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칼럼]김승유와 이팔성

머니투데이 박종면 더벨대표 2010.12.20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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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지도자든 기업 CEO든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무엇보다 능력이 있어야 하지만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줄 알아야 한다. 또 아무리 유능한 리더라도 시간과 공간이 그에게 속하지 않고, 운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달리 방법이 없다.
 
2010년 아주 오랜만에 찾아온 기회를 가장 잘 살린 사람은 하나금융그룹의 김승유 회장이다. 그는 건곤일척과 성동격서의 승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외환은행 M&A라는 대업을 이뤘다. 겉으로는 우리금융 민영화에 참여할 것처럼 하면서 론스타와 호주 ANZ은행의 협상이 지지부진한 틈을 비집고 들어가 외환은행을 낚아챘다.
 
전정권 시절 김승유 회장에겐 되는 일이 없었다. 신한금융과 붙은 LG카드 인수전도, 국민은행과 다툰 외환은행 M&A도 모두 패했다. 그 과정에서 말 못할 억울한 사연도 많았다. 게다가 하나금융그룹 내에서도 위상이 흔들릴 지경으로까지 몰리기도 했다. 최근에는 은행 경영성적도 '빅4' 자리를 내줄 정도로 위축되고 있었다.
 
임기 만료 5개월여를 남겨놓고 김승유 회장은 외환은행 인수라는 승부수로 이 모든 것을 돌파했다. 사업을 이루고, 공을 세우는 것이 때로는 한순간의 변통에 달려있다. 지도자의 제1 조건은 대권이 변화하는 이치를 아는 것이고, 그 변화에 대응하는 것이다.
 
외환은행 노조가 반발하고, 인수자금 조달에 대한 일부 우려가 있긴 하지만 게임은 끝났다. 김승유 회장이 우리금융을 버리고 외환은행 M&A로 돌아선 것은 2010년 최고의 변통수다.
 
이팔성 우리금융그룹 회장. 시간도, 운도, 기회도 좀처럼 그를 따르지 않는다. 2008년 6월 우리금융에 와서 보니 은행은 껍데기였다. 전임 은행장들이 벌여놓은 파생상품 투자에서 1조6000억원의 부실이 나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 관련 부실에, 조선 및 해운여신 부실까지 끝이 없었다. 취임 후 최근까지 부실여신 청소만 했다.
 
그는 악조건이긴 하지만 자신의 재임기간에 한 가지 업적은 남겨보자고 다짐했다. 그게 자신을 믿고 보낸 인사권자에 대한 예의고, 도리라고 생각했다. 바로 우리금융 민영화였다. 금융당국을 시작으로 국회와 청와대 등을 쫓아다닌 결과 우리금융 민영화 추진이라는 결실을 얻어냈다.
 
다음은 실제 우리금융을 인수할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일이었다. 거래기업과 고객을 설득했고, 돈을 낼만한 곳이면 국내외 모든 연기금과 기관투자가를 접촉했다. 우리금융처럼 피인수기관이 매각작업을 주도하는 일은 예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민영화에 올인하는 게 결국 연임을 위한 게 아니냐는 욕을 감내했고, 주말도 반납했다. 그런 노력 끝에 7조원이라는 큰돈을 모았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하나금융이 외환은행 인수로 돌아서자 기다리기라도 한 듯 정부는 우리금융 민영화 중단을 선언했다. 빠른 시일 내 매각방식을 새로 마련해 재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정권 말기에, 경제팀 개각에 우리금융 민영화는 또다시 장기표류 쪽으로 가고 있다.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에 초점이 맞춰지는 한 우리금융 민영화는 현재로선 난망이다.
 
그러나 모든 것은 변한다. 변하지 않는 일이 없고, 변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나쁜 것 속에 좋은 게 있고 좋은 것 속에 궂은 게 있다. 나쁜 것이 지나가면 좋은 게 다가온다. 세상에는 절대적으로 좋은 것도, 절대적으로 나쁜 것도 없다.
 
김승유 회장처럼 이팔성 회장에게도 기회는 다시 온다. 문제는 그때까지 버티고 인내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분명한 것은 그가 당분간은 구름으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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