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청 전문성 갖춰야 소모적 법률논쟁 줄인다"

머니투데이 배혜림 기자 2011.01.2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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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 고수를 찾아서]법무법인 화우 전종민 변호사

ⓒ임성균 기자ⓒ임성균 기자


산부인과에서 의사가 산모에게 태아의 성별을 알려주는 일은 이미 자연스러운 풍경이 됐다. 작년 개정 의료법이 시행되기 전까지만 해도 태아의 성감별을 목적으로 한 진찰과 성별 고지는 불법이었다. 개정 의료법은 임신 32주 이후 성별 고지를 허용하고 있다. 1987년 의료법에 성감별 금지 조항이 신설된 지 23년 만의 변화다.

의료법 개정 과정은 험로(險路)였다. 태아의 성별고지를 금지한 규정이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는 헌법소원으로 논의가 시작됐지만, 성감별이 낙태로 이어져 생명이 경시된다는 종교윤리계의 반발에 부딪혀 찬성과 반대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법무법인 화우의 전종민(44·사진) 헌법·행정법 전문 변호사는 태아 성감별 헌법소원 사건에서 "임신 후반기에는 낙태가 사실상 불가능해져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의료법이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주장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이끌어냈다.

전 변호사는 당시 열린 공개변론에서 낙태를 처벌하는 법률이 따로 존재하는데 낙태의 위험성만을 가지고 성별고지 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결국 헌재는 해당 규정이 의료인의 직업수행의 자유와 부모의 정보 접근권을 지나치게 제한한다고 판단했다. 또 태아의 성 감별고지를 무조건 금지한 조항은 시대의 변화에 맞지 않는다고 밝혔다.



◇시대상 반영하는 헌법사건 '보람'
"태아 성감별 헌법소원 사건을 맡으면서 헌법이란 저 멀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생활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됐습니다. 헌법소원 사건은 시대상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일 뿐 아니라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점에서 보람이 큰 분야입니다."

인터넷 실명제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가, 간통을 처벌할 수 있는가, 동성애자는 군대에 가면 안 되는가, 장하준 교수의 저서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장병들의 정신전력을 해치는 불온서적인가. 실제로 사회적으로 논란이 됐던 이 문제들은 모두 헌재를 거쳤다.

바야흐로 헌법소원의 전성시대라고 할 만큼 헌재의 판단을 구하는 사건이 늘고 있다. 하지만 헌법소원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제4공화국과 제5공화국 때 헌법위원회가 있었지만 헌법소원은 단 한 건도 제기되지 않았다. 헌법소원이 시작된 것은 6공화국 때인 1988년부터다.


↑법무법인 화우 전종민 변호사 ⓒ임성균 기자↑법무법인 화우 전종민 변호사 ⓒ임성균 기자
전 변호사는 "법원에서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을 근거로 판결을 내린 것은 1990년대 후반부터였다"며 "우리 생활 곳곳에서 헌법 정신을 구현한다는 것은 과거보다 민주화됐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안면도 사업자선정 법적분쟁 마무리
국가의 통치조직과 국민의 권리를 아우르는 근본규범인 헌법을 인체의 뇌와 심장에 비유한다면 행정법은 인체의 손과 발의 역할을 한다. 헌법이 천명한 기본이념을 곳곳에서 실현할 수 있도록 한다는 의미다.

행정 소송은 행정청의 제재 혹은 기관의 징계에 대한 불복에서부터 인·허가 및 사업자 선정까지 행정주체와의 법률관계를 다룬다. 전 변호사는 법관 시절 행정법원 근무 경력을 살려 행정법 전문가로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2006년 충청남도 태안군 안면도 관광지개발사업자로 리조트업체 에머슨퍼시픽이 선정되자 경쟁업체 A사는 이듬해 충남도지사를 상대로 사업자선정 취소청구 소송을 냈다. A사는 사업자선정에 앞서 열린 전문가 평가에서 1순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는 이유로 이의를 제기하면서 개발사업에 제동을 걸었다.

1심 법원은 A사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전 변호사는 항소심에서 소송의 보조참가자인 에머스퍼시픽을 대리해 1년 만에 판결을 뒤집었다. 결국 이 소송은 A사가 항소심에 승복하고 상고를 포기하면서 종결됐고, 안면도는 국제 관광명소로의 탈바꿈을 앞두고 있다.

전 변호사는 "오랜 기간 관광지 개발사업의 발목을 잡았던 법적 분쟁이 깔끔하게 마무리돼 안면도가 '서해안의 베니스'로 거듭날 수 있게 됐다"며 "생산효과가 1조5000억원에 이르고 소득효과도 4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그는 국토해양부의 항공 운수권 배분 신청기일을 놓친 아시아나항공을 대리해 '법률에 신청기간이 명시돼 있지 않다면 국토해양부가 임의로 정한 신청기간을 도과했다는 이유로 행정처분을 받을 권리를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판결을 받아냈다. 이는 정부가 정한 행정처분의 신청기간이 도과됐을 경우 권리를 제한할 수 있는가의 문제를 다툰 최초의 사건이었다.

이외에도 전 변호사는 교육과학기술부의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지정거부처분 취소청구 소송을 대리하고 서울시의회 법률고문으로서 무상급식과 서울광장 관리 조례를 둘러싼 서울시와의 갈등에 법률자문을 제공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임성균 기자ⓒ임성균 기자
◇의뢰인 사건은 내 일처럼…객관적 시각 잃어서는 안 돼
"또 다른 한 판의 바둑을 두고 싶었습니다." 전 변호사가 법원에서 나와 변호사로서의 삶을 시작한 이유다. 그는 "법관은 기록과 싸워야 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도 없고 만나서도 안 된다"며 "다양한 사람들과 얼굴을 맞대고 싶었다"고 전했다.

그는 변호사가 된 뒤 철이 들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돌이켜보니 법관 시절에는 주변 사람에게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그런데 변호사가 되고 나니 거리에서 지나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진지한 눈빛으로 바라보게 됐습니다.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이해하려 노력하게 된 것이죠."

전 변호사는 의뢰인의 사건을 자신의 일처럼 여기고 애정을 쏟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사건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을 잃지 않는 데다 날카로운 판단력과 사건을 꿰뚫는 통찰력을 겸비했으니 승소율이 높은 것은 당연한 결과다.

◇행정청 전문성 제고해야
행정법 전문가로서 그는 행정청이 보다 전문성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사업자 선정이나 제재, 징계 등을 결정하는 행정청의 판단이 적법하지 않으면 재판으로 이어지고, 그럴 경우 고통을 받는 것은 국민이기 때문이다.

전 변호사는 "행정청이 일정한 처분을 내리기 전에 반드시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해야 한다"며 "손과 발의 역할을 하는 행정청이 신중을 기하면 소모적인 소송과 그로 인한 상처가 훨씬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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