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물가 잡으려고 기업 압박 나서나

머니투데이 진상현 임동욱 정진우 기자 2011.01.13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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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경부 장관은 철강값 안정 주문… 정유사들 "세금 절반, 사정 잘 아는 정부가…"

정부가 치솟는 물가와 관련해 기업들을 직접 압박하고 나섰다. 대통령은 기름 값 상승과 관련, "주유소 등의 행태가 묘하다"며 정유사를 겨냥했고, 지식경제부 장관은 철강업계에 "가격 인상을 자제해달라"는 구체적인 주문까지 했다.

'공정사회'를 강조하고 있는 정부가 급등하는 물가와 관련해 일부 책임을 기업들에게 지운 셈이어서 기업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13일 새해 처음으로 열린 국민경제대책회의에서 각 부처로부터 서민물가안정을 위한 종합대책을 보고 받고, "생활필수품 하나하나의 가격 안정도 중요하지만 전체 인플레 상승 요인이 무엇인지 큰 줄기를 잡는데 노력하는 것이 좋겠다"며 유가를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여러 물가에 영향을 주는 기름 값의 경우 유가와 환율간의 변동관계를 면밀히 살펴 적정한 수준인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체 인플레 상승에 큰 영향을 미치는 기름 가격 동향을 특히 주의해서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한발 더 나아가 "주유소 등의 행태가 묘하다"는 '묘한 표현'까지 썼다. 정유사들이 책정하고 있는 기름 값이 '대통령의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기름 값에 대한 대통령의 반감이 간단치 않다는 얘기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와 관련, "유가가 배럴당 140달러 선이었을 때 기름 값이 2000원 선이었는데 현재 80~90달러 선에서 기름값이 1800~1900원까지 간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산업 정책을 책임진 지식경제부 장관은 철강업계를 겨냥했다.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은 이날 오후 서울 대치동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2011년 철강업계 신년 인사회'에 참석해 "국내 물가 안정을 위해 철강업계가 가격인상을 자제하는 노력을 보여 달라"고 주문했다.


기초 원자재에 속하는 철강가격이 최근 수급 불안정으로 급등세를 보이면서 다른 물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점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행사엔 정준양 포스코 회장, 박승하 현대제철 부회장,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 한광희 동부제철 부회장 등의 주요 업체 최고경영자(CEO)들이 모두 참석했다.

업계는 정부의 이 같은 발언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사실상 가격 인하나 동결 등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까지 나온다. 특히 기업인 출신으로 기업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대통령이 직접 '가격 체계'를 언급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기업들의 가격 산정 체계에 대해 근원적으로 불신을 갖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최대한 정부 시책에 협조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며 "기름값 대부분을 세금이 차지하고 있는 만큼, 가격을 내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정유사들은 반발하고 있다. 정유사 사정을 잘 아는 정부가 기름값을 내리라고 신호를 주는 것은 너무 심하다는 주장이다. 정유사 관계자는 "정부가 석유공사 등을 통해 세금 50%, 주유소 마진 6%, 정유사 공급가격 44% 정도의 비율로 마진률을 사실상 타이트하게 조여놨다"며 "가격을 내린다면 주유소가 자신의 이윤을 조금이라도 포기해야 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청와대 측도 대통령이 특정한 지침을 정하고 언급한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업계에서도 환율, 세금 등 나름대로 산정 체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합리적으로 석유 가격 체계를 잘 점검해서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해달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대통령께서 특히 기름 값에 대해 방점을 두신 것만은 분명하다"고 언급해 여운을 남겼다.

한편 이 대통령은 이날 물가안정대책과 관련해 전세 가격 안정에도 심혈을 기울여달라고 주문했다. 이 대통령은 전세 선호와 전세 가격 급등과 관련한 국토부의 보고를 받고, "부동산 가격과 관련한 새로운 주거 트렌드에 맞는 주택 정책을 세워야 부동산 가격이 안정된다"며 "특히 1인 1가구 증대에 따라 새로운 형태의 공급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소형주택공급을 늘려야 한다"고 언급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께서 막 취업해서 자리를 잡기 전후의 젊은이들도 많기 때문에 각별히 이 부분에 대한 대책을 주문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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