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프리즘]서남표 총장을 위한 변명

머니투데이 최중혁 기자 2011.04.11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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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가 '패닉' 상태다. 학생 4명이 자살한 것도 모자라 교수까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 대학에서 채 넉 달도 안된 기간에 자살자가 5명이나 나온 것은 모르긴 해도 건국 이래 처음일 것이다.

책임론이 대두되지 않을 수 없다. 타깃은 이른바 '징벌적 차등등록금제도'를 도입한 서남표 총장에 모아지고 있다. 동료 국립대 교수인 서울대 교수들이 공격에 가담하고 시민단체는 감사청구에 나섰다.



이에 서 총장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거취 문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하지만 카이스트 '자살 사태'를 지켜보면서 이런 의문도 든다. 과연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해결책을 찾아가고 있는가.

먼저 이 문제부터 짚어보자. 과연 자살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정말 '징벌적 차등등록금제도' 때문인가.



전국의 많은 대학생들이 '학점 스트레스'를 받고 산다. 상당수 학생들은 'F학점' 권총을 차고 권총이 여러 개이면 그 무게에 못이겨 '학사경고장'까지 받는다. 그렇다고 이들이 모두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는 않는다. 대개는 '등록금이 왜 이렇게 비싸냐'며 투덜거린 후 재이수를 통해 '학점세탁'에 몰두한다. 이게 대한민국 대학생들의 상식이다.

그런데 이 상식이 왜 카이스트에는 통하지 않는 걸까. 우선 카이스트의 특수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카이스트에는 어렸을 때부터 영재 소리를 듣고 자라온 '공부 수재'들이 가득하다. F학점은 커녕 1등을 놓쳐본 경험이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에게 F학점은 단순한 성적 이상의 '자괴감'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이를 좀 더 논리적으로 표현했다. 교과부는 카이스트 자살 사태에 대한 견해를 묻는 질문에 "실패경험이 적은 학생들이 좌절감에 대한 면역력이 약한 것에서 초래된 것으로 분석된다"고 설명했다.


이는 비단 카이스트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서울대 등 명문대 수식어를 달고 있는 대학들에는 모두 통용되는 분석이다. 서울대에서도 매년 1~5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는 최근 통계가 이를 뒷받침한다.

초점은 결국 '실패에 대한 면역력', '좌절감에 대한 면역력'에 모아진다. 실패를 절대 용납하지 않는 사회분위기, '실패=성공의 어머니'가 아니라 '실패=나락'인 우리의 사회구조에서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행복한 공부' 전파에 열심인 박재원 비상교육 공부연구소 소장은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대한민국 부모들이 굳게 믿고 따르는 '학부모 문화'가 무엇인지부터 점검해야 한다. 우리 부모들은 '부모가 성적을 관리하고 챙겨야 자녀가 명문대에 진학하고 내로라하는 직업을 가질 수 있다'고 믿으며 '능력 있는 매니저'가 되고자 노력한다. 자신들의 노력과 희생이 아이를 위한 사랑이라고 믿고 싶어 하지만 아이들이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그만큼 실망과 배신감도 크게 느낀다."

물론 책임이 아이를 나약하게 키운 부모에게만 있다는 말은 아니다. 박 소장은 이 문화가 한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고 강변한다.

"대한민국의 학부모 문화에 회의를 느낄 때면 벗어나고도 싶지만 도저히 그럴 수가 없다. 주변을 돌아보니 모두 같은 길을 걷고 있어서 자신만 다른 길을 가는 것이 불안하기 때문이다. 자녀의 미래가 달린 문제인 만큼 부모의 마음은 조심스럽다. 그래서 위험부담을 최소화하고 적어도 남과 비슷한 수준에 있을 때 안정감을 느낀다. 이 때문에 많은 부모가 힘들어하는데도 학부모 문화는 굳건히 유지되는 것이다."

서 총장에게 책임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개혁을 추진하며 많은 부분 원인을 제공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다만 책임을 온전히 서 총장에게만 돌리는 것은 비겁해 보인다. 카이스트만의 특수성, 한국 영재들만의 특수성을 무시한 채 개혁을 강행한 책임은 있으되 '면역력'에 대한 책임은 그만의 몫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마도 주범은 무조건 성적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게 만든 그 무엇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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