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의 생떼, 흔들리는 민자사업

더벨 이승우 기자 2011.02.24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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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벨|이 기사는 02월21일(07:57)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선거철이 되면 어김없이 쏟아지는 공약이 도로·경전철과 같은 해당 지역 사회간접시설(SOC) 건설이다. 이념보다 실용에 점차 눈을 떠가고 있는 유권자들은 반색하며 표를 던진다.



하지만 공약을 했던 정치인의 임기가 끝나면 분위기가 좀 달라진다. 도로는 만들어졌는데 통행료가 너무 비싸다는 여론이 나오면서 해당 사업에 대한 적정성 문제가 봇물처럼 제기된다. 공약을 내놨던 정치인이 사라지고 새 인물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 상황은 더 꼬여간다. 비싼 통행료를 낮춰달라는 비난 여론을 등에 업고 해당 SOC 사업 이해관계자들을 압박하기 시작한다. 전 실세의 비리와 사업자와의 유착 등을 들먹이기도 한다.

이런 경우는 한 두건이 아니다. 최근 준공이 돼 운용 단계에 들어간 거가대교는 경남도에서 기존 최소운용수입보장(MRG) 비율 90%를 77.5%로 내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용인경전철은 MRG 인하 요구를 들먹이며 준공승인을 해주지 않고 있다. 다 만들어 놓고 기회비용을 까먹고 있는 것이다. 부산-김해 경전철과 의정부 경전철, 인천 문학터널, 원적산터널, 만원산 터널 등 민자사업 대부분이 같은 처지다.



SOC 시설을 이용하는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이해된다. 하지만 사업자의 순수성이나 수익성 등 뒷 이야기는 별개로 하고 사업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에서만 보면 이건 '재앙'이다. 특히 자금 지원에 나선 금융회사들은 더욱 그렇다. SOC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대해 조금만 이해하면 공감할 것이다.

아파트와 주상복합 등 담보 대출 형태의 부동산 개발 PF와 달리 SOC PF는 금융구조가 상당히 체계적이고 과학적이다. 정확히 얼마의 금융을 지원해 얼마만큼 사업비로 쓰고 향후 운영 기간에 어느 정도의 수입이 예상돼 이를 통해 빌린 돈을 갚을지에 대한 구조가 사업 초기 단계부터 짜여진다. 그 구조는 최소 30년 이상이다. 만약수입과 지출 항목 한 곳에서 구멍이 생기면 금융 구조 전체가 흔들려 사업 지속이 안될 가능성도 있다.

물론 어느 정도의 안전 장치는 있다. 정부가 제공하는 건설 보조금과 함께 보증 형태인 MRG가 그것이다. 통행량이 일정 이상 되지 않을 경우 정부 혹은 지자체 재정에서 이를 보전해주는 제도다. 물론 예상보다 통행량이 많으면 그 금액만큼 환수해간다. 이를 믿고 대주단은 물가 상승률을 감안해 금리를 정하고 자금 지원에 나서게 된다. 물론 시행사에 대한 출자 지분 가격은 유동적이다. 지분 출자는 대략 5년, 론(Loan)은 준공 이후 30여년이라는 긴 시간에 대한 계약이다.


그런데 통행료를 내려달라는 요구와 함께 지자체가 기존에 약속했던 MRG를 인하해달라고 하면 30년 이상으로 예정된 금융 구조가 깨진다. 사업 리스크를 가장 크게 안고 있는 출자 지분 가격이 내려가는 것 뿐 아니라 금융권의 론 역시도 금리 조정에 대한 압박에 시달리게 된다.

과거 SOC PF 론 금리는 10%를 웃돌기도 했다. 하지만 경쟁이 심해지면서 최근 6%대까지 떨어진 상태다. 여기서 금리를 더 내리면 30년 리스크에다 저조한 수익성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맞는다. 최근 금융회사들이 민자사업에 참여하지 않으려는 가장 큰 이유다.

MRG 인하 요구는 지자체 재정난과 직결돼 있다. 공약과 달리 재정을 충분히 마련해 놓지 않은 상황에서 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장밋빛 전망만을 내세운 결과인 셈이다.

금융권은 당황할 수밖에 없다. 정부 혹은 준정부에 해당하는 지자체를 믿고 사업에 돈을 댔는데 이제 와서 '깎아 달라'며 계약 이행을 하지 않겠다고 하니 말이다. 금융의 핵심인 신뢰에 금이 가고 있는 셈이다. 이러다 보면 향후 민자사업에 참여하겠다고 나서는 금융회사가 한 곳도 존재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민자사업 도입과 함께 성장한 SOC PF 금융 기법은 국내 건설산업과 함께 해외에까지 진출하는 발판을 마련해주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PF라는 금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생떼를 쓰면서 그 근간을 흔드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구시대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정치권과 정부·지자체의 생떼가 안쓰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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