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무=국무인 美, 가다피엔 영향 제로·대략난감

머니투데이 뉴욕=강호병특파원 2011.02.23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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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병의 뉴욕리포트]이집트, 바레인과 달리 외교 수단 공백

국가의 외무를 맡아보는 중앙정부기관을 '외교부' 혹은 '외무부'라고 부른다. 영어로는 'Department of Foreign Affairs' 로 표시되고 외무장관은 'Foreign Minister'라 호칭된다.

그런데 미국에서 외무부는 '국무부(Department of State)'다. 즉, 세계의 일(외무)이 곧 나라의 일(국무)인 나라다.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2차대전후 세계의 경찰이자 세계경제의 리더로 군림해온 미국의 역할을 묘하게 상징해주는 작명이다.



백과사전에 따르면 미국 국무부는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 시절인 1789년 7월 '외무부'로 출발했다. 1788년 제정된 신헌법이 대통령에게 외교권을 부여한데 따라 의회가 설립안을 의결, 신헌법하의 첫 연방기관이 됐다. 설립 2개월뒤 재정 등 내정임무까지 맡으며 '국무부'로 개명했는데 19세기 들어 내정업무를 새로 생긴 타 부처로 옮기고 외무에 주력하게 된 후에도 명칭은 그대로 남았다.

미국의 바깥일을 도맡는 국무부의 위상은 미국 정부부처에서 넘버원이라고 할 만하다. 외교의 실패는 곧 미국의 실패와 동의어이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2008년 대권후보 경선 라이벌이자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부인인 힐러리 클린턴을 국무장관에 모신 것이 국무부의 비중을 상징한다.



미국 세계 최강의 무력을 지휘통제하는 펜타곤(국방부) 조차 껄끄러운 존재가 국무부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국방부 장관을 지냈던 럼즈펠드는 얼마전 회고록 출간에 즈음해 언론인터뷰를 통해 콜린파월, 곤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이 마음에 안들었다고 비난하기도 했었다.

지난해 11월말 폭로전문 사이트 위키릭스가 미국무부가 각국 주재 외교공관과 주고받은 내부문건 25만건이 공개돼 국무부가 발칵 뒤집혔다. 미국이 각국 이슈에 어떻게 개입해 뒷작업을 하고 있는지 생생하게 드러났었다.

재스민 혁명으로 일컬어지는 중동의 민주화 혁명과정에서 미국과 우호적 외교관계가 있었던 나라에선 미국의 뒷작업이 힘을 발휘했다. 튀니지와 이집트의 경우 물러난 독재자들이 국민의 저항을 맞서 감히 무력진압에 나설 생각을 못했던 곳이다.


동맹국으로서의 실리와 민주화라는 대의명분에 오락가락하긴 했지만 어쨌든 유혈사태로의 발전을 막은데는 외교관계를 바탕으로 한 미국의 힘이 작용한 것은 사실이다. 이집트는 오바마 대통령과 무바라크가 전화통화가 가능한 사이였다.

2월1일 AP통신 등에 따르면 무바라크가 9월까지 예정된 대통령 임기직을 마치겠다고 고집을 부리자 오바마 대통령은 무바라크와 전화통화를 통해 즉각적인 퇴진을 요구했었다. 그 전엔 외교루트를 통해 이집트에 특사를 파견, 퇴진 압박을 가했다.외교라인은 물론 군부와의 관계 때문에 미국이 이집트를 움직일 수단을 갖고 있었던 셈이다.

미 5함대가 주둔하고 있는 사우디 아라비아 동쪽 바레인도 미국힘이 작용한 경우다. 바레인에도 시위가 격화되며 폭력진압 사태가 생기자 지난 18일 오바마 대통령은 바레인 국왕에게 전화를 걸어 폭력사태를 비판하며 자제를 요청했다. 그 후 바레인은 대화로 방향을 틀었다.

그러나 반미 노선을 걸어온 리비아 만큼은 미국의 외교적 힘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 리비아는 42년간 철권통치를 유지해온 대령 가다피가 유혈진압에 나서며 중동 혁명중 가장 참혹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미국은 국무부 성명 등을 통해 가다피 대령의 무력진압을 규탄했지만 공허한 메아리로 그치고 있다.

80~90년대 미국 등 서방세계와 적대관계였다가 2003년 대량 살상무기 자진 폐기 결정을 계기로 2006년 테러지원국에서 제외되는 등 관계가 부드러워졌다. 2008년 형식적으로는 미-리비아 관계가 복원됐다. 그러나 리비아가 반미라는 골격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어서 미국과 외교내용이 쌓인 것은 별로 없어 보인다.

서방의 요구에 콧방귀를 뀐 채 가다피는 수도 트리폴리를 친위대와 용병으로 에워싼 채 "죽는 한이 있어도 배신자를 처단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예측할 수 없는 문제아답게 무슨일을 저지를지 아무도 모른다. 가다피가 시위대에게 전투기를 동원한 폭격을 계획했다는 증언도 잇따랐다.

민주화라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스른 독재자 발악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는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다. 그러나 외교적 수단의 부재속에서 독재자가 퇴장하기 까지 많은 피를 흘려야할 지 모른다는 것이 세계인의 마음을 무겁게 누르고 있다.

가다피가 국민에게 총을 들이대면 들이댈수록 국제사회의 군사개입 명분은 높아져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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