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이 빚은 네팔 산골마을의 기적

머니투데이 전예진 기자 2010.10.05 07:54
글자크기

[2010 당당한부자, 소셜홀릭]박은자 아름다운가게 휘경점 명예점장

나눔이 빚은 네팔 산골마을의 기적


네팔의 수도인 카트만두에서 비행기로 1시간, 다시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차를 타고 4시간 동안 들어가야 하는 피딤지역 칼리카 마을. 이 외진 산골마을에선 지난달 29일 축제가 벌어졌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던 이곳 아이들을 위한 새 학교가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네팔의 산골마을에 학교가 들어서기까지 한 사람의 아름다운 나눔이 있었다. 국경없는 나눔의 주인공은 아름다운 가게 휘경점 명예점장 박은자씨(64). 그가 기부한 돈으로 칼리카 마을에는 학교와 도서관으로 구성된 2층 건물이 새로 들어섰다. 이제 아이들은 먼 지역까지 가지 않아도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됐다. 지역주민들은 커뮤니티 공간이 생겼다고 기뻐했다.



박은자씨가 네팔의 열악한 교육환경에 대해 전해들은 것은 지난해 말. 그동안 명예점장으로 활동하던 아름다운 가게를 통해서다. 평소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관심이 많았던 그는 일회성 기부로 소외계층을 돕는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 2003년부터 재사용 자선가게를 운영하는 아름다운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나눔이 빚은 네팔 산골마을의 기적
"아름다운가게 매장이 지역에 들어서면 매장 수익금으로 지속적으로 소외계층을 도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 매장이 없던 서울 휘경동에 매장을 기증하면서 본격적으로 나눔 운동에 동참하게 됐죠. 지금까지 휘경점에서 중고물건을 팔아 지역주민들에게 수익을 나눈 것이 금액으로 따지면 1억3500만원 정도됩니다."



그는 1년에 두 번 본인이 소장한 물품과 주변으로부터 기증받은 물건을 모아 특별기증전을 열고 물건을 판 수익금을 기부하기로 유명하다. 기증전을 연 것이 올해로 7년 째. 지금까지 기증한 물건 만해도 1000점이 넘었다. 지난 8월에 연 기증전에서는 500여 점의 물건을 팔아 약 800만원의 수익을 올렸다. 이렇게 매년 기증전을 준비하다보니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많다.

"좋고 깨끗한 물건을 구하려다보니 빈 박스 하나도 안 버리고 모으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새 것과 다름없는 물건이어야 사가는 사람도 저렴한 가격에 제대로 된 물건을 구입했다는 마음에 또 오게 되고 서로 기분이 좋으니까요. 한번은 밤낮 차에 헌 물건을 싣고 다니니까 고물장수냐는 오해를 받기도 했죠. 그래서 아예 남편 사무실에 물건 창고를 뒀습니다. 기증전이 다가오면 창고뿐만 아니라 집에도 더 이상 물건을 쌓아둘 때가 없을 정도여서 고물상을 방불케 합니다.(웃음)"

휘경점 명예점장으로 활동하면서 공정무역에도 관심을 가지게 됐다. 아름다운가게 공정무역 커피나 홍차를 구입해 지인들에게 선물하면서 공정무역제품에 푹 빠지게 된 것.


"올 추석 때도 각 기업들의 추석선물세트로도 권유했고 커피 샘플 하나도 다 제 돈으로 사서 나눠주곤 했습니다. 미국에 사는 딸에게도 보내줄 정도로 커피의 질이 좋습니다. 주변 지인들에게 하도 우수한 질과 가치를 홍보하고 다녀서 공정무역 전도사, 걸어 다니는 커피판매기라로 불리기도 했죠."

나눔이 빚은 네팔 산골마을의 기적
커피를 팔다보니 자연스레 커피 산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됐다. "커피와 인연을 맺으면서 네팔의 어려운 교육환경에 대해서 얘기를 듣게 됐습니다. 커피를 파는 것도 좋지만 우선 커피산지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에게 꿈, 희망, 미래를 주는 것만큼 보람된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죠."



그는 국내에서도 도서관에 기부를 한 경험을 바탕으로 네팔의 학교 설립을 돕기로 마음먹었다. "그동안 국내에서도 학교나 도서관에 책을 기증했던 경험이 생각이 나더군요. 1986년도에 아들이 초등학교 때 세뱃돈, 용돈 등을 차곡차곡 모은 새마을저금통장을 깨서 경기도의 한 복지학교 도서관에 100만원 상당의 책을 기증한 일이 있습니다. 또 아들이 대학교 1학년 때는 친척들과 함께 당시 태풍으로 수해가 난 파주지역에 구호물품 100만원 어치를 기부한 일도 있습니다. 네팔의 경우 이곳에서 생산된 공정무역 커피에 대해서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확신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네팔의 환경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열악했다. "공정무역 산지들은 대부분 오지에 있습니다. 커피, 차가 만들어지면 도시로 운반하는데 도로가 닦여지지 않아 마을조합 단위로 사업을 진행해야합니다. 외부의 손길이 닿는 곳이지만 이곳 아이들이 문맹률이 높은데 이유는 학교가 너무 멀어서 글 배우는 데 몇 시간을 걸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수확 철에 노동력이 딸리다보니 아이들을 학교 안 보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학교 지어주는 게 문제가 아니라 유지하는 것도 문제였죠."

그는 학교 유지를 위해 도서관 사서를 고용하고 지역주민을 위한 서적도 구비하도록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서로 도서관 사서를 하겠다고 하지만 이곳은 오지라서 인력을 구하기가 힘듭니다. 현지에서 직접 월급을 주고 사서를 고용하고 교육시켜서 도서관이 원활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도서관은 전기가 안 들어오니까 태양열 설비를 갖춰서 주민들도 저녁이면 도서관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마을 주민을 위한 커뮤니티 공간으로 쓸 수 있도록 할 생각입니다. 홍차 재배방법, 경영 관련된 서적도 구비해서 농민인 지역 어른들도 이용할 수 있게 하면 이 지역에서 홍차를 재배하는 한 학교가 유지될 수 있을 겁니다."



그가 이처럼 나눔과 기부활동을 하게 된 계기는 뭘까. 그는 어렸을 적 어머니로부터 배운 나눔의 기억 덕분이라고 말한다.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께서 생일날에는 미역국만 끓여주시고 대신 커다란 통에 잡채와 과일, 떡 등 먹을 것을 싸들고 양로원, 고아원, 장애인 복지시설을 데리고 가셨습니다. 저희 식구는 먹고 살만 하니 소외된 계층에 베풀어야한다는 걸 몸소 가르치신 것이죠. 저희가 직접 음식을 서빙하면서 뿌듯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도 아이들에게 이를 가르치기 위해 기부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려고 노력했습니다. 형편에 여유가 있는 가정일수록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이런 가정교육이 일반화돼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번 네팔 학교 설립이 아직 나눔의 첫 단계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어느 정도의 생활을 누리고 살면서 넘치는 부분은 다 환원하고 싶습니다. 부자라는 게 돈이 많고 회사가 크고 돈이 많은 것이 아니라 나눌 수 있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 부자지요."



그에겐 이제 또 하나의 꿈이 생겼다. 이 학교가 네팔뿐만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다른 지역으로 뻗어나가는 것이다. "네팔에서 처음 설립된 이 학교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아프리카, 파키스탄까지 퍼져나갔으면 합니다. 네팔에서 학교가 자리 잡고 경험이 쌓이면 제 자식들도 이 사업을 이어나갔으면 합니다. 저는 한 개인 기부자일 뿐이지만 이런 소식들이 전해져서 기부문화가 확산돼 공정무역산지에 제2, 제3의 학교와 도서관이 설립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