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살기도 힘든데 펀드는 무슨…"

머니투데이 김성호 기자 2011.04.13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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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생활수급자 대상 '디딤돌펀드' 설정액 거의 제로…전형적인 전시펀드 지적

기초생활수급자인 김말년씨(60)는 얼마 전 은행 지점을 방문했다가 직원으로부터 다소 황당한 얘기를 들었다. 기초생활수급자를 대상으로 판매 보수를 할인해 주는 펀드가 출시됐으니 가입해 보지 않겠냐는 것이다.

김 씨는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벌이에 부양능력이 있는 가족도 없는 사람에게 펀드에 가입하라니 도대체 정신이 있는거냐"며 곧바로 뒤돌아 나왔다.



지난 3월 2일부터 우리은행 전국 지점을 통해 판매되고 있는 디딤돌펀드(우리프런티어배당주안정 1[채혼]C-d')가 현실과 동떨어진 상품 특성으로 고객들로부터 '찬밥' 대우를 받고 있다.

이 펀드는 기초생활수급자 및 국가 유공자, 베트남 참전 고엽제 피해자, 장애인 등 저소득자의 재산증식을 위해 설정된 것으로, 가입 고객에게는 기존 클래스에서 받는 보수 1.34%에서 50%가량이 할인된 0.73%를 적용한다.



이 펀드는 지난해 12월 금융투자협회를 중심으로 금융투자업계가 소외계층 지원을 위해 마련한 '나눔펀드'와 동시에 기획됐다.

13일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지난 11일 기준 이 펀드의 설정액은 90만8000원으로 집계됐다. 이나마도 출시 당시 이벤트성 자금이 유입된 것으로 파악된다.

출시 한 달이 지난 현재 펀드 설정액이 100만원에 미치지 못하는 데는 현실과 동떨어진 상품 특성이 크게 한몫하고 있다.
"먹고 살기도 힘든데 펀드는 무슨…"


실제로, 이 펀드의 가입 대상자는 기초생활수급자 등 대부분 정부로부터 생활비를 지원받는 저소득층이다.


가령 기초생활수급자의 경우 월 소득이 최저생계비 143만원(2011년 현재 4인 가구 기준) 이하고 부양능력이 있는 가족이 없는 사람으로, 정부로부터 일정금액 생활비를 지원받고 있다.

시청 한 관계자는 "기초생활수급자는 소득 뿐만 아니라, 금융재산도 심사대상이 된다"며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된 사람들은 사실상 예금여력이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펀드자금이 금융재산으로 분류될 경우 자칫 수급자 재산 변동으로 정부 지원금도 달라질 수 있어, 기초생활수급자가 펀드에 가입하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라는 지적이다.

유공자 등 그나마 투자여력이 있는 대상자도 일반 주식형펀드보다 상대적으로 수익률이 떨어지는 채권혼합형 펀드에 투자할 이유가 없어, 상품 경쟁력에도 문제가 있다는 평가다.

이처럼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펀드 설정에 대해 업계에선 '전시용 펀드'의 한계라고 꼬집고 있다. 심지어, 우리은행이 사실상 정부 은행이라는 이유를 들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연일 강조되는 '상생'이 오버랩 된다는 지적도 있다.

자산운용사 한 관계자는 "이 펀드의 메리트는 기존 펀드가 받는 보수의 50%가량을 할인해 주는 것"이라며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판매보수만 인하했을 뿐 운용보수는 그대로인데다, 고객의 호응까지 얻지 못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전시용 펀드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고 말했다.

한편, 이에 앞서 출시된 '나눔펀드' 역시 여전히 설정액이 미미한 수준이다.

장학사업 및 독거노인 지원을 위해 설정된 '산은2020주식형펀드(C-d)'와 어린이 및 장애인을 지원하는 '신한BNPPTops아름다운SRI주식형펀드(A-ch, A-ds)'는 지난 1일 현재 통계상 설정액이 '0'으로 표시돼 있으며, 그나마 다문화가정 및 결식아동을 지원하는 'KB스타한국인덱스주식형펀드(C-d)'가 104억원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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