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수사팀, 검찰 동료에게 길을 묻다

머니투데이 김만배 기자 2010.12.09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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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춘 검사장, 내부 통신망에 사건 성격과 언론 보도 등 소회 밝혀

한화그룹 비자금 의혹 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서울서부지검 남기춘(51·연수원 15기) 검사장이 검찰 동료에게 길을 묻고 나섰다.

남기춘 검사장은 8일 검찰 내부 통신망에 수사 착수 배경, 사건의 성격 그리고 언론 보도 등에 대한 자신의 소회를 밝혔다.

과거 평검사나 수사관들이 검찰 내부 통신망에 수사 후기나 언론 보도에 대한 해명성 글을 올린 경우는 종종 있었으나, 현직 검사장이 직접 글을 올린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남 검사장은 먼저 서부지검 직원들이 한화그룹 수사에 대한 소식을 보안상의 이유 탓에 언론 보도를 통해 접하게 돼 일부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며 글을 올린 배경을 설명했다.

남 검사장은 "아래의 글은 기자를 상대로 쓴 글이지만 전 직원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사건의 실체를 정확히 볼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올린다"고 이해를 구했다.



검찰의 수사 착수는 이미 알려진 대로, 한화그룹에 대한 수사는 차명계좌를 관리했던 전직 한화 직원으로부터 자신이 관리했던 차명계좌 5개를 제출받으면서, 이 계좌들의 입출금 자금이 그룹의 비자금으로 의심된다는 제보로 시작되었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건의 핵심으로 떠오른 '한유통', '웰롭', '부평판지'에 대해 주주가 한화그룹의 계열사이거나 아니면 대주주 개인이 아니고 100% 차명주주 회사인 관계로 이들을 한화그룹 '위장계열사'라고 규정했다.

그는 이어 원래 위장계열사의 채무는 정당한 경영상의 이유 없이 계열사가 지급보증을 할 수 없으며 또 변제할 수도 없다고 설명했다. 즉 정당한 이유 없이 남의 회사의 채무를 보증한다면 그 자체가 회사에 대한 배임으로 범죄행위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한화그룹은 자신들의 이러한 기업세탁(企業洗濯)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룹관계사 또는 협력사에 대한 지원을 통한 재무구조조정'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변명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화그룹이 '그룹 계열사'에 대한 '채무변제'를 위한 자금지원이라고 표현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는 것이다.

즉 이 같은 논리에 따라 수사팀은 한화그룹의 대주주인 김승연 회장이 차명으로 보유하고 있는 부실회사의 거액의 부채를, 복잡하고 교묘한 기업세탁 과정을 거쳐, 한화그룹 여러 계열사의 자금을 동원하여 변제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 밖에 남 검사장은 이번 수사가 '용두사미'라는 일부 언론의 보도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드러냈다. 또 부실수사의 원인을 '잘못된 검찰인사'라는 게 논리의 비약이라는 항변도 했다.

그는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하기보다는 '살아 있는 재벌'에 대해 수사하기가 더 어려운 게, 언론이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비판 기사를 보도하는 것보다 '살아 있는 재벌'에 대한 비판기사를 쓰기가 더 어려운 이유와 유사하다는 생각을 한다며 재벌과 관련된 언론 보도에 대해 섭섭한 속내를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그는 검사 생활을 하면서 사회생활의 연륜이 쌓여감에 따라 저도 모르는 사이에 어쩔 수 없이 이러저러한 때가 쌓여, 초임검사 시절의 정의감도 그 빛이 바래가는 것은 아닌지 가끔 뒤돌아보고 반성하려고 노력한다며 끝을 맺었다.



한편 서부지검의 한화그룹 경영진의 배임 혐의 수사와 남 검사장의 내부 통신망 글에 대해 , 검찰 주변에서는 대체적으로 옹호하는 입장이다.

검찰 특수부장 출신의 K변호사는 "한 번 쯤 사법적 판단이 필요한 부분"이라며 "경영자에 대한 처벌 차원을 떠나 재벌 기업의 경영판단에 규범을 마련해 줄 필요가 있는 수사"라는 의견을 내놨다. 그는 또 "내부 통신망은 의견 등 글을 올리라는 것"이라며 남 검사장을 옹호했다.

서울중앙지검의 모 부장도 K변호사와 같은 의견을 보였다.



전직 검사장 출신의 A변호사는 "검사라면 누구나 욕심나는 수사다. 하지만 전례가 없어서 부담이 클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홍동욱(62) 여천NCC 사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된 사실을 의식한 듯 "경영진에 대한 구속에 얽매이기 보다는 기소를 통해 법원의 판단을 받아보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나"라는 조심스런 의견을 내놨다.

앞서 서울서부지검 형사5부는 지난 1일 계열사 부당지원과 차명재산 관리 등을 주도한 혐의로 전 재무담당 임원인 홍 사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하지만 법원은 영장실질심사를 통해 "도주우려 및 증거인멸 우려가 없고 방어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는 사안으로 보인다"고 홍씨에 대한 영장을 기각했다.

홍씨는 지난 2002부터 그룹의 경영기획실 재무팀장으로 근무하며 차명계좌 348개와 그룹 관계사 12곳을 통해 수천억 원대 이상의 비자금을 관리한 혐의다.



또 자본이 잠식된 관계사인 부평판지와 한유통, 웰롭 등 3곳의 채무를 변제하기 위해 계열사에 9천여억 원의 피해를 준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 조사결과 홍씨는 그룹 오너의 지배권을 확립하기 위해 부실화된 그룹 관계사를 '기업세탁'해 김승연 회장 일가에 헐값으로 팔고 계열사가 가진 대한생명 주식 콜옵션을 무상으로 ㈜한화에 넘기게 한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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