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년대 시범아파트 부실 대명사
- 70년대 강남개발 아파트 대중화
- 90년대 신도시·주상복합 '돌풍'
◇마포아파트, 와우아파트 그리고 여의도아파트
하지만 아파트가 보편적인 주거문화로 정착하는 데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서울시가 인구집중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범아파트를 공급했는데 단기간, 저비용으로 짓다보니 부실시공이 잇따랐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아파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불식하려고 발빠르게 움직였다. 여의도에 지상 12층, 22개동 1308가구의 대규모 시범아파트를 건립해 적극 홍보했다. 단지내 발전소에서 생산하는 열로 난방하는 중앙난방 아파트는 시민들이 '살고 싶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강남 개발, 인기 주거축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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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들어 강남·서초·송파 등 서울 강남권에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건립됐다. 1971년 서초구 반포동에 들어선 반포주공아파트(3028가구)는 아파트 청약 광풍의 시초다. 아파트 분양이 시작되면서 청약현장에는 엄청난 인파가 몰렸다. '복부인'이라는 말도 이때 생겼다.
1975년에는 송파구 잠실동 일대에 대규모 아파트가 건립되며 강남 개발 열풍이 이어졌다. 현대건설, 대림산업, 경남기업 등 민간업체들이 아파트 건설에 뛰어들면서 아파트 대중화시대가 열렸다. 1977년 삼익주택이 여의도에 지은 목화아파트는 45대1, 화랑아파트는 70대1의 경쟁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정부는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전후해 송파구 올림픽선수촌아파트 등 대규모 아파트 건설에 열을 올렸다. 주택 500만가구 건설계획, 부동산 규제 완화 정책도 잇따라 발표했다.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전경
강남에서 시작된 아파트 건립 열풍은 양천구 목동, 노원구 상계동, 경기 과천 등 외곽으로 확산됐다. 정부는 서울올림픽 이듬해인 1989년 분당, 일산, 평촌, 산본, 중동 등 1기 신도시 5곳의 건설계획을 발표했다.
급등하는 집값을 잡고 주택난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1992년말 입주가 시작됐고 117만명이 5개 신도시로 주거지를 옮겼다. 1985년 69.8%까지 떨어졌던 주택보급률은 1991년 74.2%로 뛰었다.
신도시 개발 경험으로 민간건설사의 시공기술, 마케팅능력이 급성장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아파트가 등장했다. 1990년대말 분양가 자율화가 시행되면서 품질을 높인 아파트들이 공급됐다.
차별화된 설계, 고급 마감재, 홈네트워킹, 유비쿼터스, 친환경 커뮤니티공간 등을 갖춘 아파트가 줄줄이 나왔다. 판상형 일색이던 성냥갑 아파트가 타워형 등 입체적인 모습으로 변신했다.
강남구 도곡동 대림아크로빌을 필두로 도곡동 타워팰리스, 여의도 트럼프월드, 목동 하이페리온 등 주상복합이 잇따라 건설됐다. 이들 단지는 수십대1, 수백대1의 청약경쟁률을 기록하는 등 인기를 끌었다. 입주 후에는 수억원대 웃돈이 형성되는 등 부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