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 588, 옷을 벗다

머니위크 지영호 기자 2010.11.09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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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 커버]상전벽해 588/ 초고층 주거단지로 변모하는 집창촌

지하철 1호선 지하 청량리역 5번 출구는 해리포터가 호그와트를 가기 위해 통과했던 9와 3/4 승강장과 닮았다.

1974년 개통 당시 분위기와 별반 다르지 않던 청량리역사 분위기는 출구를 따라 계단에 오르는 동안 2010년으로 모습이 돌변한다. 침침한 형광등 대신 따뜻한 백열등 조명 아래 다양한 상품과 먹거리들이 소비자를 유혹한다. 지난 10월 롯데백화점을 새단장한 롯데프라자와 연결된 통로다. 롯데백화점은 이보다 두달 앞서 청량리민자역사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롯데가(家)의 유통단지가 리뉴얼되면서 생긴 청량리의 경관변화는 서막에 불과하다. 청량리 일대의 대규모 변화가 예고되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9월30일 동대문구 전농동 일대에 대규모 주거복합단지 건축을 골자로 하는 청량리 재정비촉진계획변경안을 고시했다. 따라서 청량리 민자역사에서 서쪽 지역은 주거·업무·문화·숙박 등이 어우러진 동북권 랜드마크로 변모하게 된다.



서울시는 올해 11월4일 환경영향평가, 교통영향분석과 건축심의를 거쳐 8일 사업시행인가를, 12일 관리처분인가를, 그리고 12월2일 착공을 예상하고 있다. 예상 완공 시기는 2014년이다.

청량리 588의 대변혁

청량리 일대 경관변화는 집창촌 밀집 지역인 일명 '청량리 588' 일대가 중심이 된다. 청량리 제4구역이다.


이곳에 50층과 46층(최고높이 200m)의 랜드마크타워 2개동과 40~56층 5개동의 주거타워, 10층 높이의 문화시설 및 복합상가 등이 들어선다. 랜드마크타워에는 295실(3만1600㎡) 규모의 호텔이 들어선다. 동북권에 부족한 관광기능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5개동의 주거타워에는 2036가구가 입주한다. 이중 장기전세주택 147가구를 비롯한 1126가구가 국민주택규모인 85㎡ 이하로 지어진다. 전체 가구의 절반이 넘는 55%다.

스카이라인을 변화시키는 것은 비단 이 건물들뿐만이 아니다. 이미 청량리 제1~3구역(각각 BYC, 삼성화재, 수협)이 정비를 끝냈거나 개발진척이 빠른 상태다. 수협 부지인 3구역은 43층과 37층 건물 두개 동이 들어설 예정이다.

청량리 민자역사의 공사가 마무리 됐다는 점도 동북권의 달라진 그림을 보는 포인트다. 연면적 17만7793㎡에 지하3층 지상9층으로 하루 평균 17만명의 이용객이 찾는 동북권 교통의 요지다. 롯데백화점과 롯데마트, 롯데시네마 등이 입점해 있다.



동부청과시장 등 주변부도 개발붐

지난 7월 정비사업 추진이 발표된 동부청과시장은 음식문화체험복합단지로의 변신을 준비하고 있다. 지하7층 지상45~55층으로 총면적은 26만㎡다. 높이 180m 이하의 타워건물 4동이 지어질 계획이며 여기에 2만3000㎡의 판매시설과 공동주택 999가구가 포함돼 있다. 판매시설에는 식자재 도소매 시장과 음식백화점, 식요리문화 아카데미, 주류 및 웰빙식품 전문마켓이 들어설 예정이다.

동대문구 용두동 39번지 일대에 위치한 동부청과시장은 1972년 문을 열고 한때 동북권 상권을 주도하기도 했으나 시설 노후화로 인해 시장 기능이 쇠퇴하면서 슬럼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던 상권이다.

하지만 동부청과시장의 변신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가깝게 청량리 민자역사가 있고 청량리 재정비 촉진구역과의 시너지도 기대할 만하다. 청량리 재정비 촉진지구와는 답십리길을 두고 마주보고 있어 연계 개발이 가능하다. 청량리역에서 오는 이용자가 접근하기 쉽도록 청량리 재정비 촉진지구 중심을 가로지르는 브릿지를 건설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주변 상권 형성에도 긍정적이다. 한방 전통시장인 경동시장과 지척인데다 배후세대가 풍부해서다. 청량리 재정비 촉진구역의 2000여가구와 음식문화체험 복합단지 1000여가구가 든든한 후원자다. 게다가 불과 수백미터 이내에 7500여가구의 전농·답십리 뉴타운지역이 버티고 있다. 전농·답십리 뉴타운에서 가장 넓은 전농7구역이 10월26일 착공한 것을 필두로 답십리 18구역 등 줄줄이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시세는 요지부동 거래는 깜깜

장밋빛 청사진에도 불구하고 인근 지역의 부동산 가격 변동은 요원하기만 하다. 부동산 경기 침체 여파의 파급력이 막강해서다. 청량리 드림공인 관계자는 "아무리 주변 호재가 있다고 해도 거래가 없다보니 호가만 존재한다"며 "변화를 감지할 만한 현상은 어느 곳에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청량리 4구역 내에 위치한 롯데공인 관계자는 "얼마 전 세무 담당 공무원이 소득을 허위신고하지 말라고 했다. 거래내역이 전무해 수입을 0으로 신고했더니 벌어진 일"이라며 "지역 특성(집창촌 인근 지역이라는 특수성)상 거주하려는 사람은 없고 오로지 투자하려는 사람만 찾는 곳인데 사실상 수익성이 없어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재개발사업이 지지부진했다는 점도 가격 동요를 일으키지 않는 원인이다. 1994년 도심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된 이래 주민들의 이해관계로 인해 사업이 늦춰지다가 2003년 청량리균형발전촉진지구로 지정된 지 7년 만에야 변경안이 고시됐을 정도로 개발속도가 늦다. 지난해에는 서울시가 멀티플렉스 시티 콘셉트의 도시개발기본계획을 확정, 발표하기도 했다.

따라서 이번 고시로 인해 개발이 활성화될지 의문을 품는 이들도 상당수다. 여관을 운영하는 한 업주는 "해마다 개발을 한다면서 미뤄지고 있는 게 벌써 10년도 넘었다"며 "첫 삽을 뜨려면 상당한 시일이 걸리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집창촌에서 일하는 점주들도 마찬가지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점주는 "30년 전부터 집창촌 철거 이야기가 불거져 나왔다"며 "일부 철거된 업장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업주들은 버틸 때까지 버틸 심산"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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