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대지진]55층에 갇힌 불안, 대지진에 떠는 초고층 아파트 증후군

머니투데이 홍찬선 기자 2011.03.23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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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 멈춤에, 벽이 갈라지기도… 아사히신문 "주민들 불안감"

JR미카다역 앞에 있는 2동의 초고층아파트. 이 아파트 24층에 사는 나가모리 히로씨는 불안에 떨며 계단을 통해 1층으로 내려왔다. <br>
사진은 아사히신문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JR미카다역 앞에 있는 2동의 초고층아파트. 이 아파트 24층에 사는 나가모리 히로씨는 불안에 떨며 계단을 통해 1층으로 내려왔다.
사진은 아사히신문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


지난 11일 발생한 대지진은 도쿄 한복판에 있는 고층 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고 아사히신문이 23일 보도했다.

대지진 때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정지돼 1층으로 대피하기도 쉽지 않았던 데다 후쿠시마 제1원전과 대형 화력발전소가 대지진으로 파괴돼 전력공급 차질로 엘리베이터 운행이 평상시처럼 순조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쾌적한 마천루에 숨겨진 불안과 고충이 이번 대지진으로 드러나고 있다.



도쿄도(都) 주오구(中央區)의 초고층 아파트 55층에 살고 있는 주부(32)는 지난 11일 오후2시46분, 혼자 있던 집에서 지진을 만났다. 급히 테이블 아래로 숨어 천정에 있는 샹드리에가 5분 넘게 30~40cm 흔들리는 것을 불안하게 지켜봤다.

잇따라 올 여진이 무서워 테이블 아래에 몸을 숨긴 채 장남(5)과 차남(1)을 맡긴 보육원과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1시간이 넘도록 통화가 안돼 불안은 더욱 커졌다. 결국 오후 4시에 보육원으로 가서 두 아들을 데려오려고 했다.



하지만 높이 약180m의 55층에서 1층까지 10여초만에 내려가는 엘리베이터가 운행되지 않았다. 순찰중인 경비원에게 물어보니 "고장이 아닌가 점검중이다. 언제 복구될지 모르겠다"고 했다. 할 수 없어 비상 계단을 통해 10분이나 걸려 1층으로 내려갔다.

약 3km 떨어진 곳에 있는 보육원은 버스를 타면 15분에 도착할 수 있다. 하지만 그날은 보육원도 통학 버스를 운용할 수 없고 노선 버스는 만원이라 도저히 탈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40분이나 걸어서 보육원에 갔다. 불행 중 다행이었던 것은 보육원으로 가는 도중에 전화가 걸려와 두 아들이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었다.

두 아들과 함께 아파트에 도착한 것은 오후 5시30분 경. 3층에 있는 휴게실에서 엘리베이터가 수리되기를 기다렸는데 시간이 저녁 7시를 넘었다. 아이들이 배 고프다고 보채서, 혼자 계단을 통해 55층까지 걸어 올라가서 아이를 등에 멜 수 있는 '베이비 카'를 갖고 3층으로 내려왔다. 베이비 카에 둘째 아들을 업고 장남의 손을 잡고 다시 계단으로 55층으로 올라갔다.


다섯 살 밖에 안 된 장남도 큰일이 났다고 생각했는지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 게다가 작은 물건 보따리도 들고 올라갔다. 20층마다 한 번 씩 쉬면서 55층까지 올라가는데 30분이나 걸렸다. 결국 집과 보육원을 왔다 갔다 하는데 평소보다 8배나 긴 4시간이 걸렸다.

15일밤, 시즈오카현에서 진도 6이 넘는 여진이 발생해 상드리에가 다시 크게 흔들렸다. 4일 전의 공포가 되살아나 벽에 걸려 있던 액자를 떼어냈다. 의사인 남편은 피해지로 파견될 가능성도 있다. 그는 "남편이 없을 때 지진이 또 발생하면 아들 둘과 함께 비상계단으로 내려갈 수 있을까, 걱정된다"고 털어놓았다.

무릎이 아픈 85세 할머니, 걸어서 24층에서 내려와

JR미카타 역에서 가까운 초고층 아파트의 24층에 살고 있는 나가모리 히로씨(85)는 지난 11일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집안 전체가 크게 흔들려 그랜드 피아노 다리를 붙잡았다. 아들 부부는 외출중이어서 혼자인 상태.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소리쳤지만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 배 멀미를 하는 것처럼 정신없이 흔들렸고, 식탁과 찬장에서 컵과 그릇이 떨어져 깨지고 방문이 열리고 닫혔다.

'어떻게 해서든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행각해 문을 나섰지만 엘리베이터는 운행되지 않았다. 허리와 무릎이 아팠지만 계단을 통해 7~8분 걸려 1층으로 내려왔다. 그는 "흔들려 너무 무서웠다.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해 죽을 힘을 다해 1층으로 내려 간 것이다"고 말끝을 흐렸다. 오후 6시에 비상용 엘리베이터가 운행돼 자택으로 돌아갔다.

그는 지진이 난 이후에 외출을 삼가고 있다. 무릎이 아플뿐만 아니라 다시 지진이 와서 엘리베이터가 멈추면 집으로 돌아올 수 없을 것이 불안하기 때문이다. 피해지역을 떠올리며 아는 사람과의 식사 약속도 취소했다. 17일에 처음으로 물건을 사러 밖에 나왔는데 쌀가게에 사람이 길게 늘어서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여진이 올 때마다 벽에 균열

도쿄 주오구(中央區)의 40층 이상의 한 아파트는 여진이 일어날 때마다 방 전체가 돌아가는 것처럼 흔들리며 '끽- 끽-'하는 소리가 천장과 벽에서 들린다.

배 멀미 하는 것처럼 흔들리는 것은 고층 아파트의 고유한 특징. 과거 지진에서도 이런 현상이 일어났다. 그럴 때마다 관리회사는 "구조에 문제가 없다. 흔들림을 이겨내기 위한 소리"라고 설명했다. 이번 대지진 때도 안전을 강조하는 안내문이 아파트 입구와 엘리베이터 안에 붙었다.

대지진이 일어난 다음날, 이 아파트에 큰 여행용 가방을 챙긴 중년의 부부가 프런트를 찾았다. "벽에 금이 가고 시멘트 가루가 떨어진다. 이렇게 위험한 아파트에서는 살 수 없다"고 벌컥 화를 냈다. 당황한 관리회사 직원이 부부와 함께 아파트 안을 점검했다.

31층에 사는 여성의 아파트에는 거실에 두군데, 화장실에 한군데, 벽지에 금이 갔다. 여진이 있을 때마다 균열이 상하로 커져 천장에서 침대까지 일직선이 됐다. 벽지 안의 석고 보드에도 폭 1~2mm의 균열이 생겼다.

관리회사에 따르면 석고 보드의 이음새가 틀어져 균열이 생겼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구조적 위험은 없지만 전체 입주민으로부터 피해상황을 접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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