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공정한 사회

머니투데이 류병운 홍익대 법대 교수 2010.09.16 11:10
글자크기
[MT시평]공정한 사회


갑자기 우리 국민들이 차원 높은 정치철학에 몰입되기 시작했다.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인문학 서적으로는 드물게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더니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8·15경축사에서 언급한 '공정(公正)한 사회'에 대한 담론에 사회 전체가 빠져든 느낌이다. 국민의 70%가 우리 사회를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마당에 그 불공정성이 외통부 장관 딸 변칙적 특채사건으로 매우 선명하게 클로즈업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새 슬로건에 대해서 "자기는 밥 다 먹었으니…" "정부는 불공정하면서…"라는 냉소적 비판도 들린다. 사실 과거 쿠데타로 집권한 세력이 애용했던 '정의(正義)사회 구현'은 결국 트라시마추스(Thrasymachus)가 말한 '힘센 자의 정의'였거나 정략적·포퓰리즘적 구호였다. 이러한 씁쓸한 기억에 터잡은 의심스런 눈빛들을 의식한 탓인지 '공정한 사회'를 애써 법치주의라는 개념 안에 묶어놓으려는 입장도 있다.



그러나 이 대통령도 "출발과 과정에서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 패자에게 또다른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라고 부연한 것을 보면 분명 법치주의 이상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배려라는 '정의'의 개념을 함축하고 있다.

약자에 대한 배려로서 '공정'이라는 말은 조직화된 국제적 사회운동인 '공정무역'의 개념을 떠올리게 한다. 이 '공정무역'은 생산한계 상황에 직면한 개발도상국의 커피, 수공예품, 바나나 등의 생산자들에게 생산활동의 지속성, 고용형평성 제고, 나아가 경제적 자립을 확보해주기 위한 시장개입운동이다. 그러나 모든 생산자가 공정무역의 혜택을 누릴 수는 없다. 수혜자가 생산을 확대하는 동안 기회를 얻지 못한 생산자들은 더 심한 빈곤으로 내몰리는 불공정한 '공정무역'도 예상된다.



존 롤스(John Rawls)는 '공정으로서 정의'가 정치적 자유와 기본권의 모든 개인에 대한 보장, 사회의 모든 지위나 직책에 대한 기회의 균등한 부여 및 차등적으로 사회의 '최소수혜자'(the least advantaged)에 대해 최대 혜택이 돌아가게 하는 것으로 구성된다고 했다.

주목할 것은 롤스는 위 원칙들을 등가(等價)적으로 나열하지 않고 정치적 자유와 기본권 보장을 가장 우선시하고, 그 다음 사회적 기회 균등이 최소수혜자에 대한 차등적 배려보다 우선한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지원하기 위한 정책이라고 해도 그를 위해 정부가 누군가 영업의 자유나 시장을 추가적으로 규제하는 것, 서민 지원 재원을 마련한다는 미명하에 부자들에게 세금폭탄을 투하하는 것 모두 롤스의 정의와 상치된다.

또 '최소수혜자'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아마르티아 센(Amartya Sen)이 지적한 바 지위나 직책에 대한 기회를 균등하게 보장해도 개인별 능력의 차이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소득과 부의 불평등도 계속 보전해주어야 하는지도 문제다. 무엇보다 자본주의의 근간인 창조적 노력에 대한 보상제도나 경쟁적 발전의 틀을 훼손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고대 그리스철학의 '정의'도 각 사람에게 합당한 몫을 나눠준다는 것으로 분명 차등을 바탕에 깔고 있다.


결국 이 불확실한 '공정한 사회'란 말은 시장에서 거래의 공정성 확보와 정부와 권력자부터 솔선수범하여 법을 잘 지키는 것은 물론 국민 개개인이 사익을 추구함에 있어서 탐욕을 버리고 사회 전체를 고려해야 하는 의무, 즉 공동선(共同善)의 추구가 당연시되는 사회로 정의할 수밖에 없다. 이번 추석 명절이 '공정한 사회'의 의미를 우리 미풍양속인 상부상조의 전통과 함께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