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채무재조정 한다? 안한다?

머니투데이 뉴욕=강호병특파원 , 권다희기자 2011.05.24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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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채무재조정 여부를 놓고 혼선이 계속되고 있다. 일단 안한다는 것이 공식(?)입장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할 수도 있다는 얘기가 조심스럽게 흘러나와 혼란을 주고 있다.

채무재조정(rescheduling 또는 restructuring)은 과도한 빚으로 상환이 어렵게 됐을 때 채권자들이 채무상환일정을 늦춰주고 금리를 낮춰주는 행위다. 우리나라가 97년말 환란을 만났을 때 받은 것과 같은 것이다. 법률상, 관행상 디폴트에 준하는 신용사건(credit event)이다. 원금 삭감은 보통 없지만 부채 상환일정이 늦어져 그만큼 상환채무의 현재가치가 낮아진다.



채무재조정이라는 금기의 단어를 입에 올린 사람은 유로존 재무장관그룹 의장인 장 클로드 융커 룩셈부르크 총리다. 그는 지난주초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그리스가 민영화를 포함, 강도높은 자구책을 내놓는 것을 전제로 그리스 채무 '리프로파일링(reprofiling) 또는 연성 재조정(Soft restructuring)은 고려해 볼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부실채권 처리를 의미하는 신용사건으로 간주하지 않은 상태에서 채무상환 일정을 늦춰줄 수 있다는 얘기였다. 융커 총리는 23일자 독일 슈피겔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도 같은 입장을 개진했다.



융커 총리의 제안 자체는 전혀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신임 총재로 유력시되는 크리스틴 르가르드 프랑스 재무장관, 올리 렌 유럽연합 경제금융담당 집행위원 등이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일축했다.

신용평가사 피치레이팅도 그리스 국가신용등급을 BB+에서 B+로 내리며 "그리스 채무 리프로파일링이 일어나면 디폴트로 보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융커 총리 제안을 반대하는 사람조차 채권자의 그리스 채무 '자발적(voluntary)' 만기연장은 반대하지 않는다고 밝혀 적쟎은 의구심을 낳고 있다.


올리렌 위원은 지난주초 유로존 재무장관 회동 후 기자들에게 "신용사건으로 보지않는다는 컨센서스만 있다면 그리스 채무 '자발적 리프로파일링'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융커 총리 제안을 강하게 물리쳤던 르가르드 프랑스 재무장관도 채권자의 일방적인(unilateral) 재조정은 굳이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 안도 논란의 소지가 많다. 자발적이라는 명분으로 신용등급 강등과 부실채권 처리를 수반하는 신용사건 절차를 피해갈 수 있느냐는 것이다. 신용평가사 관행으로 봤을때 신용사건에 해당될 가능성이 적지않다.

일반 채무재조정과 비교해 채무자가 먼저 해달라고 말을 꺼내느냐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관행상 나 혼자 선뜻 채무재조정을 해주겠다고 나설 기관이 있을리 만무하다. 이런 딜레마 때문에 채무재조정은 채무자-채권자간의 단체협상 성격을 띄어왔다.

이에 따라 그리스 해법은 민영화를 마지막 자구무기로 유럽연합과 국제통화기금 등으로부터 자금을 낮은 금리와 긴만기로 빌리는 대안만 사실상 남겨두게 됐다.

현재 외부지원 없이는 그리스는 부도가 불가피하다. 10년만기 금리가 17%, 2년만기 유통수익률이 20%를 훌쩍 넘는 살인적인 금리하에서 경제는 피폐해지고 있다. 재정지출 축소나 세금 인상도 사실상 한계에 육박, 민영화가 마지막 구명줄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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