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재정위기에 北阿 '마그레브' 안정 '휘청'

머니투데이 김경원 기자 2011.01.16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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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수출·관광객 줄자 경제 타격...튀니지·알제리, 고실업 고물가에 '신음'

유럽 재정위기에 北阿  '마그레브' 안정 '휘청'


이슬람세계의 '해지는 서쪽'을 뜻하는 북 아프리카 '마그레브' 지역의 안정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튀니지에서는 23년간 장기집권해온 지네 엘 아비디네 벤 알리 대통령이 축출되고, 알제리에서는 소요 사태로 시끄럽다. 모로코, 리비아 등 인접국들은 '국민 혁명'의 불씨가 튈 까 전전긍긍이다.

정치· 경제적으로 비교적 안정을 누리던 북아프리카지역의 격랑은 2년여 지속된 경제 위기와 무관치 않다. 특히 지리, 역사적으로 뗄 수 없는 유럽의 위기가 옛 로마제국이던 이 지역까지 번졌다고 볼 수 있다.



◇튀니지, 경제난에 정국 소용돌이= 지난달 한 청년 노점상의 분신으로 격화된 튀니지 소요사태는 15일 벤 알리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로 탈출하며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임시 대통령인 푸아드 메바자 국회의장은 이날 총리인 모하메드 간누치에게 즉각 여야를 아우르는 통합정부를 구성해달라고 요청했다. 새 대통령 선거는 60일내 치러질 전망이다.



하지만 이날도 교도소 방화로 50여명이 숨지는 등 정국 불안은 이어지고 있다. 또 새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국민혁명'으로 불리는 시위, 소요사태가 진정될 지는 의문시 된다. 국민들의 불만이 장기집권, 부패에 대한 염증이기 보다는 생활고가 직접적 도화선인 때문이다.

시위가 한 달여간 장기화된 배경에는 치솟는 실업률과 물가 폭등이 자리하고 있다.
현재 공식 실업률은 14%지만 25세 이하 청년층과 지방의 실업률은 두 배 이상인 40%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최근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식품 물가가 치솟으면서 주민들의 원성은 커졌다.

튀니지의 경제난에 불을 지핀 것은 유럽 재정위기다. 금융위기에 이은 국가채무위기로 심화된 유럽경제의 침체는 튀니지 경제에 직격탄이 됐다.


튀니지 수출중 유럽은 76%가 차지한다. 재정위기 불안이 고조된 유럽이 씀씀이를 줄이면서 섬유 등 튀니지의 주력 수출산업은 어려운 시기를 맞이했다.

유럽 관광객의 감소는 실업 문제를 악화시켰다. 현재 튀니지 노동인구 10명 중 1명은 관광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튀니지를 방문하는 주요 관광객들은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국민들이 대다수다. 이들의 방문이 줄어들자 튀니지 고용도 타격을 입었다.



지난해 튀니지 재정적자와 공공부채는 각각 GDP 대비 2.6%, 39.8%까지 증가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국가 신용등급도 아슬아슬한 상태다. 국제신용 평가사 피치는 지난 14일 튀니지 국가 신용등급 'BBB'가 강등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피치는 "튀니지는 예기치 않은 정치적 리스크에 직면했으며 이로 인해 경제적 불확실성도 증폭됐다"고 설명했다.

◇ 유럽 불똥.. 옛 로마제국으로 =이웃 나라인 알제리에서도 폭동이 일어났다. 알제리 정부는 이달 초 식료품 가격을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설탕, 우유 등 주요 필수품 가격이 급등하고 밀가루와 식용유는 지난 두 달간 두 배 이상 뛰었다.

이에 젊은 실업자들을 주축으로 폭동이 일어났다. 이들은 거리로 나와 "우리에게 설탕을 달라"고 외쳤다. 경찰이 진압하는 과정에서 400명이 부상을 입었다.



알제리 역시 튀니지와 마찬가지로 고실업에 시달리고 있다. 정부가 발표한 공식적인 실업률은 10%지만 민간 기관 조사에 따르면 이 수치는 25%에 달한다.

에너지 주요 공급지역인 유럽의 수요가 둔화되면서 실업 문제가 악화됐다. 게다가 80만명에 달하는 유럽 이민자들의 송금액도 줄어드는 추세다.

현지 언론은 "일자리를 얻지 못한 알제리 청년들에게 유일한 희망은 유럽으로의 이민이었다"며 "지금은 그러한 출구마저 닫혀진 상태"라고 전했다.



위기감을 느낀 알제리 정부는 일자리를 창출하고 민생을 개선하기 위해 향후 5년간 2860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시위가 격화되자 밀 수입을 확대해 물가 인상을 완화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 '국민혁명' 주변국 전염 전전긍긍=튀니지와 알제리의 정국 불안이 이어지자 인접국인 모로코 등지의 위기감도 짙어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모로코 이민자들이 모국에 송금한 금액은 지난해 전년 대비 5.3% 감소했다. 수출 비중이 낮아 이민자 송금에 의존했던 모로코 에게는 적지 않은 타격이다.



가디언은 "모로코, 이집트, 시리아 등 인접국가들이 튀니지 사태를 주시하고 있다"며 "튀니지에서 분출된 젊은이들의 분노는 인접국으로 확대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왕정국가인 중동의 아랍국들의 걱정은 크다. 벤 알리 튀니지 대통령의 '망명'을 수용한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튀니지 국민들의 뜻과 함께 한다"며 일정 거리두기에 애쓰는 모습이다. 아랍 연맹도 성명을 통해 튀니지 국민들의 의사를 존중한다고 서둘러 밝혔다.

국제정치전문가들은 그러나 튀니지 혁명의 불씨가 중동 왕정국가까지는 미치지 않을 것으로 내다본다. 아랍 제후들의 국정 장악력과 경제적 안정세가 위기 전염의 가능성을 충분히 차단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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