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달프지만 행복한 패션 독립군

머니위크 문혜원 기자 2011.04.10 10:27
글자크기

[머니위크]인디 디자이너의 세계··· '나만의 색깔'로 승부 관건은 마케팅

해마다 각 대학에서는 수만명의 전도유망한 디자이너들이 배출된다.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이 다녀 유명해진 미국의 파슨스 디자이너스쿨은 재학생의 30% 이상이 한국인이다. 이런 고급 인력이 넘쳐나니 '패션강국'으로 불릴 법도 하다. 하지만 현실은 어떨까? 국내 신진 디자이너들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전전하거나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디자이너들은 패션회사에 입사하는 대신 개인의 브랜드를 런칭하는 길을 택한다. 인디 디자이너들이 점차 늘고 있는 이유다.



최근 패션업계에서는 이러한 시류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 3월, LG패션은 TNGT 신사동 매장을 신진 디자이너와 인디 디자이너에게 내줬다.





'팝업스토어'로 변신한 것인데 신진 디자이너에게 새로운 유통망을 열어주기 위한 의도로 LG패션 (14,890원 ▲40 +0.27%)에서는 올해 처음 시도한 행사다. 팝업스토어란 인터넷의 팝업창처럼 일시에 생겼다가 사라지는 매장이다.

이곳에서는 23명의 인디 및 신진디자이너들이 자신들의 상품을 팔았다. 이 프로젝트에 발탁된 디자이너 강진주 씨는 "매장 수수료가 17%정도로 다른 매장에 비해서 저렴하다"며 "이런 편집 매장을 통해 소비자들의 반응을 알아볼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꿈 찾아 나온 인디 디자이너, 마케팅이 관건

인디 디자이너란 대형 브랜드에 속해있지 않으며 자신의 옷을 직접 생산, 유통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옷의 디자인에서부터 판매까지 한 사람이 담당하는 것이다.




이곳에서 만난 인디 디자이너들은 "마케팅이 가장 힘들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강남이나 홍대 등지에 개인 브랜드숍을 열기도 하지만 그럴 자금 여유가 없는 디자이너들은 편집매장을 이용하기도 한다. 편집매장은 다양한 개인 브랜드들이 모여 각각의 개성을 드러내는 가게다. 명동의 'A LAND', 'Level 5', 강남의 '플로어' 등 유명 편집매장에 입점을 시켜 브랜드를 알리는데 주력한다. 하지만 높은 수수료를 치러야 하는 단점이 있다.



'위즈위드'나 '롯데팝업캐스트' 등 온라인 매장도 높은 수수료를 받기는 마찬가지. 개인브랜드를 연지 2년 된 한 디자이너는 "롯데팝업캐스트에서 옷을 팔았는데 마진의 절반을 수수료로 떼어가고 재고부담도 디자이너가 다 떠안아야 한다"며 "당시에는 너무 힘들어서 곧 매장에서 옷을 철수했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디자이너는 "매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발품을 파는 수밖에 없다"며 "그래도 뛰는 만큼 수익은 나는 편"이라고 말했다.

윤리적 패션을 지향하는 김진화 오르그닷 대표는 디자이너가 심혈을 기울인 디자인이 상품화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소량생산하기 때문에 봉제장인들의 손을 거치지 않고 샘플실에서 비싼 값을 치르고 상품을 제작하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유통은 그나마 좋아졌지만 상품 제작과 제품 개발에는 여전히 문제가 있다"며 "인디 디자이너의 옷이 상당이 비싼데 소량 제작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 디자이너의 꿈, 개인브랜드 런칭



디자이너에게 있어서 자신의 브랜드를 갖는다는 것은 모든 힘든 과정을 상쇄할 만큼 매력적인 일이다.

구두 디자이너 박소현 씨 역시 자신의 브랜드를 가질 꿈으로 시작했다. 이제 브랜드를 런칭한 지 6개월째. 여느 인디 디자이너들이 그렇듯 아직은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 박씨가 디자인한 구두는 독특하다. 논현동 의류 매장의 한켠을 빌려 '에시드펑크'라는 브랜드를 냈다.

박씨는 원래 대형 브랜드에 속해있으며 잡화부문 팀장까지 맡았다. 그는 "브랜드를 통해서 배운 것은 많지만 자신이 원하는 디자인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며 "가죽으로 작업해서 샘플을 만드는 데도 높은 비용이 들어가 만만치 않지만 내 브랜드를 갖고 있다는 쾌감은 비교할 수 없다"고 말했다.



24세인 김종아 씨는 6개월 만에 매출 1000만원을 올리는 디자이너가 됐다. 양말을 너무 좋아한 김씨는 아예 양말 브랜드 '삭스얼리유얼즈'를 공동 런칭했다. 그가 양말사업을 시작한 건 '해피삭스'라는 유력 양말기업이 외국 브랜드라는 것을 알고 난 후다.



국내에 이렇다 할 양말브랜드가 없자 우리나라에도 독자적인 양말 브랜드를 내야겠다는 생각에 자신만의 양말 브랜드를 런칭하게 됐다. 현재 'A LAND' 등 편집매장에 입점해 있으며 한달에 1000족씩 팔린다. 한켤레에 7000~1만5000원인 점을 감안하면 1000만원 정도의 매출을 올리는 셈.



6개월 성과 치고는 적지 않은 수치다. 개인브랜드다 보니 원가의 5~7배가 마진으로 남는다. 일반 브랜드가 2~3배인 것과 비교해 상당히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는 것.

그런 그도 처음에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큰 포부를 안고 젊음의 거리 홍대에 양말 5000족을 가지고 갔다가 11시간 동안 단 3켤레만을 팔았다. 그나마 판 양말도 할머니들이 등산갈 때 신기 위해서였다.

김씨는 "내 디자인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없는 것을 알고 하루 정도 폐인이 됐다"고 회상했다. 그는 절망감을 딛고 다시 강남으로 눈을 돌렸다. 일일이 사람들을 만나고, 샘플을 드리는 등 쉬지 않고 사람들을 만나며 판로를 개척했다.



김씨는 "양말은 앞으로 더욱 각광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니삭스(Knee Socks)나 레깅스 들이 유행을 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최근 또 다른 양말 브랜드 '비 삭스'를 런칭했다.

'스크런치드라이'란 개인 브랜드를 갖고 있는 강진주 씨는 원래 의류기업인 예신PJ의 MD(상품 디렉터)로 일했다. 디자이너에 대한 꿈을 버릴 수 없었던 강씨는 디자인 공부를 한 후 2년 전, 논현동에 단독 매장을 열었다. 강씨가 만든 옷의 특징은 여성의 실루엣을 살리면서도 프린트가 독특하다는 것.

그는 현재 유럽과 일본시장을 노린다. 국내시장은 유통 수수료가 너무 높기 때문이다. 마케팅은 따로 홍보 대행사를 섭외했다. 그는 프린트로 특화된 상품을 만들기 때문에 1200만원이나 하는 디지털 프린트 기계에 투자하기도 했다.



강씨는 "처음에는 시행착오가 많았지만 런칭 2년째라 매출은 안정된 편"이라며 "이 정도면 중견 디자이너에 속하지 않을까요?"라며 웃어보였다.

패션업계 인디 디자이너 발굴 현황은?

LG패션은 지난 3월16일부터 20일까지 5일간 팝업스토어 '티움'(Ti:um)을 진행했다. 티움은 실력은 있지만 활동 범위가 제한적인 신예 디자이너를 위한 자리였다.

이미연 LG패션 차장은 "TNGT매장은 젊은이들이 자주 찾는 길목에 위치해 있고 매장도 커서 편집매장으로 적격"이라며 "소비자들의 반응을 보면서 두 달에 한 번꼴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패션 업계에서는 한국 패션의 발전을 위해서 자발적으로 이러한 프로젝트를 열고 있다. 제일모직에서는 SFDF(삼성 패션 디자인 펀드)를 만들어 해외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를 후원한다. SFDF는 한국패션의 국제적인 위상을 높이기 위한 시도다.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5년 미만의 한국인 디자이너를 대상으로2006년도 첫 수상을 시작으로 이미 6회째 진행하고 있다.

김성희 SFDF 기획팀 차장은 "한국 패션 기업의 책임감으로 시작하게 됐지만 수상의 인지도와 권위가 생겼다"며 "이미 정욱준, 두리정, 임상아 등이 SFDF출신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들 덕분에 제일모직의 위상 역시 높아졌다"고 말했다.

제일모직은 상을 수여하고 이들과 함께 콜라보레이션(협업)을 진행해 한국 소비자들에게 이들의 옷을 알리기도 한다. 김 차장은 "수상한 디자이너들은 국내에는 거의 소개가 안되거나 한국 마켓을 모르기도 한다"며 "디자이너들도 한국을 이해시키고 한국 고객과 만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디 디자이너, 패션산업 전반을 이해해야"
이보현 슈콤마보니 대표

이보현 슈콤마보니 대표는 인디 구두 디자이너에게는 선망의 대상이다. 여성 부띠크 구두 브랜드인 슈콤마보니를 런칭한 지 이제 8년째. 2003년 2월 문을 연 슈콤마보니는 이제 국내에 16개의 매장과 미국, 일본, 홍콩, 싱가포르를 비롯해 중동과 아일랜드까지 브랜드를 확장했다. 이 대표 조차도 회사가 이렇게 성장할 지 예견하지 못했다. 그저 자신이 신고 싶은 구두를 만들고 싶은 생각이었다.





◆패션산업 이해해야 성공한다

이 대표는 인디 디자이너들에게 날카로운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자신의 생각이 보수적일 수도 있지만 브랜드 회사에서 먼저 과정을 밟고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인디디자이너들이 많이 나오지만 저는 좀 의문이에요. 과연 그들이 얼마나 준비하고 차별화된 제품을 들고 나왔을지 말이죠. 젊은 사람의 패기만 갖고 뛰어들어서는 금세 사라지기 십상이에요. 또 디자인만 잘하는 게 아니라 사업적인 수완도 좋아야 해요. 그럴 각오가 돼 있어야 해요."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건 그 역시 단순히 디자인만 갖고 승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소비자의 요구를 파악하지 않은 디자인은 그저 예술에 불과하다고 잘라 말했다. 지금의 슈콤마보니를 키우기까지 그는 남성 패션복 디자이너 실장을 거쳐 구두 무역, 또 공장에서 신발 생산을 배웠다. 신발을 배울 때는 신발 장인들에게 커피를 타주며 밤 12시가 넘도록 공장에서 상주했다. 이 대표는 신발 산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체득했다.

"매사에 이유가 없는 과정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에이전시(대행업) 활동은 신발 산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배우게 됐죠. 지금 슈콤마보니를 키우는 데 도움이 됐어요."

청담동에 슈콤마보니 매장을 처음 열었을 때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안 팔려도 좋다'는 생각으로 소량 생산했는데 일주일도 채 지나기 전에 매장에 진열용 구두만 빼고 다 팔렸다. 주문도 몇 달치가 한꺼번에 들어와 1~2달 대기해야만 했다.



"기존 브랜드와 차별화된 신발을 추구했어요. 우리는 검정색 구두는 만들지 않았거든요. 화려한 신발 개념이 없던 당시 우리는 젊은 여성들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한 거죠."

개인브랜드가 슈콤마보니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기성 구두들과 차별화하지 못한 채 나왔다가 금세 사라졌다.

이 대표는 자신에게 운도 따랐다고 말한다. 미국 드라마인 <섹스 앤더 시티>(Sex and the City)의 영향도 있었다. 구두를 패션으로 인식하게 되며 구두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도 높아졌다.



◆ 넘쳐나는 카피 제품에 골머리 앓기도

런칭 직후부터 이른바 '대박'이 난 이 대표지만 그 역시 나름의 힘든 시기를 겪었다. 구두의 품종은 다양하나 작은 가게여서 소량 생산했기 때문에 공장 측과 가격을 맞추기가 어려웠다. 가격 책정 역시 그에겐 어려운 일이었다.

디자인 카피도 이 대표의 골머리를 썩였다. 6개월 동안 무수한 고민을 거쳐 만든 디자인이 순식간에 카피됐다. 지난해 슈콤마보니가 워커(군화 스타일의 신발)를 유행시켰는데 성수동의 신발공장들은 죄다 워커만 만들었다.



"지금은 브랜드로 인정을 받지만 막 매장을 오픈했을 때는 동대문에서도 똑같은 거 판다며 환불해 달라는 전화도 받았어요. 그땐 정말 이 비즈니스 못하겠다는 생각에 좌절감이 컸었죠."

패션 변방인 한국이 세계 시장에서 겪는 서러움도 있었다. 한국 브랜드나 디자이너들은 트렌드 쇼에서도 보다 엄격한 검증을 받아야 했다. 상대적으로 후지다고 생각하는 중국 브랜드와 동급 취급을 받기도 했다.

슈콤마보니 직원들은 이 대표를 '대표'라고 부르는 대신 '실장님'이라고 부른다. 이유는 이 대표가 '대표'로 불리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기 때문이다. 사업가보다는 디자인 팀 실장에 대한 애착이 많아서일 것이다. 이 대표는 그만큼 자신의 브랜드 디자인에 대해 자신감을 갖고 있다. 그 속에는 국내 브랜드가 아직 정체하고 있는 데에 대한 안타까움도 서려있었다.



"전 아직도 감히 말할 수 있어요. 슈콤마보니를 뛰어넘는 개인 브랜드 매장이 없다고요. 저도 라이벌 브랜드가 있어서 경쟁하고 싶기도 하고요. 더 채찍질해야 더 성장할테니까요."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