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따라 현대그룹은 자금 압박과 대외 신인도 하락에서 벗어나는 것은 물론 신규 투자 등 정상적인 경영활동에 나설 수 있게 됐다. 특히 1주일 앞으로 다가온 현대건설 (30,950원 ▼200 -0.64%) 인수전에도 적극 나설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현대그룹 채권단은 지난 6~7월 결의한 신규대출 중단, 만기 도래 여신 회수 등 현대그룹 계열사들에 대한 금융제재는 본안 판결이 나올 때까지 실행할 수 없다. 또 채권단은 현대그룹이 재무구조 개선 약정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외환 업무 중지 등 추가 제재도 할 수 없다.
이어 재판부는 "위기를 극복하는 방식은 원칙적으로 기업이 자유롭게 결정해야 한다"며 "재무구조 개선 약정을 체결하지 않는 것이 유리하다는 기업의 판단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결정에 대해 현대그룹 관계자는 "주력 계열사인 현대상선 (17,630원 ▲320 +1.85%)의 해운경쟁력과 위상이 제고돼 글로벌 랭킹이 높아지는 계기가 될 전망"이라면서 "특히 현대건설 인수전 추진에도 한층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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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도 환영하는 분위기다. 법원이 기업의 자율성을 더 우선시 했다는 점에서다. 재계 관계자는 “그동안 재무약정제도에 대해 기업들의 불만이 있었지만 돈줄을 쥐고 있는 은행에 대항할 힘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라며 “재무약정제도를 재점검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현대그룹, 현대건설 인수 탄력받나= 현대그룹은 이번 결정으로 현대건설 인수전에서 한층 탄력을 받게 됐다. 사실 채권단과 첨예한 대립 관계에 놓이면서 그룹의 숙원 사업이던 현대건설 인수전에도 적신호가 켜진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었다.
재무약정이 체결되면 현대그룹은 인수합병전에서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 재무약정을 맺고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가면 거액의 들어가는 현대건설 인수전에는 뛰어들 수도 없게 된다.
또 약정을 체결하면 인수전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려운 만큼 현대그룹의 반발은 예견된 수순이었다. 채권단이 "재무약정을 맺어도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인수전에 참여하는 데 반대하지 않겠다"고 밝혔음에도 현대그룹의 반발이 누그러들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채권단의 공동 제재조치가 풀림에 따라 현대그룹은 현대건설 인수에 필요한 자금 조달이 한결 수월해질 전망이다. 특히 재무적 투자자 영입 시에도 보다 좋은 조건에 투자자를 모집할 수 있게 됐다.
현대그룹은 현대건설 인수건과 관련, 그룹의 미래가 달려 있는 사안이라 물러설 곳이 없는 형편이다. 현대건설이 보유하고 있는 현대상선 지분 8.3%가 현대그룹의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다는 관측에서다.
현대상선은 현정은 회장 일가가 우호지분을 포함해 45%대를 보유하고 있지만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 등 범(汎) 현대가 역시 32%대를 갖고 있다. 아직 공식화하지는 않았지만 현대가의 장자인 정몽구 회장의 현대차그룹이 인수전에 참여하면 현대건설 향배가 자칫 현대상선의 주인을 바꿔놓을 수 있다. 이에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매년 신년사에 빼놓지 않고 현대건설 인수를 내세울 정도로 강한 인수 의지를 밝혀왔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법원의 이번 결정으로 무엇보다 현대그룹 인수전에서 현실적 어려움으로 작용할 수 있는 신규 여신 중단 등 걸림돌이 제거돼 추진과정에서 탄력이 생기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결정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만기연장의 경우 이를 거부하는 것은 법원의 결정에 위배될 수 있다. 하지만 신규대출의 경우 은행이 자율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고유 영역’의 성격이 강하다.
이로 인해 현대그룹이 신규대출을 신청하면 은행이 무조건 수용해야 한다는 결정은 아니라는 게 법조계 안팎의 시각이다.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인수에 필요한 자금을 은행에서 빌리는 것은 여전히 어려울 수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