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칼럼]현대건설 M&A와 사기놀음

머니투데이 박종면 더벨 대표 2010.12.06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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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비디오 예술가 고 백남준은 "현대예술은 고등사기꾼 놀음"이라고 고백했지만 파생상품 같은 현대의 첨단금융도 사기놀음이다.

아직도 여진이 계속되는 세계적 금융위기가 미국 전체 금융자산의 1%도 채 안되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에서 시작된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강만수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은 기획재정부장관 시절 통화옵션상품인 키코(KIKO)를 판 은행들을 'S기꾼'이라고 비난했지만 'S기꾼'은 키코를 판 은행원만이 아니다.
 
10억원이 넘는 연봉에 수십 억원, 수백 억원의 스톡옵션을 챙기고도 자신이 몸담았던 은행을 거덜낸 이 땅의 몇몇 은행 CEO가 진짜 'S기꾼'이다.
 
최근 '사기놀음'과 'S기꾼' 대열에 합류할 게 새로 생겼다. 바로 현대건설 매각이고, 이를 주도하는 현대건설 채권단이다.  
 
올들어 외환은행 등 채권단은 현대그룹에 대해 경영부실을 들어 선제적 구조조정을 요구하는 재무개선약정 체결을 종용했다. 그랬던 채권단이 현대건설 매각에서는 시장의 예상을 1조원 이상 뛰어넘어 무려 5조5100억원을 제시하고, 더욱이 이를 대부분 외부차입으로 조달하겠다는 현대그룹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S기꾼'이 아닌 다음에야 이렇게 할 수 있을까.
 
금호 두산 STX 유진 등 무리하게 대형 인수합병(M&A)을 추진한 그룹이 해체되거나 재무적으로 심한 어려움을 겪은 이후 정책금융공사와 채권단은 현대건설 M&A에 대해선 가격보다 자금조달능력이나 경영능력, 사회경제적 책임을 더 반영하겠다고 공언해왔다.
 
그러나 결과는 딴판이었다. 5조원 넘는 현대건설 매각에서 비가격변수는 가격으로 환산했을 때 5조원의 10분의1도 안되는 3500억원에 불과했다.

결국 비가격요소를 무엇보다 강조하겠다던 채권단의 공언은 허언이었고 사기였다.
 
채권단과 이번 딜을 주관한 메릴린치 산업은행 우리투자증권 등이 현대건설 매각과정에서 이런 이중적이고 사기적인 행태를 보인 데는 이유가 있다.
 
나중에야 어떻게 되든 지금 당장은 현대차그룹보다 현대그룹이 현대건설의 주인이 되는 게 자신들에게 큰 이익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외환은행은 현대차가 아닌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새 주인으로 확정될 경우 1000억원 이상 더 갖게 된다. 이번 딜의 자문사인 메릴린치 등도 현대차가 인수할 때보다 100억원 이상 많은 총 500억원에 가까운 수익을 챙긴다.
 
자산 33억원의 현대상선 프랑스법인이 프랑스 나티시스은행에서 차입한 1조2000억원의 대출이 현대건설이나 현대그룹 계열사의 주식 또는 자산담보가 제공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현대그룹 계열사가 보증조차 하지 않았다는 주장에 이르면 이번 현대건설 M&A의 사기성은 절정에 다다랐다는 느낌이 든다.
 
이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다. 외견상은 그럴지 몰라도 뒷단에는 토털리턴스와프(TRS) 같은 고도의 금융공학이 뒷받침돼 1조2000억원 대출의 실체를 위장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아니면 제3의 기관이 개입, 1조2000억원 대출에 대해 안전장치를 해주고 외견상 무보증 무담보 차입으로 할 수도 있다.
 
아수라장 같은 M&A시장에서 제대로 된 딜을 해본 경험이 없는 우직한 현대차그룹이 이번에 크게 사기를 당하는 듯싶다.
 
현재로서는 판세를 뒤집을 가능성이 많아 보이지도 않는다. 설령 채권단이 현대그룹과 맺은 M&A 양해각서를 파기한다 해도 장기 소송전으로 흐를 전망이기 때문이다.
 
'S기꾼'은 누구보다 법과 제도의 허점을 잘 아는 선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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