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수 없는 채권단 신용위험평가

머니투데이 이군호 기자 2010.10.12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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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차때 멀쩡하다는 B등급 건설사 부도, 3차때는 멀쩡한 건설사 퇴출했지만 회생

일률적이고 일관성 없는 채권은행단의 건설사 신용위험평가가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이미 지난해 초 1~2차 구조조정을 치루면서 일시적 유동성 부족 판정을 받았던 B등급 건설사들이 연쇄부도로 이어지면서 신용위험평가의 진정성에 의문에 제기돼왔다.

특히 지난 6월 3차 구조조정에서는 퇴출(D등급) 판정을 받은 대선건설이 4개월 만에 차입금을 모두 갚고 증자까지 실시해 경영정상화를 이루면서 채권은행단의 신용위험평가를 두고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구조조정 때마다 논란 증폭
채권단의 건설사 신용위험평가의 난맥상이 극명하게 드러난 사례는 지난 6월 3차 구조조정 당시 퇴출 판정을 받은 대선건설이다. 대선건설은 당시 958억원에 이르는 여신과 영업이익에 비해 손실 규모가 크다는 이유로 퇴출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대선건설은 958억원에 달하는 차입금이 예금을 담보로 한 대출이었고 영업손실도 시행사로서 신규사업을 확장해 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다. 또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은 물론 지급보증, 대출금 연체 등도 전무해 부도 위험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채권단이 일률적인 신용위험평가 잣대를 들이대면서 억울하게 퇴출 판정을 받았다. 이에 대선건설은 퇴출 판정 이후 4개월만인 지난 8일 주채권은행인 하나은행을 비롯해 신한은행 등 금융권으로부터 빌렸던 차입금 958억원을 모두 상환했다.

사업 팽창에 따라 현 자본금으로는 사업을 수행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지난 1일 증자까지 실시했다. 대선건설은 신용위험평가를 다시 받아야 우수한 등급으로 격상된다는 금융당국의 유권해석에 따라 재평가를 준비 중이다.

앞서 지난해 단행된 1~2차 건설사 구조조정에서도 채권단의 일관성 없고 일률적인 신용위험평가가 문제가 됐었다. 대표적인 사례는 일시적 유동성 부족 판정을 받은 B등급 건설사들이다.


채권단은 B등급 건설사들의 경우 금융위기와 부동산경기 침체로 일시적으로 유동성이 부족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부도 위험이 전혀 없다고 판정했다. 하지만 지난해 신창건설과 현진, 올해 성원건설, 남양건설, 금광기업, 대우자동차판매, 풍성주택 등이 줄줄이 부도를 면치 못했다.

부동산경기 침체가 지속돼 건설사들이 버텨낼 수 없었다는 변명이 나올 수는 있지만 채권단이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인 C등급으로 분류해 강력한 구조조정을 실시했다면 부도는 막을 수 있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실제 지난해 1~2차 구조조정 때 워크아웃에 돌입한 경남기업, 풍림산업, 우림건설 등 상당수의 건설사들이 뼈를 깍는 구조조정과 채권단의 자금지원으로 조금씩 회생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잘못된 평가로 선의의 피해자 속출
3차 건설사 구조조정에서 퇴출로 판정받은 대선건설은 지난 4개월 동안 막대한 유무형의 손실을 봤다.

대선건설은 퇴출 판정 이후 강원도 영월 아파트 사업장의 계약이 급감하고 기존 계약자들까지 해지를 요구해 몸살을 앓았다. 또 퇴출 판정으로 신용도가 하락하면서 성수동 아파트형 공장 분양사업과 신촌 도시형생활주택 등 신규로 추진하는 사업의 보증이 막히면서 사업이 장기 지연됐다.



아파트형공장과 도시형생활주택 같은 틈새상품은 최근 각광받고 있는 사업인데다 경쟁기업에 비해 얼마나 빨리 공급할 수 있느냐가 경쟁력이다.

대선건설 관계자는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의 목적이 사회에 문제를 끼칠 수 있는 기업을 사전에 선별해 피해를 최소화 하려는 것 아니냐"며 "하지만 일괄적인 평가기준 때문에 억울하게 퇴출위기에 몰리면서 오히려 이 법이 대선건설은 물론 분양자, 시공사 등에 피해를 주는 꼴이 됐다"고 말했다.

채권단 덕분에 B등급으로 판정받았다가 부도가 난 건설사들로 인해 분양자와 하도급·자재업체 등의 피해도 만만치 않다. 멀쩡한 기업으로 판단해 거래를 유지한 소비자와 하도급·자재업체로서는 부도기업으로부터 채권을 회수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전문가들도 일관성 없고 일률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정부 및 채권단 주도의 건설사 구조조정이 건설산업과 건설사들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보다는 논란거리만 양산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 건설경영 전문가는 "건설사 위기는 물론 건설사들의 무리한 사업 확장 때문이긴 하지만 돈을 꿔준 공범자인 채권단도 책임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며 "특히 채권단의 잘못된 판단이 사회에 막대한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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