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무덤 대구에서 분양 시작한 애경그룹

머니위크 지영호 기자 2010.10.23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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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5년 전 분양가보다 싸게

‘고담 대구’

유독 대형사건 사고가 많아 누리꾼들 사이에서 대구시를 영화 ‘배트맨’의 무대인 고담시에 빗대 붙인 별칭이다. 고담은 어둡고 음습한 분위기를 표현하는 수식어인 셈이다.

이 같은 분위기는 건설업계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국토해양부의 미분양주택현황에 따르면 8월 말 현재 대구시는 전국 16개 시·도 가운데 경기도(2만2326가구)에 이어 2위(1만6066가구)를 달리고 있다.



준공 후 미분양 현황은 더 암담하다. 경기도가 8월 말 현재 5295가구인 반면 대구시는 1만2782가구다. 경기도의 2배가 넘는 아파트가 완공 후에도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전국적으로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의 수는 5만31가구다.

건설업계는 분양 기피지역 1호로 대구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대구는 미분양 적체가 상당해 거들떠보지 않는 지역 중 하나”라며 “한 때 중대형 평형의 수요가 많다는 분석 때문에 대형 건설사까지 합세해 미분양을 키웠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구를 기반으로 한 중견 건설사들은 지난 10년간 상당 부분 자취를 감췄다. 대표적인 대구 지역의 건설사인 청구가 최근 부도 처리됐으며, C&우방도 모기업 C&그룹의 유동성 문제로 매각됐다가 기업회생절차를 밟고 있다.

건영 역시 한보건설과 통합돼 LIG건영으로 운영되다가 LIG건설로 사명을 바꿨다. 이 과정에서 근거지로 삼았던 대구를 포기했음은 물론이다. 현재 대구 지역에서 남아있는 시공순위 100위 이내 건설사는 화성산업이 유일하다.


"5년 전 가격으로 모시겠습니다"

이런 가운데 생활용품 기업으로 유명한 애경그룹이 대구 지역에서 아파트 분양사업에 나서 눈길을 끈다. 애경그룹의 계열사인 AK네트워크는 애경PFV1을 통해 대구 달서구 유천동 103번지 일대(구 대한방직 자리)에 대규모 단지를 14일부터 분양하고 있다.


지상 30층 17개동으로 일반아파트 1669가구와 주상복합 212가구 등 1881가구다. 브랜드명은 AK그랑폴리스.

AK네트워크가 침체 국면의 분양시장에서 건설사의 무덤으로 불리는 대구에서 분양을 진행하는 이유는 시장 상황을 중소형 위주의 시장 재편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대구의 미분양 적체가 심하지만 대형 평형 위주의 미분양이 심각할 뿐 중소형 수요는 강세를 보이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분양 가구수의 86%를 84㎡ 이하 중소형 아파트로 배정한 이유다.

중소형 시장의 강세는 최근 대구 지역의 분양상황에서 엿볼 수 있다. 올해 대구지역에서 제법 규모 있는 분양을 한 포스코건설의 이시아폴리스의 경우 6월 말 분양해 10월12일 현재 81%의 계약률을 보이고 있다. 이곳 역시 85㎡이하 공급이 전체 가구수의 75%를 차지한다. 지난 7월 1.31대 1의 분양률을 기록한 화성산업의 대구 대곡 화성파크드림 역시 전체 가구수의 85%가 59㎡였다.

가격을 낮춘 것도 대구 진입을 위해 감안한 조치다. 그룹 내 첫 아파트 분양사업인 만큼 흥행성을 높이기 위한 필수 카드로 활용했다. AK네트워크가 밝힌 3.3㎡당 평균 분양가격은 714만원 수준. 전용면적 84㎡ 기준층 기준 2억3990만원이다.

이는 5년 전 분양한 인근 아파트와 비슷한 수준이다. 84㎡을 기준으로 할 때, 2005년 8월부터 분양한 월배힐스테이트는 2억3980만원, 월성푸르지오는 2억4140만원, 월배쌍용예가는 2억3900만원으로 책정됐다.

AK그랑폴리스 홍보를 담당하는 솔트컴 신성영 국장은 “계약금 5%에 중도금 전액 무이자 혜택에다 발코니 확장 무상 시공까지 감안하면 5년 전 분양가격보다 1000만원 이상 싼 가격”이라고 설명했다.

“부동산사업, 오래 전부터 준비한 일”

생활환경제품 제조회사로 잘 알려진 애경그룹에 부동산 개발회사가 두개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유통분야와의 시너지를 고려해 설립한 AK네트워크와 군인공제회와 합작 투자한 AM플러스자산개발이 그룹의 부동산 개발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AK네트워크는 애경그룹이 유통사업부문의 시너지 창출을 위해 2004년 7월 설립한 부동산 개발회사다. AM플러스자산개발은 과거 AMM자산개발로 모건스탠리와 합작한 회사로서 세간의 관심을 받았던 회사다. 현재는 애경그룹이 57.1%, 군인공제회가 42.9%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사업이 중첩된다는 우려에 대해 그룹은 ‘영역이 다르다’고 해석한다. 애경그룹 관계자는 “AK네트워크는 그룹 내 개발물량을 소화하고 AM플러스자산개발은 그룹 이외의 부동산 개발을 목표로 한다”고 설명했다.

AM플러스자산개발의 첫 번째 사업은 서울 구로동 대림역 인근에 위치한 오피스텔 ‘와이즈 플레이스’ 분양사업이다. 지하 4층 지상 16층 규모에 오피스텔 198실, 도시형 생활주택 96가구를 이달 중순 이후 분양한다. AK그랑폴리스가 중순부터 청약접수를 받는 것을 감안하면 그룹 내 각각의 부동산 개발회사가 동시에 분양을 시작하는 셈이다.

애경그룹의 부동산 개발은 채형석 총괄부회장의 관심에서 비롯됐다. 애경그룹 관계자는 “총괄부회장이 부동산 개발에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아파트 분양사업을 위해 2005년께 대한방직 부지를 매입하는 등 오래 전부터 계획해온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이미 수원과 평택의 민자역사 개발을 주도하며 실력을 검증받은 애경그룹이 아파트 분양사업에서 어떠한 성적표를 남길지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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