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K와치]잠행(?)하는 기준금리 정상화

더벨 강종구 기자, 한희연 기자 2010.11.17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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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벨|이 기사는 11월16일(19:33)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금융통화위원회의 기준금리 결정은 은행간 금리에서 시작해 회사채 시장의 장기금리까지 앞으로 가야 할 방향에 대한 지침이다.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오래 무시되면 금융시장의 질서가 어지러워진다.



예를 들어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2.50%로 결정했다면, 그 다음은 물리력을 동원해 단기금리를 다잡는다. 14일 만기인 은행과의 RP거래에서 기준금리를 적용시키고 콜금리 역시 그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한다.

단기금리가 결정되면 만기와 신용에 따라 중기금리, 장기금리가 저마다 제 자리를 다시 잡는다. 은행은 조달금리가 달라지니 운용금리를 바꾼다. 단기금리가 오르면 장기금리는 더 오른다. 자원배분의 '보이지 않는 손' 금리의 법칙은 그렇다.



그러나 도대체 령(令)이 서지 않는다. 시장금리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와 완전히 따로 놀고 있다. 금융통화위원회가 11월 기준금리를 2.50%로 올리자 어이없게도 채권 금리는 하락했다.

방향만 달랐지 지난 11일(현지시간) 연준(FED)이 당한 것과 닮은 꼴이다. 금리는 더 내릴 곳도 없으니 국채라도 사서 돈을 풀어준다는데(양적 완화), 되레 미국의 채권금리는 상승하지 않았던가.

한국은행 금통위가 열린 16일 아침부터 분위기가 수상했다. G20가 끝난 후 기준금리 인상을 다들 확신하고 있었는데도, 채권시장엔 온통 채권을 사겠다는 사람들 뿐이라니…


김중수 총재가 미리 힌트를 줬기 때문에 기준금리 인상은 '서프라이즈'가 아니었다. 금통위를 앞두고 이미 금리인상이 갖는 의미에 대해 해석이 끝난 상태였다.

결과는? 기준금리 인상이 결정된 후 채권 금리는 하락했으니(그것도 큰 폭으로)일시적인 이벤트라고 생각했다고 밖에는 판단할 수 없다. 주식시장에서 자주 쓰는 표현으로는 '재료의 소멸'인 셈이다.

통화정책방향 발표문에서 '금리완화 기조'의 문구가 사라지면서 잠깐 긴장감이 돌긴 했지만, 오래 가지 않았다. 기자회견이 시작되자 지난 몇달과 마찬가지로 롱포지셔너에게서 불안감이 사라졌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결론에 도달한 것일까. 역시 한국은행 집행부를 이끌고 있고 나머지 5명의 금통위원을 조율하는 김중수 총재의 입에서 답을 찾는 게 타당하다.

금융완화 기조의 문구를 삭제한 배경에 대한 김총재의 설명을 들어보자.

"이 말 자체가 빠진 것에 대해서 계속 금리인상을 시사한다 이렇게까지 해석하실 필요는 없다 이렇게 생각합니다....기본적으로 현재의 기조는 완화적이지만 그러나 글로벌 위기를 극복할 당시에 하나의 정책적 의지로서 집어넣은 단어를 계속 사용할 것까지는 없지 않느냐 이런 생각에서 뺐다 이렇게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당황스럽다. 통화정책방향 발표문은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의 모든 논의 내용을 녹여 낸 농축물이다. 문장은 물론이고 단어 하나, 조사 하나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연준의 성명서를 전세계 이코노미스트와 애널리스트가 현미경에 올려놓고 해부하는 이유도 거기 있다.

모든 시장참여자들은 발표문에 문구 하나가 들어가고 나갈 때마다, 그 이유가 있다고 믿는다. 문구 하나에 채권을 살 것이냐 말 것이냐가 결정된다. 통화정책의 영향력이 결정되는 셈이다.

그런데 기준금리 인상을 결정하고 내려 온 총재의 입에서 '금융완화 기조의 문구가 빠진 것에 너무 신경 쓸 것 없다'는 뉘앙스를 짙게 풍기는 발언이 나왔다. 바로 이 순간에 금통위가 한 금리인상 의사결정의 무게는 희석되고, 향후 추가 인상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졌을 게 뻔하다.

그런데 가만히 되짚어보면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7월 금리인상 때도 그랬다. 마치 금통위가 기준금리를 인상하지만 시장금리가 오르거나 주가가 내리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표현하는 듯한 발언이 이어졌다.

7월 금통위는 금융위기 이후 첫 번째 금리인상이었다. 정말 어렵게 한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액션'만 있고 '효과'는 없었다.

최근까지 시장금리는 신나게 내렸다. 채권을 산 사람들은 모두 돈을 벌었다. 이들의 고민은 "이렇게 벌어도 되는 걸까" "지금까지 번 돈을 어떻게 지켜야 할까" 였다.

11월 금통위가 '금리완화 기조'의 문구를 삭제한 것은 하나의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 문구 하나를 빼기 위해 한국은행 집행부는 물론 금통위원들은 수많은 고민과 토론을 했을 것이다. 그 고민과 토론의 결론은 "삭제를 하되 부각시키지는 말자"였을까.

가능성 중 하나는 7월과 11월의 금리인상이 실제로는 금리인상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금통위가 일관된 방향을 가져가지 못하고 한달은 매파가 득세하고 다음 달은 비둘기파가 힘을 얻으면서 오락가락하는 것이다. 금리인상이 금리동결 같고, 금리동결이 금리인하 같은 현상을 이해할 가장 합리적인 접근이다.

또 하나의 가능성은 금통위의 '잠행'이다. 기준금리 정상화를 시도하되 최대한 표시나지 않게, 최대한 놀라게 하지 않고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가자는 것이다. 세계 경제의 불균형을 해소해야 한다고 외친, 경상수지 목표제 합의를 이끌어 내려고 노력한 G20 의장국의 중앙은행이 너무 표시나게 금리인상을 해 버리면 좀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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