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천 서울대 총장 "법인화 성공열쇠는 자기혁신"

머니투데이 배준희 기자 2011.01.03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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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사]법인화로 '관리'에서 '자율과 책임'으로 패러다임 바꿔야

오연천 서울대 총장 ⓒ서울대오연천 서울대 총장 ⓒ서울대


오연천 서울대 총장이 "국립대학법인 서울대의 설립은 국가주도형 패러다임에서 '자율'과 '책임'을 핵심정신으로 하는 신(新) 교육패러다임으로 전환의 계기가 돼야 한다"고 밝혔다.

오 총장은 3일 신년사에서 "그동안 한국 고등교육은 학생선발과 교수 채용에 이르기까지 국가주도형 패러다임이 지배했지만 국립대학법인 서울대의 설립은 자율과 책임을 핵심 정신으로 하는 패러다임 전환의 계기이며 또한 그렇게 돼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지난 시대 동안 서울대는 국가라는 든든한 선박에 때로는 무임승차하며 힘 있는 보호자의 지원으로 순항해왔다"며 "고등교육의 신(新) 패러다임이 출범하는 새로운 시간 앞에 서울대 법인화를 둘러싼 여러가지 쟁점과 우려를 해결하는데 만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 총장은 이어 "새로운 체제에서도 서울대는 국립대의 장점을 살려 기초학문과 인본주의적 교육을 더욱 공고히 할 것"이라며 "입시에서도 지역 및 기회균등의 가치를 확산하고 한국사회의 불평등 완화에 적극 나서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장학금을 획기적으로 확대해 학생들의 경제적 부담을 줄일 것"이라며 "그동안 구상해 온 국제캠퍼스에 지방 국립대가 함께 활용할 수 있는 교육시설을 만들어 국립대 전반의 경쟁력 강화에 동참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오 총장은 "국립대학법인 서울대는 서울대에 부여한 국가와 국민의 희망을 현실로 바꾸는 계기가 돼야 한다"며 "우리 앞에 폭우가 내리고 거센 풍랑이 몰아쳐도 64년 역사와 자부심을 '자율과 책임'의 원천으로 삼아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자"고 다짐했다.

한편 '자율성'부여가 핵심인 서울대 법인화 법안은 지난해 12월 여·야의 극한 대치 속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를 둘러싸고 서울대 교수협의회가 "대학의 자율성을 훼손할 수 있는 독소조항들이 산재해 있어 이를 삭제해야 한다"고 밝히는 등 학내 논란이 쉽게 사그라들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다음은 오 총장 신년사 전문

신 년 사



서울대학교를 아껴주신 국민 여러분, 그리고 교직원, 학생, 동문 여러분!

辛卯년의 해가 밝았습니다. 다망했던 庚寅년 한 해 동안 쏟았던 우리의 땀과 노력을 역사의 장에 겸허히 헌정하면서 우리는 새로이 펼쳐지는 희망찬 시간 앞에 섰습니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토끼를 지혜와 평화의 상징으로 생각했고, 풍요를 가져다 준다고 믿었습니다.

지난 해 우리가 겪었던 대내외적 도전과 난관을 생각하면 평화와 화합이 얼마나 귀중한 가치인지를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우리의 안전한 미래와 참 번영을 향한 국민적 여망과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습니다. 우리 대학은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면서 민족의 대학, 세계의 대학으로서 기반을 단단히 다져야 하는 시점입니다. 21세기 두 번째 십 년대를 여는 이 새로운 시간 앞에서 우리는 국민의 자산인 교육과 학문 발전의 새로운 장을 열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바입니다.



우리 대학은 교직원과 학생들의 각고의 노력, 그리고 국민적 지원에 힘입어 세계 명문대학의 위상에 걸맞는 성숙한 면모와 제도적 기반을 갖췄다고 자부합니다. 1946년 개교 이래 64년 동안 쌓았던 서울대의 지적 역량과 역사적 소명은 새로운 시간대를 맞이하는 우리에게 너무나 귀중한 유산이자 자산입니다. 그것은 곧 민족과 국가의 자산이기도 합니다. 한국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학문과 교육을 존중하는 나라였습니다. 정제된 역사가 배어있는 학문에서 현실의 원칙을 세웠으며, 학문에서 미래를 여는 지식과 지혜를 찾았습니다. 어려운 때일수록 온 국민이 교육에 열정을 쏟아 우리 사회가 가야할 길을 개척해 왔습니다. 서울대가 ‘학문적 가치창조’의 선도자이자, '지혜의 길'을 열고, 인재양성의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의 엄중한 역사적 책무이자 미래의 좌표입니다.

대한민국은 이제 더 밝고 활기찬 미래로 전진하는 출발점에 섰습니다. 세계의 개도국에 희망의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한 나라의 발전 잠재력이 대학의 지적 수준에 달려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금 생각한다면, 평화와 풍요를 바라는 국민들에게, 그리고 가난과 후진적 병폐에 시달리는 수많은 지구촌 사람들에게 서울대는 무언가 책임 있는 행동과 약속을 해줄 때가 된 것입니다. 그것은 한국 사회를 넘어 이제 세계 국가들의 형편을 헤아릴 만큼 성숙한 국민들에게 드리는 약속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대학이 희망입니다. 서울대가 그 희망의 한 가운데에 서 있습니다!

이제 서울대가 우리 국민의, 나아가 세계인의 요구와 기대에 적극적으로 응답할 때가 되었습니다. 응답이 없으면 기대도 없습니다. 국민적 기대는 미래를 개척하는 서울대인에게는 든든한 버팀목이고, 그에 걸맞는 응답은 새로운 기대를 창출하는 혼연일체의 코러스입니다. 저는 이 웅장한 코러스의 전제가 바로 자신부터 깨닫고 자신부터 고치는 ‘자기혁신’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혁신을 가로막는 장애요인을 타파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혹시 우리는 교육과 연구의 전통적 패러다임에만 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돌이켜 봐야 합니다. 우리 대학 스스로 성공의 신화에 자족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반성할 때가 된 것입니다. 지난 세기에 일궈낸 ‘과거의 성공’에 만족한다면, 우리는 곧 ‘성공의 위기’에 직면할 것입니다. 21세기 지식기반사회의 원리가 지난 세기와는 판이하게 달라졌다는 것을 환기한다면, 새로운 세기의 교육과 연구를 주도할 신패러다임의 창출이라는 절박한 과제에 직면합니다. 물리학적 기계론의 패러다임도 훌륭하지만 생물학적 지각론의 패러다임에도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지난 10년 동안 대학은 학문적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원리를 접목하는 ‘개방과 융합’을 추구해왔다면, 자기혁신이야말로 ‘개방과 융합’의 유동적 과정을 상상력과 창의성의 영역과 결합시키는 소통의 에너지입니다.



남이 우러러 본다고 성공한 집단이라고 착각하는 우리에게 자기혁신은 서울대인의 사회적 위상을 재정립하는 데에도 반드시 필요한 덕목입니다. 혹시 우리는 지식인에게 주어진 기득권에 안주하고 있지 않았는지, ‘어둠의 파수꾼’이라는 지식인의 사회적 역할을 소홀히 하지 않았는지를 반성해야 합니다. 교수들은 자신의 지적권위로 구축한 성곽에 안주하면서 정의의 기치를 내건 사회개혁을 원하는 시정의 목소리를 저버리지는 않았는지, 학생들은 같은 시대의 사람들이 겪는 애환의 본질과 시대적 소명을 도외시하고 자신의 입신양명에 집착하지 않았는지를 반성해야 합니다. 서울대의 교육은 인격을 갖춘 교양시민(Bildungsburgertum)이자 각 방면에서 역량 있는 인재를 배출하는 데에 그 목표가 있지만, 한국사회와 지구촌에 대한 배려와 헌신이 없다면 ‘학문적 가치창조’의 인본주의적 기초는 허물어지고 맙니다. ‘배려와 헌신’이 바로 자기혁신의 핵심 요건이 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앞에 펼쳐진 이 새로운 시간대에 ‘배려와 헌신’을 강조하는 이유는 입시와 경쟁 위주의 한국 교육의 방향을 재정립하고 미래를 향한 진취적 설계를 내놓아야 하는 서울대의 시대적, 국가적 과제 때문이기도 합니다. 한국의 학업성취도와 진학률은 선진국이 부러워할 정도로 높습니다. 과학과 사회, 인문과 예술분야에서 세계적으로 뛰어난 인재들을 배출하고 있습니다만, 왜 우리는 우리 사회를 신뢰하지 못하는지, 시민윤리와 도덕을 고양시키지 못했는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선진국이 자랑하는 교양시민이 왜 우리 사회에서는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교양시민이 갖춘 자질을 사회적 자본, 문화적 자본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그들 선진국들이 발전시킨 고등교육의 소산입니다. 그들은 오래 전부터 전문지식과 인문정신의 균형적 함양을 추구해 왔음에 비해, 우리는 성장 위주의 눈에 보이는 성과를 만들어 내는데 우리의 에너지를 과도하게 집중해 왔던 때문일 것입니다. 이제, 대학은 플라톤의 아카데미(Academy)도, 아리스토텔레스의 라이세움(Lyceum)도 더 이상 아닙니다만, ‘자유 지식’과 ‘유용한 지식’, 그리고 '의미 있는 지식' 간의 균형이 어느 시대보다 절실한 때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보편학문과 응용학문간 활발한 교류와 소통은 교육과 연구의 신패러다임에 여전히 중요한 요건입니다. 대학은 사회의 분진을 정화하는 숲이고, 실질과 본질, 실용과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도량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서울대는 ‘배려와 헌신’을 내면화한 전문인이자 교양시민을 길러내는 데에 모든 역량을 결집할 것입니다.

‘自律과 責任’을 핵심 정신으로 하는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의 설립은 전환의 계기가 될 것이고, 또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두루 아시다시피, 한국의 고등교육은 학생 선발과 교수 채용에서 재정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승인이 필요했습니다. 국가주도형 패러다임은 한국의 고등교육을 이만큼 성장시켰던 동력이었습니다만, 세계의 고등교육체제는 이미 관리에서 자율로, 감독에서 지원으로 전환했습니다. 교육을 국가의 관리 하에 두는 선진국은 없습니다. 세계의 명문대학들은 대학 구성원의 자율적 모색과 결정에 따라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고 역사적 진로를 개척하고 있습니다.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는 우리에게 독립적 책임과 개척의 임무를 부여합니다. 이제 서울대는 ‘자율과 책임’이라는 두 개의 바퀴로 결코 순탄치 않은 여정을 헤쳐 나가야 합니다. 이 순간에 서울대 구성원 모두는 각오를 다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묘년의 여명과 함께, 예상치 못한 도전과 난관이 기다리는 그 새로운 학문적 여정을 떠나야 합니다. 자기 혁신의 정신을 강조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친애하는 서울대 동문, 교직원, 학생 여러분!

우리는 이 새로운 길로 전진하는데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그 동안 축적했던 우리의 지적 자산과 자성적 지혜와 국민적 기대를 한 가득 싣고 새로운 항로로 나아가야 합니다. 지난 시대의 항해는 국가라는 든든한 선박에 때로는 무임승차하며 힘 있는 보호자의 지원으로 비교적 순항한 셈입니다. 서울대는 교육과 연구의 새로운 길을 스스로 개척하라는 시대적 소명에 따라 이제 부터 독자적으로 항로를 개척해야 합니다. 고등교육의 신패러다임이 출범하는 이 새로운 시간 앞에서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를 둘러싼 쟁점들과 우려들을 원대하고 슬기로운 미래의 가치로 승화시키는데 만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새로운 체제에서도 서울대는 국립대의 장점을 여전히 살려나갈 것이고, 기초학문과 인본주의적 교육을 더욱 공고히 할 것입니다. 입시에서도 지역균등과 기회균등의 문호를 넓혀 한국사회의 불평등 완화에 적극 나설 것이며, 장학금을 획기적으로 확대하여 학생들의 경제적 부담을 경감하겠습니다. 또한, 그동안 구상해온 국제캠퍼스에 지방 국립대가 함께 활용할 수 있는 연구시설과 교육시설을 건립하여 국립대 전반의 경쟁력 강화를 지원할 것입니다. 아시아의 우수 인재를 유치하는 교육연구 프로그램을 지방 국립대와 공동 개발하여 한국이 명실공히 아시아 고등교육의 메카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국민적 기대에 부응할 것입니다.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는 서울대에 부여한 국가와 국민의 희망을 현실로 바꾸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새로운 체제에 내재된 우려들을 발전적으로 해소시켜 나가는 일은 우리의 몫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 고등교육의 방향을 이제 우리가 개척하고 결정해야 하는 엄중한 시간들이 다가왔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책임이 커졌음을, 국민적 기대가 배증하였음을, 그리고, 역사적 소명에 응답해야할 서울대 구성원의 시대적 책무가 일상화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친애하는 서울대 동문, 교직원, 학생 여러분!

자, 이제 갑시다.
겨레의 앞날을 개척하는 원대한 포부를 품고 새로운 각오로 먼 길을 함께 떠납시다. 우리 앞에 폭우가 내리고 거센 풍랑이 몰아쳐도 64년의 역사와 자부심을 ‘자율과 책임’의 원천으로 삼아 온갖 역경을 견디고 반드시 순항할 것을 확신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2011년 1월 3일

서울대학교 총장 오 연 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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