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신춘문예 우수상]치킨전쟁<1>

머니투데이 최재민 2010.12.24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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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해가 떠올랐다. 오늘도 대한읍 노가네 본점 앞에는 꽤 많은 사람이 줄을 서 있다. 노가네가 프라이드 치킨을 한 마리당 5천원에 판매한다고 붙여둔 광고전단을 보고 찾아온 사람들이다. 조기축구를 끝내고 지나가던 한 무리의 사내들이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다 한마디씩 던졌다.

“저거 말이여. 대통치킨, 저거 5천원이라고 하던 디. 저거 하나 사겠다고 이른 댓바람부터 줄서있는 거보면 참 놀라워.”
“맞구먼. 하여튼 대한읍 사람들 참말 대단들혀. 닭 한 마리 사겠다고 저리들 공을 들이니.”
“그나저나 노가네가 저렇게 닭을 싸게 팔면 우리 대한읍 닭장사들은 다 어찌 되는 겨. 다 망하는 거 아닌 겨.”
“말도 안 되는 소리지. 노가네가 온 마을에 다 있는 것도 아니고, 배달도 안 해준다고 하던데. 뭐 며칠 반짝하다 말겠지.”
“그렇게 생각할 건 아니구만유. 만약에 말이유. 싸다면 무조건 달려드는 사람들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이 다 노가네서 닭을 사먹어버리면 지금 대한읍에서 닭집 하는 사람들은 다 새 되는 거요. 다 망할지도 모르쥬.”
“일리는 있는디. 고런 거 땀시 망하기까지야 하것는가.”
“쓸데없는 참견 말고 가던 길 가자고.”



목도리에 귀마개, 털벙거지까지 쓰고 나선 박가는 노가네 본점 앞을 벌써 몇 시간째 사수하고 있다. 대충 앞에 있는 줄을 헤아려 봐도 다행히 박은 안정권이다. 못해도 상위 20%안에는 들것 같다. 아침밥도 못 먹고 한 시간을 달리다시피 걸어온 박이다. 싼 치킨을 구할 수 있는 삼백명안에 들 수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박의 늙은 몸을 전사로 만들어줬다. 먼 길을 걸어야 했고, 눈비에 찬바람까지 섞여 불어대는 모진 날씨와 맞서 몇 시간을 버텨야 했다. 그러고서야 한 마리 프라이드 치킨을 포장해갈 수 있는 영광이 주어질 것이다.

사실 혼자 먹자고 고생을 하는 것은 아니다. 허기진 참새들처럼 종일 배고프다 입을 쩍쩍 벌리는 손주들을 생각해 나선 길이다. 치킨 집에서 배달 일을 하며 먹고 사는 아들은 이제껏 집에 튀김 닭 한 마리 가져온 적이 없다. 사장인 친구한테 괜히 손 벌릴 수 없다는 별시덥지않은 자존심을 세우는 탓이다. 꼴랑 백만 원 정도 되는 돈을 벌어오면서도 늘 유세를 부리는 아들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혼구녕을 내주고 싶지만 얹혀사는 처지를 생각하며 가까스로 참는 박이다.



그렇다고 아들이 영 밉기만 한 것은 아니다. 못 가르쳐서 배운 게 없고, 못 먹여서 피골이 앙상한 채로 어른이 된 아들이다. 그래도 가장이라고 꼬박꼬박 생활비를 대는 아들이다. 가난한 살림을 못 견디고 며느리가 어린 손주들만 놔둔 채 사라진 그날에도 눈물을 머금고 치킨 집 배달을 나갔던 아들이다. 그나저나 박은 오늘따라 노가네가 고맙고 반갑기만 하다. 사실 노가네는 대한읍에서는 알아주는 장사치다. 유독 면과 리가 많은 대한읍에 무려 80여개의 점포를 두고 장사를 하고 있는 노가네다. 명실상부한 대형유통업체인 노가네는 고등어에서 속옷까지 안파는게 없는 그야말로 만물상에 가까웠다. 그런 노가네가 느닷없이 직접 프라이드 치킨을 만들어 팔겠다고 나선 것이다.

대한읍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닥으로 나뉘어졌다. 하나는 소비자의 선택권이 넓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잘된 일이라는 긍정적 입장이었다. 박이 바로 그런 입장이었다. 나머지 하나는 노가네가 가격 경쟁력을 내세워 영세 상인들의 골목장사까지 빼앗을 속셈이라는 강한 비난이었다. 그렇거나 말거나 노가네의 입장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박은 사실 그런 노가네가 믿음직스럽기만 했다.

“자, 여러분이 기다렸던 개장시간입니다.”


오전 10시, 드디어 육중한 철제셔터가 올라가고 노가네 본점의 문이 열렸다. 그사이 사람들의 줄은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그 많은 사람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필사적이었다. 흡사 전쟁을 피해 강을 건너려는 사람들처럼 얼굴에는 닭을 꼭 사고야 말겠다는 다부진 각오가 배여 있었다. 박의 얼굴에도 닭을 얻기까지는 결코 물러설 수 없다는 임전무퇴의 기운이 가득했다. 언뜻 보면 계백의 오천결사대와 같은 분위기였다. 좀 더 정확이 이야기하면 삼백 치킨결사대라고 이야기해야겠지만 말이다. 같은 시간 대한읍 80여개의 노가네 점포 앞에서는 모두 똑같은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아침 일찍 나오기를 잘했네. 저 줄 늘어선 것 좀 보소.”
“난리네요, 난리. 그나저나 어디서 오셨어요.”
“민국리에서 왔어.”
“그쪽에서 오시면 버스타도 이십분은 걸리지요.”
“나 같은 노인네야 남는 게 시간이지. 걸어서 왔어요. 찬찬히 구경도 할 겸.”
“대단하시네. 나도 뭐 한 삼십분 걸어서 왔어요. 우리 애들이 치킨을 좋아하거든요. 근데 요즘 동네치킨은 너무 비싸니까 맘 놓고 사줄 수가 있어야지요.”
“나도 그래. 우리 손주들 이번 기회에 부담 없이 치킨이나 먹이자 해서 온 거지 뭐.”
“그런데 저게 뭐래요. 하이고, 방송국 카메라네. 이런 것도 다 찍어가는가봐요?”



박은 카메라 소리를 듣자마자 고개를 반대쪽으로 확 꺾어 돌렸다. 카메라 울렁증이 있는 것은 아니다. 얼굴이 나가면 안 될 심각한 사연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혹시라도 아들놈이 TV로 박의 얼굴을 확인하는 불상사가 일어날까봐 하는 염려에서였다. 사실 노가네 대통치킨소식을 듣고 어제부터 나서려고 했던 박을 막아선 것도 아들이었다. 노가네 치킨이 잘 팔리면 자기네 배달치킨 사정이 어려워진다고 아들은 노발대발했다. 오지랖이 넓은 탓에 사장가게를 자기가게로 착각하는 것이 분명했다.

또박또박 경우 따져가며 알아듣게 말을 해봐야 소용이 없을 것 같아 박가는 아들의 질책에 그냥 물러서는 척 했다. 물론 세상사 노련한 박의 역사에 포기란 없다. 기어코 치킨을 사들고 가고자 이른 아침부터 노가네를 찾은 박이었으나 카메라에 ‘아들아, 나 치킨 사러 왔다’ 라고 광고할 생각까진 없었던 것이다. 다행히 환하게 웃으며 카메라에 넙죽넙죽 얼굴을 들이대는 사람들이 많았던 탓에 박의 고개돌림에 주목하는 카메라는 없어보였다. 사실 노가네의 치킨판매 소식은 언론입장에서 보더라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화제였다. 그도 그럴 것이 노가네의 프라이드 치킨 판매는 영세상인의 생존권을 해치는 대기업의 무분별한 시장진입이라는 시선에 정면으로 맞서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경제가 어려워 서민들의 주머니가 가벼워지는 시기에 ‘착한 가격’ 을 내세운 치킨등장이 반갑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바로 박과 같은 사람들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전체 여론은 노가네를 향한 비판 쪽에 기울어져 있었다.

“영세상인 다 죽이는 대통치킨 팔지마라.”
“서민경제 박살내는 노가네는 사죄하라.”



대통치킨을 찾아 노가네 점포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의 모습을 촬영하던 방송국 카메라는 어느새 노가네 점포 앞에 포진한 영세상인들을 담고 있었다. 닭을 사겠다고 이른 아침부터 줄을 섰던 이들만큼이나 필사적인 표정에다 비장함까지 더해진 얼굴들이었다. 한손으로 들기에는 무거워 얌전한 새색시처럼 두 손으로 곱게 치킨 통을 들고 흐뭇한 표정으로 빠져나오던 박은 그만 시위대의 무리 속에서 노랗게 물들인 꽁지머리를 보고 말았다. 이제껏 박의 인생사에 직접 개입한 노란색 꽁지머리는 딱 두 명이다.

하나는 지난번 동네경로당 초청공연에 출연해 바닥을 휙휙 도는 이상한 춤을 추던 나이 칠십의 꽁지머리 김이고, 하나는 치킨 집 배달원으로 살아가는 아들이다. 꽁지머리 김은 월미도에서 춤을 추다가 허리를 심하게 삐끗하는 바람에 지금 대한병원 603호 병실에 누워있는 처지다. 그렇다면 저 노란 꽁지머리의 주인공은 바로 아들이다. 다행히 아들은 박을 보지 못했다. 박은 커다란 치킨 통을 들어 얼굴을 가린 채 성급히 노가네앞을 빠져나왔다. 곁눈질로 지켜본 아들은 어금니를 깨물고, 주먹을 꽉 쥔 채 허공을 향해 힘차게 팔을 흔들고 있었다.

그 모습이 눈에 튀어도 너무 튀었다. 남들은 다 입을 열고 구호를 외치는데 박가의 아들만 입을 꾹 다문 채였다. 성질이 나면 언제나 어금니를 꽉 깨무는 게 아들의 버릇이다. 하여튼 어디를 가나 튀는 아들이다. 노란색 꽁지머리, 꽉다문 입술에 험상궂은 얼굴, 그런데 하필 아들이 왜 이 시간에 노가네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지 박은 기가 막혔다. 역시 아들은 자기가 치킨 집 사장인줄 착각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늘 치킨 집 하나 차리는 게 소원이라고 말하더니 결국 정신이 오락가락해진 것이라고 박은 생각했다. 박의 아들은 여전히 철지난 청잠바를 입고 있다. 박은 솜털이지만 그래도 꽤 두툼한 겨울 잠바를 입고 있다. 지난달에 날씨 추워진다며 아들이 박에게 사준 거다. 아들한테 잠바라도 벗어주고 싶은데 박은 그럴 수가 없다. 박의 가슴에는 커다란 치킨 통이 들려있다. 박은 괜히 눈시울이 아른하다. 먼지에 섞여 부는 빌어먹을 바람 때문이다, 라고 생각하며 박은 치킨 통을 가슴에 안은 채 발걸음을 돌렸다. 바람은 계속 박가의 눈을 괴롭혔다.



“인터뷰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렇게 항의집회를 벌이시는 이유가 뭡니까?”
“지금 방송 나가는 거지요. 노가네는 그야말로 우리 대한읍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큰손입니다. 재벌이지요. 그런 노가네가 우리처럼 없는 사람들 살림을 거덜 내는 그런 행위를 해서는 안 되지요. 5천원에 치킨을 판다고 하면 우리는 다 망하는 겁니다. 그거는 총만 안 쐈지 살인이에요. 치킨장사 안돼서 문 닫으면 우리 가족 생계는 누가 책임져 줍니까. 돈 없는 사람은 장사도 하지 말라 이겁니까. 상도덕이란 게 있는 겁니다. 안 그렇습니까?”

“언제까지 항의집회를 하실 생각이십니까?”
“대통치킨인지 뭔지 판매중지할 때까지 해봐야지요. 우리를 호락호락하게 보면 큰코 다칩니다. 우리는 목숨이 달렸다 이거요. 다행히 많은 대한읍민들이 우리를 응원해주니까 힘이 납니다.”

그 시간 대한읍의 면장단회의에서도 생중계로 나가는 뉴스화면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면장단회의에 참석한 면장들은 노가네의 대통치킨에 대한 여론동향을 일찌감치 끝낸 상태였다.



“저거 말이여. 그냥 넘어가기는 어렵겠지요.”
“하지만 우리 대한읍이 공산주의 사회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시장경제 자본주의를 기조로 삼고 있는 마당에 무조건 노가네가 잘못했다고 밀어붙이는 것은 모양새가 좀 우습지 않아요.”
“그렇지. 오천 원짜리 닭 한 마리 먹겠다고 문도 열기 전부터 찬바람 속에서 몇 시간씩 줄서는 거 이것도 민심이여. 그거 괜히 섣불리 건들었다가 오히려 똥 되는 겨.”
“아니지, 그건 아니지. 동반성장이 요즘 화두 아니여. 안 그래도 읍장님이 올해 들어 강조한 것이 공정과 상생이란 말이여. 지금 노가네가 하고 있는 짓거리가 그거 정면으로다가 위배하는 행위라니까.”
“그렇지요. 공정과 상생으로 본다면야 노가네의 프라이드 치킨판매는 어울리지가 않지. 아무렴.”
“더군다나 이런 때 가만히 있으면 다음 선거 때 우리가 서민경제 말아먹었다는 비난받는다니까. 그러니까 일단 노가네를 나무라는 액션을 한번 줘야 돼. 다행히 여론도 노가네가 잘못 했다는 쪽이드만.”
“자, 그러면 일단 우리 의견은 그렇게 모으는 것으로 하시고. 이제 누가 이거를 어떻게 전달할 거냐가 이게 문제라 말이오.”
“공문이나 담화문 이런 거는 조금 격이 무거우니까, 그 요새 그게 뭐시더냐. 트위터인가 뭔가 하는 거 있다드만. 그런 걸 쓰자고. 우리 중에 누가 그런 거 잘하지. 얼른 손들어봐.”
“그거야 젋은 정무면 면장 말고 누가 있겠어요. 안 그려.”
“아, 예. 제가 트위터에 올리겠습니다. 그냥 노가네 치킨판매는 중지했으면 좋겠다. 뭐 이런 식으로 올리면 되겠지요.”
“아니지. 그렇게 하면 논리가 부족해 보인다 말이야. 그렇지, 미끼상품이다, 뭐 이런 걸 넣어서 만들어야지. 가만 보자. 옳거니. 이러면 되겠구나. 잘 받아 적어봐. 일단은 노가네가 튀김 닭을 원가에도 못 미치는 오천 원으로 판매하는 것은 손해 보면서 손님들을 끌려는 미끼상품전략이다. 그렇게 해서 손님을 끄는 것은 근근이 살아가는 영세업자들의 얼굴을 울상으로 만드는 일이다. 그러니 생각 좀 다시 해봐라. 이렇게 쓰라고.”
“다 좋은데 노가네가 진짜 손해보고 파는 게 맞습니까?”
“그거 대한읍 닭사업자 조합에서 준 자료에 나와 있더라고. 맞을 거구만.”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이따가 우리도 튀김 닭이나 먹읍시다. 어쨌든 그놈의 닭이 화제의 주인공 아니요. 석유파동, 광우병파동, 별 파동 다 겪더니 이제는 치킨까지 파동이구만.”<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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