을 받은 김방림 의원이 구속되고 브로커로부터 검은 돈을 받은 의혹을 받은 현직 대통령 비서실장이 소환되면서 수사는 정점으로 치달았다. 검찰은 1년여의 수사 끝에 770억원을 불법대출한 대양금고 대표 등 22명을 무더기로 재판에 넘기는 개가를 올려 극찬을 받았다.



최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를 비롯해 전국 일선 지검에서 진행되고 있는 저축은행 비리 수사가 대양금고 수사와 똑같은 구조로 확대되면서 당시 수원지검 특수부장으로 수사를 이끈 곽상도(52·사진) 변호사가 주목을 받고 있다.

"10년 전과 동일한 형태의 범죄가 되풀이되고 있는 현실에 깊은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실형을 선고받은 범죄자가 옥중 경영을 하고 불법대출에 가담할 수 있었던 현실은 그야말로 난센스입니다."



◇저축은행 비리, 처벌수위 높여야 拔本塞源〓 곽 변호사는 대출비리가 반복되는 원인을 '양형'이라는 사법적인 잣대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대양금고 비리에 대한 처벌 수위가 높았다면 동일한 범죄가 재등장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향후 사법부가 보다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지 않는다면 이번 중수부의 저축은행 수사도 고질적인 병폐를 발본색원하는 계기가 되기 힘들 것으로 우려했다.

ⓒ홍봉진 기자ⓒ홍봉진 기자
수사는 비리가 발생한 이후의 2차적인 해결방안인 만큼, 저축은행의 내부 감사나 감독기관의 기능을 정상적으로 작동시키는 일이 시급하다는 근원 처방도 제시했다. 그는 "저축은행 내부의 감찰 기능이 수면 위로 올라간다면 수사기관이 나설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며 "모든 조직이 자정 능력을 키워야 우리 사회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기소사건 무죄율 0%' 경이적 기록〓 곽 변호사는 검찰 재직 시절 당대 최고의 '칼잡이'로 불렸다. 1989년 서울지검 강력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한 이후 '범죄와의 전쟁' 당시 소매치기 70명을 검거하며 역대 최고 단속실적을 기록했다. 이후 청구그룹 비리 사건과 인천 세도(稅盜)사건, 분당 파크뷰 특혜분양 및 용인 난개발 사건 등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사건을 줄줄이 해결했다. 특유의 매서우면서도 정교한 수사로 지금까지도 '특수수사의 교본'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곽 변호사는 대구 서부지청장 재직 당시 '기소된 사건 무죄율 0%'라는 경이적인 기록으로 대통령 훈장을 받았다. 이는 현재까지 검찰 내에서 깨지지 않고 있는 기록이다. 핵심 증인이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해 무리한 기소 논란으로 이어지는 일이 잦은 요즘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검사가 유죄 입증을 끝낸 사안이 아니라면 기소하지 말아야 한다"며 "미심쩍은 상태에서 법정에 증인들을 많이 세우는 일은 지양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곽 변호사가 검찰 역사상 최초로 도입한 '전화진술 녹음제'도 큰 몫을 했다. 진술이 육성 그대로 녹음되기 때문에 진술 번복으로 인한 불필요한 법정 다툼이 사라졌다는 평가다. 법정에서의 설왕설래가 줄어들어 검찰과 법원에 모두 효율적인 제도로 인정받고 있다.

◇"진술에 의존한 수사는 금물"〓 "입에 의존하는 수사는 지양해야 합니다. 객관적인 증거를 수집하고 그 증거를 냉정하게 판단하는 것은 검사의 역할입니다." 그는 후배들에게 당사자의 말만 듣고 판단하지 말고 현실 감각을 키워 적확한 증거를 수집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가르쳐왔다.

수사에 있어서는 '날선 칼'이지만 평소에는 따뜻한 성품을 지닌 것으로 후배 검사들은 그를 기억한다. 곽 변호사가 2009년 2월 검사생활 20여년을 마감하자, 후배 검사들이 검찰 내부 전자통신망에 그가 떠나는 것을 아쉬워하는 글 100여건을 올린 일은 유명하다.

ⓒ홍봉진 기자ⓒ홍봉진 기자
변호사로서의 제2의 삶을 살고 있는 그는 검찰이 먼저 국민의 입장을 이해해줄 것을 당부했다. 국민이 수사를 받는 당사자가 되면 검사는 업무가 과중하다는 이유로 검찰 편의주의적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곽 변호사는 검사 시절에도 후배들에게 "네가 피의자나 참고인이 되면 검찰의 조사방식과 결론에 수긍하겠느냐"라고 자주 물었다고 한다. 대구 서부지청장으로 재직할 때는 국민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책상 위의 명패를 없애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명패를 치우면 그 자리에 서류를 펼쳐놓고 당사자와 마주보며 얘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 편의주의' 버려라〓 검찰이 격무에 시달린다면 수사 인력을 늘리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게 곽 변호사의 견해다. 그는 대검찰청과 법무부에서 기획업무를 담당하거나 해외 또는 기관으로 파견된 '유휴인력'이 너무 많아 정작 수사 인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그는 "사건이 지연되고 있다고 국민이 아우성을 쳐도 검사들은 10년차쯤 되면 해외연수를 가거나 기획부서에서 연필만 굴리다 결재자가 되는 것이 현실"이라며 "초임검사가 일선 수사에 집중된 현 시스템을 개선해 실력이 물오른 시기의 검사를 수사에 투입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곽 변호사는 검찰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부정부패 수사에 대한 불신이 아니라 국민을 대하는 태도와 인식에서 비롯된다는 애정 어린 충고도 잊지 않았다.

"검찰권은 검사가 국민을 대신해 수사권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수사권을 위임한 국민이 수사를 받는 당사자가 됐을 때,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는 검찰이 돼야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검찰이 될 수 있습니다."

◇곽상도 변호사는=대구 출신인 곽 변호사는 대구 대건고와 성균관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1983년 제25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89년 서울지검에서 검사생활을 시작해 인천지검 검사와 대구지검 의성지청장, 대검찰청 검찰연구관, 수원지검 특수부장, 서울지검 특수3부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2009년 서울고검 검사를 마지막으로 검찰을 떠나 서울 서초동에 곽상도법률사무소를 열고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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