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억짜리 땅을 단돈 2000만원 매각, 제정신?

머니투데이 김익태 기자 2010.09.28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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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와증권 '황당한 PF 거래'…증빙서류 106건도 모두 분실

다이와증권 서울지점이 터무니없는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을 취급해 금융당국으로부터 제재를 받았다. 내부통제기준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수백억 원의 PF 대출에 일종의 '지급보증'을 섰다 이를 모두 날린 탓이다.

대출이 금지된 증권사가 채권매매를 가장해 사실상 대출을 해준 것으로 증권업계에 이와 유사한 일이 상당 수 벌어졌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곧 증권사들의 PF 대출 연체율 급등으로 이어졌던 만큼 건전성 관리 차원에서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130억 짜리 땅 2000만원에 처분= 27일 금융감독원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경남은행은 2006년 2월 '서린D&C'라는 부동산 시행사에 아파트 부지 매입 용도로 230억 원의 브리지론을 대출해줬다. 이 때 다이와증권 서울지점은 경남은행과 '대출채권 매입약정'을 맺었다. 서린D&C에 대출을 해주면 일정기간 후 대출채권을 사주겠다는 것으로 사실상 지급보증과 똑같은 효력이 있었다.

경남은행으로선 전혀 손해 볼 거래가 아니었다. 시행사로부터 이자를 꼬박꼬박 받을 수 있고, 나중에 채권을 사주겠다는 곳이 있으니 말 그대로 '안전빵' 대출이었다. 실제 부동산 경기 침체로 2008년 7월 서린D&C의 사업이 중단됐지만, 경남은행은 약정에 따라 다이와증권으로부터 230억 원을 대신 지급받았다.



다이와증권은 대신 서린D&C의 사업장인 부산시 동래구 수안동 아파트 부지 2만5455㎡(약 7700평) 규모를 담보로 잡았다. 서린D&C는 대출액 230억 원 중 땅값으로 130억 원을, 나머지는 은행 이자 등으로 사용했다.

다이와증권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130억 원 중 50억 원 가량은 이미 담보신탁이 돼있었고, 나머지도 영업양수도를 받아 처분권을 행사하면 수십억 원은 건질 수 있었는데 이런 노력을 하지 않았다. 대신 담보로 잡은 땅을 제3자 매각 방식으로 단돈 2000만 원에 처분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10억 원만 손해를 봐도 소송을 걸어 절반이라도 건지려고 하는 게 금융회사들의 속성"이라며 "그런데 감정가 130억 원의 땅을 서둘러 2000만 원에 판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집행자금 증빙서류도 분실= 상식 밖의 일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금융감독원의 검사 결과 다이와증권은 대출채권 매입약정을 체결하고 이후 자금을 집행하면서 중요 증빙서류를 분실했다. 2005년 7월에서 2007년 3월에 집행된 187억 원의 자금내역을 확인할 수 있는 계약서 등 106건의 중요 증빙서류를 잃어버린 것. 이는 모두 의무보유기간이 3년인 서류들이다.

이에 따라 서류 분실이 아닌 PF 대출 취급업무를 은폐하기 위한 서류 폐기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금감원은 이와 관련 지난 6일 제재심의위원회를 열어 서류 분실에 대한 책임을 물어 이 증권사 전 임원(전무) A씨에게 '견책' 조치를 내렸다.

전 지점장 A씨에게도 '주의적 경고'의 징계를 결정했다. 5억 엔 이상의 자산투자 시 본사 이사회 특별 결의를 얻어야 하는데 이를 거치지 않았고, 건설사와 책임 약정을 체결하지 않은 상태에서 은행과 대출채권 매입약정을 체결해 투자 부실화를 가져온 탓이다. A씨는 또 중대한 사안 발생 시 바로 본사에 보고해야 함에도 내부 규정을 어기고 PF 투자 손실을 보고하지도 않았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다이와증권이 국제적 평판에 흠이 갈 것을 우려해 이 건을 서둘러 봉합하려 한 것 같다"며 "토지 처분이나 서류 분실 등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무늬만 '채권매매' 사실상 대출= 이번 건은 증권업계의 부실한 PF 업무 취급 현실을 극명하게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증권사는 이런 대출을 취급하지 못하게 돼 있지만, 대부분이 이처럼 편법 PF 대출을 해줬다. 형식만 채권매매지 부동산 PF 대출과 다를 게 없다.

특히 이런 거래는 모든 위험을 증권사가 떠안아야 한다. 문제는 시행사의 건전성, 사업 전망 등을 제대로 심사할 증권사의 능력은 은행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것. 그런데 증권사들이 주도한 이런 PF 사업장이 상당하다는 게 관련 업계의 전언이다. 이는 곧 PF 대출 부실로 이어졌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은행의 PF 대출 연체율은 1.67%, 저축은행의 연체율도 10.6%였는데, 증권사는 무려 30.28%를 기록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심사기능을 제대로 못 갖춘 증권사들이 채권매매를 가장한 편법대출로 큰 손실을 봤다"며 "증권사의 건전성 측면으로 접근해 제도적 보완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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