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뤼노 라투르는 메리 셸리의 과학소설 『프랑켄슈타인』의 한 구절 ‘왜 저를 버리셨나요?’를 예로 들며 “과학이든 혁신이든 무조건 버리지 말고 애정을 가지고 지키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객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27일 오후 경기도 용인시 상갈동 백남준아트센터(관장 이영철) 2층 학술회의장. 2010 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 수상자인 브뤼노 라투르(63)는 재치 넘치는 화술로 다소 딱딱한 주제를 술술 풀어나갔다. 미디어 아트의 창시자이자 인류 미래의 사상가로서 재조명되고 있는 백남준(1932~2006)을 기려 제정된 국제예술상은 지난해 첫 수상자 4명(설치미술가 이승택, 미디어 설치예술가 로버트 애드리언 엑스, 멀티미디어 작가 시엘 플로이에, 현대무용가 안은미)에 이어 올해에는 사회과학 이론가인 브뤼노 라투르 한 명을 선정했다. 수상 기념 학술포럼에 초청된 라투르는 백남준의 업적을 논하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라투르는 1991년 발표한 자신의 대표 저서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갈무리)의 뼈대를 설명하며 백남준의 정신을 이어가야 할 근거를 밝혔다.
그는 “근대화란 일종의 유토피아였는데 진전되면 될수록 유토피아는커녕 지구도 없어지게 될 지경이 됐다”고 비판했다.
“백남준은 왜 근대가 되는 게 불가능한가를 보여주려 전자매체를 활용했어요. 백이 자신의 작품에서 메타포로 삼은 TV 수신기 뒤의 물고기를 보세요. 그는 자연의 종말을 얘기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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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투르는 근대화의 강력한 무기였던 비평(critique)의 에너지는 이제 사라졌다고 말한다. 외형을 비평가의 눈으로 꿰뚫던 시대는 갔다는 것이다. 대신 그는 구성(composition)이란 개념을 제시했다. 이를테면 ‘우주를 구성하는 쪽’으로 세계는 바뀌어가고 있음을 지적했다. 근대화 대신 ‘명확화, 또는 명시화’란 말이 오늘의 세계를 설명하는 데 더 적절하다고 제안했다.
토론에 참가한 홍성욱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인간과 비인간(Non Human), 즉 인간과 기술·예술 사이의 관계가 중요함에 주목한 라투르 교수의 이론은 권력에 대한 통찰을 비롯해 지금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크다”고 말했다.
이영철 관장은 “백남준의 정신을 어떻게 재정의 할 것인가, 또 젊은 예술가들에게 어떻게 전수할 것인가 등에 라투르 교수의 이론은 큰 지지점이 된다”고 평했다.
글=정재숙 선임기자
사진=최재영 기자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1947년 프랑스에서 태어나 철학과 인류학을 전공한 뒤 파리광업대학과 런던경제학교, 하버드대학 초빙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파리 정치학교 교수이자 정치학교 연구소의 부소장이다. ‘행위자-연결망 이론(Actor -Network Theory)’을 창안해 학제 간 연구를 넘어선 유력한 사회이론으로 현대사회 이해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대표 저작으로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과학의 실천』 『자연의 정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