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도 900조 육박 빨간불
‘공짜 점심은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정부가 받아들였다. ‘5% 성장과 3% 물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겠다던 정부의 거시경제정책 목표가 물가로 확실히 방향을 전환했다. 10일 이명박 대통령은 “물가에 국정의 총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은 두 달 만에 또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무섭게 치솟고 있는 물가와 900조원에 육박하는 가계부채의 폭발력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어서다.
“물가도 살인적인데 금리까지….” 10일 오전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상 소식을 들은 신상균(65)씨의 주름살이 깊어졌다.
신씨의 심정은 그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중산층과 서민 모두 물가와 금리의 협공에 갈수록 설 자리가 좁아진다고 느낀다. 한은이 이를 모를 리 없다. 물가를 선택해 금리를 올리면 경기 상승세가 꺾인다. 하지만 ‘5% 성장’에 매달리기엔 상황이 너무 급해졌다. 2월 물가는 전달에 이어 4.5% 상승했다. 한은의 물가안정 기준치인 3%는 물론 상한치 4%도 훌쩍 넘긴 수치다. 체감도가 높은 전셋값과 생활물가 상승폭은 훨씬 크다. 앞으로의 상황도 낙관적이지 않다. 지난달 생산자물가지수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6.6% 올라 25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김중수 한은 총재는 금통위 뒤 브리핑에서 “상반기 물가가 예상했던 3.7%보다 더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도 9일 한 강연에서 “물가불안으로 전반적 불확실성이 높아 우리 경제 회복 흐름이 계속될 수 있을지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재정부는 ‘물가 상승은 유가 등 공급 측면의 압력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일 수 있다’던 입장을 ‘과도하게 많이 풀린 돈이 경기상승세와 맞물려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유발하고 있다’로 수정했다.
급속히 늘어난 가계부채는 가장 큰 부담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정부는 5%대이던 기준금리를 2%로 낮춰 경기침체에 대응해 왔다. 이 과정에서 2002년 497조원이던 가계부채가 지난해 말 896조원으로 불어났다. 빚을 갚아야 하는 가계의 부담이 더욱 무거워진 건 당연지사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비중은 2009년 말 80.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5개 국가 중 11위다. 가계의 상환능력을 나타내는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비율도 지난해 153%를 기록해 미국(126%)이나 일본(135%) 수준을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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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규모 못잖게 대출의 질이 떨어지고 있는 것도 걱정거리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카드론과 저소득층 신용대출이 급속히 증가했다. 부실 가능성이 큰 대출이 많이 늘어났다는 의미다. 상대적으로 부실 가능성이 큰 비은행권 가계대출도 전체 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다고 해서 안심할 수만은 없다. 저신용층의 연체율 상승이 지속되면 상환능력이 충분한 상위계층까지 영향을 받는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최소한 상반기까지 성장보다 안정에 중점을 두고 정책을 펼쳐야 한다”며 “금리는 현실적으로 4% 초반을 목표로 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지적했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도 “가계부채와 물가를 미시적으로 대응할 단계는 이미 지난 만큼 금리와 환율 등 거시경제정책 수단으로 큰 흐름을 잡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