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 대신 TV 사야 1등?"

머니투데이 최명용 기자 2011.05.04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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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경제교육, "세심한 관심 필요"...금투협 자료는 펀드가입 딱지치기 비유도

"펀드 가입 대신 90만원짜리 TV를 구매한 어린이가 일등을 하다니요. 경제교육이 소비를 조장하는 건 이상하지 않나요. 아이들에게 돈 생기면 무조건 쓰라고 가르쳐야 하나요."

얼마전 한 어린이경제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한 권모씨(37세)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교육프로그램은 전반적으로 좋았다. 아이들에게 금융과 경제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시간은 유익했다.



문제는 가상으로 살림을 꾸리는 보드게임.
보드게임은 200만원의 월급을 받으면 90만원을 고정비로 떼고 게임을 시작한다. 110만원 가운데 소비 저축과 보험, 펀드투자, 기부 등 4가지 카테고리로 돈을 사용하게 된다. 각 카테고리별 점수 가중치를 둬 점수만큼 말을 이동시키는 게임이다.

보드게임이 진행되다 보니 아이들 행동이 이상하게 나타났다.
처음엔 저축과 보험을 가입하던 아이들이 점점 "쓰고 보자"로 바뀌었다. 실제로 마구 써 댄 어린이가 1등을 달리기 시작했다.
저축이나 펀드로 막판 뒤집기가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결국 TV를 사고 자전거와 닌텐도를 산 어린이가 1등을 했다.



보드게임 규칙상 '소비'에 대한 가중치가 높았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론 '기부'가 가중치가 높지만 기부는 상한선이 20만원으로 제한돼 있다.

소비는 소비한 금액만큼 말을 전진시킬 수 있다. 90만원짜리 최신형 OLED TV를 살 경우 가장 많은 가산점이 주어지고 최고급 핸드폰 구매와 가족여행 지출 등이 높은 점수를 얻게 된다.

반면 펀드 투자나 저축은 이자에 해당하는 점수만 올라간다. 펀드 투자는 자칫하면 손해가 나 점수를 까먹을 수도 있다.


권 씨는 "교육 내용이 아무리 좋았어도 아이들이 기억에 가장 강렬하게 남는 것은 보드게임일 것"이라며 "펀드 가입을 유도해도 부족할 판에 소비를 조장하는 내용이어서 영 찜찜하다"고 말했다.

행사를 주관한 교육업체 측은 "보드게임을 한 두차례 하면 소비에 집중되는 현상이 나타나지만 반복하다보면 결국 소비와 저축, 보험 등을 골고루 해야 점수를 얻게 된다"며 "시행착오를 거쳐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보완해 갈 것"이라고 밝혔다.



어린이날을 맞이해 각 증권사 및 금융기관들은 앞 다투어 경제교육이나 경제 캠프를 만들고 있다. 하지만 부실하게 '얼렁뚱땅' 만들어진 교육 프로그램들이 적지 않아 교육효과는 고사하고 부작용만 커지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가 홈페이지를 통해 제공하는 어린이교육 교재에도 부적절한 사례가 올라가 있다.

저학년을 대상으로 제작된 '꿈꾸는 경제교실'이란 교재는 펀드가입을 딱지치기와 비유해 설명하고 있다. 딱지치기를 잘 하는 민수에게 딱지를 맡기고 민수가 딱지를 따면 이를 나눠 갖기로 했다는 비유다. 딱지치기를 잘한 민수에겐 아이스크림을 선물로 사준다는 식이다.
수수료 체계와 펀드 운용을 설명한 것이지만 비유로 든 '딱지치기'가 투자교육에 적절한 사례로 보기는 힘들다는 평가다.



'신용카드로 쇼핑을 많이 해 신용불량자가 되고 도박 빚으로 집이 경매로 넘어갈 수 있다'고 표현한 대목도 어린이 교육이 아닌 성인 교재를 그대로 옮겨 적은 것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어려서부터 금융 교육을 강조하는 것은 옳지만 부적절한 사례나 내용은 철저히 검증해야 할 것"이라며 "어린 시절 받은 교육은 작은 내용이라도 평생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보다 세심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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