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라이온'이 되고픈 카다피

머니투데이 최종일 기자 2011.02.23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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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아마르 카다피는 22일(현지시간) 리비아 국영TV에 등장해 "최후의 순간까지 끝까지 싸우겠다"고 말했다. ↑ 무아마르 카다피는 22일(현지시간) 리비아 국영TV에 등장해 "최후의 순간까지 끝까지 싸우겠다"고 말했다.


무아마르 카다피는 ‘사막의 라이언’이 되고 싶다.

카다피는 21일(현지시간) 밤 국영TV로 생중계된 연설에서 그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대를 향해 최후통첩을 보내며 무력 강제진압을 선언했다. 이어 격앙된 목소리로 외세 개입을 지적하며 자신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마지막 피 한 방울 남을 때까지 싸우다 숨지는 순교자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카다피의 비장함속에 그가 롤모델로 삼아온 오마르 무크타르가 떠오른다.



무크타르는 ‘제국주의’ 이탈리아에 맞서 싸운 리비아 구국의 영웅이다. 한적한 시골마을 쿠란(이슬람경전)선생이던 초로의 무크타르는 1910년 이탈리아가 침공하자 분연히 일어났다. 사막의 모래알같이 흩어져 반목하던 부족들을 하나로 결집시켜 신식 무기로 중무장한 이탈리아군을 상대로 20여년 항쟁을 이끌었다.

이탈리아군에 붙잡힌 오마르 무크타르 이탈리아군에 붙잡힌 오마르 무크타르
그의 군대는 비록 구식소총에 정규 훈련도 받지 않았으나 무크타르의 용병과 유목민 특유의 용맹성으로 침공군 사령관을 5명이나 갈아치우는 혁혁한 전과를 올리며 이탈리아 본국을 떨게 했다.



무크타르는 투사만이 아니었다. 옛 로마제국부터 이어진 침탈에 길들여진 베르베르족, 베두인족 유목민에게 리비아라는 민족 정체성을 일깨워준 선각자였다는 점이다.

그의 항전기록은 1981년 영화화된 ‘사막의 라이온’에 잘 담겨 있다. 이 영화속에서 앤소니 퀸이 연기한 무크타르는 끝내 이탈리아군에 잡혀 최후를 맞으면서도 불의와의 타협은 거부했다. 그는 31년 공개 교수형에 처하며 “나는 절대 항복하지 않는다. 승리 아니면 죽음이다. 투쟁은 다음 세대, 다다음 세대에도 이어질 것이다”고 마지막 말을 남겼다.

앤소니 퀸, 올리버 리드 등 당대 최고 몸값 배우와 수많은 엑스트라 동원, 대규모 사막 스펙터클 전투씬 등으로 어마어마한 제작비를 들였을 이 영화는 전적으로 카다피가 돈을 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탈리아처럼 식민지배의 경험을 가진 서방권에서 과거의 아픔을 떠올리게 하는 이러한 영화 제작에 선뜻 나설 투자자는 없었을 터이니 신빙성이 있는 얘기이다.


카다피가 자신의 사표를 그린 이 영화에 쏟은 애정을 보여주는 일화가 또 있다. 당시 리비아 수주를 승인하는 조건으로 국내 상영을 내걸었다는 것이다. 덕분에 제국주의라는 말만 나와도 기겁하던 당시 서슬퍼런 시대적 상황속에서도 국내팬들은 이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카다피는 자신을 종종 무크타르와 동일시하며 42년간 리비아를 철저히 장악해왔다.
아마 자신의 정치적 운명이 절대절명의 위기에 놓인 현재 다시금 무크타르를 떠올리며 성난 국민에게 마지막 호소를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무크타르의 총부리가 동족을 향한 적은 없다. 카다피에서 무크타르를 볼 리비아인은 이제 하나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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