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고객은 결코 늙지 않았다"..실버산업 성공 3원칙

머니투데이 권성희 기자 2011.02.07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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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비즈&트렌드]

어떤 50대 아줌마가 씩씩거리며 동창들과 모이기로 한 장소에 들어선다. 그녀는 화를 참지 못하겠다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여기 오는데 어떤 청년이 ‘아줌마, 싱싱한 과일 좀 보고 가세요’ 이러는 거야. 아니 내가 어딜 봐서 아줌마니?"

웃긴 아줌마라고? 결코 웃기지 않은 '당신'의 자화상이다. 설사 80세가 넘었다 해도 스스로 늙었다고 생각하는 노인은 없다. 70세가 넘어도 여전히 중년이라고 생각하는 노인이 대다수다.



그러니 고령화로 노인 인구가 늘어나도 ‘실버산업’이 성장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실버' 제품을 구입해 스스로 늙었음을 인정하고 싶은 노인은 없을 테니 말이다.

기업들도 '당신, 이제 늙었어'라고 가르쳐주는 '실버 마케팅'으론 결코 노인들의 지갑을 열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닫고 있다. 올해 미국 베이비붐 세대는 만 65세에 들어섰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이 늙어가는 베이비부머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기업들의 노력을 소개했다. 이를 3가지로 분석해 정리한다.



◆"노인 냄새를 버려라"=60세 이상 노인 상당수가 요실금으로 고생하지만 노인용 기저귀를 차고 싶은 사람은 없다. 킴벌리-클락은 성인용 기저귀 브랜드인 '디펜드(Depend)'에서 '기저귀' 이미지를 버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킴벌리-클락은 새 TV 광고에서 디펜드를 "속옷처럼 보이고 몸에도 맞습니다. 다른 어떤 것도 걸치지 않은 것 같지만 충분히 보호해 줍니다."라고 소개한다.

"당신 고객은 결코 늙지 않았다"..실버산업 성공 3원칙


욕실 인테리어 업체인 콜러(Kohler)는 욕실 가로대(지지용 손잡이)가 노인용이라는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 ‘비레이(Belay= 자일)’란 브랜드를 도입했다. 힘 없는 노인들에게 필요한 가로대가 아니라 등산할 때 쓰는 도구라는 이미지로 노인 냄새를 없앤 것이다.

콜러의 수석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다이애너 슈라즈는 "베이비부머들에게 '좋은 디자인의 욕실 가로대가 있어요’라고 말하면 십중팔구 필요 없다는 대답이 돌아온다"며 "가로대가 필요할 만큼 늙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은 것"이라고 말했다.


타이코 인터내셔널 계열의 보안회사인 ADT 안전서비스는 노인들 수요가 많은 가정 의료 서비스와 관련해 상담할 때 최우선으로 삼는 원칙이 "고객이 나이 들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도록 하라"는 것이다.

건강음료인 크랜베리 주스로 유명한 오션 스프레이 크랜베리의 북미 최고운영책임자(COO)는 "베이비부머들에게 늙어간다는 사실을 상기시키지 않도록 늘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디자인으로 승부하라=베이비부머들은 제품의 실용성뿐 아니라 외양에도 상당히 신경 쓴다. 크리넥스는 최근 티슈가 들어있는 박스 디자인에서 전통적인 꽃 문양을 줄이고 현대적인 느낌의 디자인이나 사진 등을 더 많이 활용하고 있다.

크리넥스의 모기업인 킴벌리-클락의 디자인 이사인 크리스틴 마우는 "베이비부머는 기존 노년층보다 젊은층에 훨씬 더 가까운 심미적 취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당신 고객은 결코 늙지 않았다"..실버산업 성공 3원칙
킴벌리-클락은 성인용 기저기인 디펜드를 팬티처럼 남성용과 여성용으로 구분하고 세련된 문양도 넣었다. 최근 나온 디펜드는 실제 팬티처럼 돌돌 말려 제품 일부가 보이는 포장 박스에 넣어져 팔린다. 이 포장 박스에는 심지어 ‘속옷’이라는 표지까지 붙어 있다.

디펜드는 광고에서도 변신을 꾀했다. 과거엔 종종 할머니로 등장하는 하얀 머리의 여배우 준 앨리슨이 디펜드 광고의 상징이었으나 지난달 새로 나온 광고는 180도 이미지 변신을 했다. 50대 초반의 몸 좋은 남자가 커피숍에 앉아 흰머리가 아니라 짙은 머리를 찰랑거리며 걸어가는 감각 있는 여성에게 유혹하는 듯한 눈길을 던지는 광고다.

◆드러나지 않게 배려하라=자산운용사인 인베스코의 자회사 인베스코 반 캠펜은 재무 상담을 해주는 사무실의 접대용 커피잔을 기존 스티로폼 컵에서 손잡이가 달린 컵으로 바꿨다. 조명도 눈에 편하게 바꾸고 고객이 들어오면 귀가 잘 들리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해 TV도 끄도록 했다.

인테리어 회사인 셔윈-윌리엄스도 3400개 매장을 노년층이 안락하게 느낄 수 있도록 세심하게 개선했다. 일단 조명을 더 밝게 하고 앉을 곳을 더 많이 만들었으며 작은 활자의 글씨는 매장 내에서 없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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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약국 체인 CVS케어마크는 매장 바닥에 카펫을 깔아 잘 미끄러지지 않게 했고 제품 진열 선반을 기존 72인치에서 60인치로 낮췄다. 매장 조명은 좀더 자연스러운 빛으로 바꿨다. 매장 입구에 턱은 가능한 없앴으며 턱이 있는 곳에는 노란색을 칠해 알아보기 쉽게 만들었다.

생활용품 회사인 암&해머는 고객들이 제품 포장의 글씨를 읽기 힘들어 한다는 사실을 파악한 뒤 배경색과 활자 색깔이 좀더 뚜렷하게 대비되도록 조정했고 활자 크기도 두드러지지 않도록 서서히 확대했다. 지금 활자 크기는 5년 전에 비해 20% 더 커진 것이다.

생활용품 회사인 처치&드와이트의 부사장인 데이비드 코언은 “65세 가까운 베이비부머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0% 가량이 실제 나이보다 스스로 더 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며 “베이비부머들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되 노골적으로 전달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식품회사인 다이아몬드 푸즈는 에머럴드 스낵 너츠의 포장을 탄력성이 떨어지는 베이비부머들의 손에 맞춰 설계했지만 초록색 플라스틱 용기 어디에서도 '노인 배려용'이라는 느낌을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

"당신 고객은 결코 늙지 않았다"..실버산업 성공 3원칙
울퉁불퉁 홈이 있는 뚜껑은 손에 잡기가 쉽고 한 차례만 돌려도 쉽게 열린다. 다이아몬드 푸즈는 관절염이 있을 경우 뚜껑을 여러 번 돌릴 때 힘이 든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이처럼 다루기 쉬운 뚜껑을 만들었다.

드럭스토어 체인점인 월그린은 지난 2년간 7655개 매장을 나이 든 베이비부머들이 이용하기에 편리하도록 조금씩 개선해왔다. 대표적인 변화가 세제와 염색약, 감기약이 진열된 곳에는 포장지의 설명을 잘 읽을 수 있도록 돋보기를 배치한 것이다. 월그린은 유행에 맞춰 돋보기를 자주 교체하고 있다.

월그린은 또 자체 상표로 제작하는 진통제와 요실금 치료제에 대해선 뜯기 쉬운 포장을 적용하고 있으며 이를 비타민 상품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월그린의 부사장 겸 머천다이징 매니저인 로버트 콤킨스는 베이비부머들은 기능은 물론 패션에도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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